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해피엔딩

by leaves

유퀴즈에 천휴작가가 <어쩌면 해피엔딩>을 쓰게 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로봇처럼 핸드폰과 노트북만 보는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역시 낯선 이국의 땅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글을 쓰기엔 너무 행복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실제로 외롭고 힘들때 글을 쓰기는 했지만 그때는 너무 괴로워서 무언가를 해낸다는 거 자체가 나에게 쉽지 않았다. 무엇부터 해야할지 몰랐다. 지금은 알 것도 같은데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중년이 되어 있다.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나를 사사하는 작가 선생님은 내가 억압의 기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무언가 억누르고 있어서 솔직하게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인지 좀 알 것 같다. 나는 의식적으로 어두운 표현을 싫어한다. 책에서도 너무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이미 내 안에 그것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자꾸 밝은 곳으로 찾아가게 된다. 예쁘고 밝고 빛나는 것. 그것들만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하튼 천휴작가의 뮤지컬 발상법은 내게 자극이 되었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지 힌트를 업은 것 같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야겠다. 이렇게 부족할 것 없어 보여도 무언가 결핍이나 상실이 있다. 다만 내가 그것을 일일이 꺼내 보이기 싫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마주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들은 없어지지 않고 내 곁에 있을 것이며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내가 다음 소설을 어떤 이야기로 할 지 나도 기대가 된다. 외로움.... 나는 지금 외로운가. 잘 모르겠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남들보다 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혼자 있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서 인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인생이나 글을 쓴다는 것이나 모두 혼자하는 일이 아니던가. 그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인생에서 자신이외에는 아무도 믿지 말라는 경고를 하기도 했었다. 아마도 그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타인에게 인생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남기게 될까. 나는 왜 억압의 기제를 가지게 되었나. 그리고 나는 왜 말하지 않는가. 어쩌면 애초부터 포기를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안될 것. 말해 봤자 소용없고 달라지지 않는 것들. 내게 인생은 그런 것이었다.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알게 되지 않았는가. 희망... 결국 외로움에서 희망을 발견한 천휴작가처럼 작가란 그래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일러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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