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un Mar 24. 2018

서점, 그 따뜻한 공간

파리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셰익스피어&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 파리에 있으면서 꽤 자주 들른 곳 중 하나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 좀 보련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간 것은 첫 번째 방문 이후로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근처를 지나다가 그저 너무 추워서, 혹은 눈과 비를 피하기 위해 자주 들어갔다. 2월의 파리는 마냥 걷고 싶을 만큼 좋은 날이 잘 없었기에 흐린 날이 계속되던 한동안은 이곳으로 거의 출근하다시피 했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이곳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

처음엔 나도 유명 서점을 구경하는 관광객의 입장에서 책보다는 실내 인테리어 위주로 둘러보았고, 엽서를 사고, 괜히 에코백도 뒤적여보고, 서점의 역사가 쓰여있는 안내판을 열심히 읽으며 아 이렇게 의미 있는 곳이었구나 새삼 느끼기도 하다가.. 가끔 중국인 관광객의 사진도 찍어주곤 했다. 그런데 자주 드나들다 보니 다소 들떠있는 듯 번잡하게만 보이던 이 장소가 신기하게도 아늑한 공간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조금은 소란한 입구 쪽과는 또 다른 세계인 듯 안으로, 위로 들어서면 보이는 작은 공간들은 책을 읽기에, 무언가 끄적이며 멍 때리기에 충분히 안정감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었다.

 

*위 사진 출처: 영화 비포 선셋(Before sunset, 2004)


이곳은 영화 '비포 선셋(Before sunset, 2004)'에서 작가가 되어 파리를 방문한 제시와 셀린느가 9년 만에 재회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곳에선 작가의 인터뷰나 소규모 모임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비포선셋의 에단 호크만큼이나 매력적인 한 남자가 내가 좋아하는 구석방에서 소규모로 자기 책 이야기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책을 읽었더라면 뭐라도 질문해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다.   

이런 영화적 낭만도 소환할 수 있지만 당대 유명 작가들이 거쳐간 고서점으로 역사 또한 유구하니 그 매력만큼이나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는데, 비수기인 겨울 파리임을 고려할 때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인증사진을 찍고, 에코백을 사서 쿨하게 퇴장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실제로 책을 읽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꽤 된다. 거의 포토존처럼 느껴졌던 포르투(porto)의 렐루 서점에 비하면 그래도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점이 좋다.  




이곳은 선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온 실비아 비치(Sylvia Beach, 1887~1962)가 1919년에 설립한 서점으로 오랜 시간 유명 작가들(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T.S. 엘리엇.. 등)의 사랑을 받은 동시에 신진 작가들의 쉼터가 되었다. 특히 실비아가 1922년 제임스 조이스의 가치를 알아보고 모두가 꺼렸던 율리시스(Ulysses)를 최초로 출판하기도 했고(그 덕에 파산에 이르기도 했다는;;), 미국에서 당시 출판이 금지되었던 D.H. 로렌스의 작품들도 소개한 바 있다. 2차 세계대전으로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파리에 유학 와 있던 미국인 조지 휘트먼(George whitman)에 의해 다시 명맥을 이어왔다. 서점이자 동시에 도서관의 역할을 했던 이곳은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낯선 이을 홀대하지 마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 일지 모르니)라고 써놓았던 창업주의 정신처럼 현재까지도 무명작가나 이방인에게도 열린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는 점이 멋지다. 나에게도 추운 겨울 그런 멋진 공간을 제공해 주었으니까. 

내가 인상적이었던 건, 오랜 시간 죽치고 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 공간들 외에도 섹션 별로 디피된 책들이 굉장히 잦은 주기로 바뀐다는 점이었다. 연달아 며칠을 간 적이 있었는데 잘 보이는 곳에 있는 책들은 매번 다른 책으로 교체되어 있었고, 그만큼 다양한 작가의 책을 돌아가며 소개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창업주의 이런 정신 덕분일까.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책 자체를 좋아하고 잘 아는 사람인 듯 느껴졌고(당연한 건가;;), 누군가 무엇을 찾을 때 혹은 어떤 작가에 대해 물어볼 때 친절하게 그리고 막힘없이 설명을 해주고 있었고, 심지어 이런저런 책을 권해 주기도 하는 것을 몇 차례 보았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건, 한 열 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아이가 어린이 픽션 코너에서 자신은 저번에 이런 책을 읽었는데, 다른 것을 추천해달라고 말하고 있었고, (이미 난 여기서 존경스러운 마음으로 이 당돌하고 귀여운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여느 성인의 요청 못지않게 진지하게 응대하는 직원에게 또 한 번 감동했다. 







화려한 파리는 끊임없이 소비를 권하는 것 같다. 세느강변에 늘어선 고풍스러운 건물들에도 언젠가부터 브랜드 홍보물이 붙어있다. 심지어 마들렌 성당에도 입구 우측 전면부에 광고판이 자리 잡았다. 여기도 저기도 날 좀 사줘하는 광고들과 그런 분위기들의 일색이다. 물론 그것을 소비하는 관광객들에게는 멋진 모습이겠지만 어쩐지 자꾸 보게 되는 일상의 파리가 좀 피곤하게 느껴진다. 내가 나이가 든 것인지, 어쩐지 모를 일이다. 이만하면 된 것 같은데 예쁘게 웃으며 하나라도 더 사라고 한다. 어느 날 들른 시티파르마(약국)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들의 집합소 같았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좁은 공간에서 짜증이 날대로 나 있었고, 여유 있는 공간에서 서로 배려하던 모습은 실종된 것 같았다. 갑자기 그 공기가 너무 답답해서 살 것도 제대로 다 못 사고 나왔다. 이어폰도 어디 흘렀는지 또 없어졌고, 손에 들고 다니던 머플러도 두고 나왔다. 다시 돌아갔지만 찾지 못했다.  



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장갑을 퍽이나 자주 놓고 나왔다. (늘 한참 걷다가 섭섭한 생각이 들면 장갑이 꼭 없었다. 정신을 어디에 두고 사는지;) 그런데 그때마다 카운터에 가면 누군가가 가져다 놓았고, 나중에는 묻지 않았는데도 직원이 니 장갑이라며 챙겨주었다.

혹시 장갑을 또 두고 오더라도 늘 거기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https://www.youtube.com/watch?v=LSiooa1Kym0

파리 어느 카페에서 두 번이나 나왔던 dust it off, 그날의 파리와 잘 어울렸다.


셰익스피어앤컴퍼니를 배경으로 서프라이즈 인증샷입니다. 제가 돌아온 후, 파리에 있는 언니가 고맙게도 보내주었답니다. 감동이ㅜㅜ   #엄마나는걸을게요 그리고 셰익스피어앤컴퍼니:)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의 Paris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