흐린 날

by leaves

나는 흐린 날을 다정히 맞는 편이다. 침침한 빛, 자욱한 사물들, 묵직하게 흩어지는 향. 흐린 날에는 모든 존재가 자신을 잠잠히 드러낸다. 내 안의 언어와 비언어들조차 소란스럽지 않다. 그 세계가 몹시 안온하고 충만해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한정원


맑은 날에 대한 예찬보다 흐린 날에 대한 예찬이 더 마음에 드는 오후다. 실제로 맑은 날 기분이 좋은 게 사실이지만 흐린 날 나름대로 고즈넉함이 좋을 때가 있다. 12월이 가까워 오니 크리스마스가 기다려 진다. 캐롤을 들으며 기분전환을 해본다. 어릴 적 추억 중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은 좋았던 것 같다. 성당에서 성극을 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용감하게도 배우를 늘 맡아서 했었다. 다들 나더러 얌전하다고 했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그런 추억 때문인지 나는 여전히 크리스마스가 기대된다. 아무 일이 없어도 그날만큼은 행복해도 될 것 같다. 심란한 일들이 많아서 마음이 답답하다. 바깥에 부는 바람소리가 내 마음 안에서도 불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깨우친 것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 꽤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을성이 길러지는 것 같다. 지금은 안되지만 언젠가는 될지도 모를 일들. 오늘을 열심히 산다면 미래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것도 동시성의 원리라고 한다. 지금의 행동이 미래에 영향을 동시적으로 끼치는 것.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까. 나이들면 고등학생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열심히 파고들며 살아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무언가 꼭 이루어야 할 것이 없는 이 여유가 좋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시간이 아깝기는 하다. 젊은 시절과는 다른 초조함이다. 벌써 내 나이가 되었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눈도 침침하고 기억력도 예전같지 않다. 이런 신체적 불편함 외에도 왠지 꿈꾸기엔 늦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 나이에도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내 기분이 내 의지에 잘 따라오길 바라면서... 폭풍우 속에서도 춤출 수 있게 되길 바라면서.. 오늘 날씨 정말 이상하다. ㅋ

작가의 이전글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