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y lives, Many masters/ Brian L. Weiss
최근에 나는 서로 다른 세 사람으로부터 거의 동시에(2-3일 간격을 두고) 같은 책을 추천받았다. 국적이 각기 다른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나에게 같은 책을 추천했다. 이쯤 되면 그게 뭐든 읽어는 봐야 할 것 같다. 내게 도움이 되든, 안 되든 말이다.
제목은 브라이언 와이스라는 저명한 정신과 의사가 쓴 'Many lives, many masters'라는 책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오래전에 알았다. 당시 내가 일하던 곳에 팀장님께서 이 책에 대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흥미로운 책이니 한번 읽어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다. 흥미롭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굳이 찾아서 읽지는 않았다. 그게 내 나이 28살의 일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지금 만난 이 사람들은 내게 같은 책을 추천하고 있다. 거기에 공짜로 책을 구하게 되었으니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읽게 된 이 책, 내게 많은 의미로 다가왔다. 마치 이 시기에 읽었어야 하는 운명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수많은 raw data 중 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극히 적다고 하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같은 환경이 주어져도 각자의 의도에 따라, 필요에 따라 어떤 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자신의 것으로 해석하고 취할 것인가는 천차만별이다. 아마도 내가 그때 팀장님이 추천하실 때 이 책을 읽었다한들 그 가치를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하지 못했을 것 같다.
저자는 소위 엘리트 코스를 무난히 거쳐 자신의 분야에서 제법 성공적인 가도를 걷고 있는 정신과 의사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캐서린이라는 젊은 여자 환자가 찾아오고, 그녀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그의 모든 삶을 뒤흔들 만큼의 강력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과학적인 방식과 이성적 추론을 통해 입증된 것들만 신뢰하는 그에게 이 환자의 케이스는 그의 경험과 이론밖에 있는, 도저히 이해불가,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현실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 환자였다. 보통 과거의 어떤 트라우마로 인해 이런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에 브라이언 역시 상담을 통해 과거의 이슈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애썼다. 그러나 무의식의 잠재된 기억을 끌어내기 위해 시행한 최면요법을 통해서도 캐서린의 증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악화되기만 했다. 이런 출구가 보이지 않는 노답의 상황에서 의사로서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어 보였으나, 어느 순간 최면 기법을 통해 그녀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단순히 유년 시절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생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을 그저 그녀의 무의식의 환상이 만들어 낸 의미 없는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살아 있는, 구체적인 정보들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한 번의 삶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공간에서 여러 차례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그것이 그녀의 환상이든, 그녀 안에 잠재된 어떤 무엇이든 브라이언은 그걸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현재 그녀의 삶(어린 유년 시절까지 포함)의 기억을 찾는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던 그녀의 증상이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억들을 통해 상당 부분 호전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는 한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가치 체계에 없던 개념으로 인해 혼란을 느낀다. 이 사례를 어떻게 해석하여 궁극적으로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사로서 고뇌하는 시간을 갖지만, 이내 자신이 보고 느끼고 분석하는 모든 것에 확신을 얻게 된다. 그는 이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사후 경험, 캐서린과 같이 이전 생을 기억해 내는 사람들의 사례를 분석하며 이에 좀 더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이미 다른 의사들을 통해 보고된 충분한 케이스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그 환자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과정에서 그는 그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고, 자신의 생의 의미, 수많은 인연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배워야 할 것들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 모든 과정이 결론적으로 지금의 그의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었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일상의 현상들에 일희일비하는 감정을 다스리는데 엄청난 도움을 주었으며 그의 삶의 목적이 더욱 분명하고 뚜렷해지니 삶의 활력이 생기고 주변인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충만해졌다. 그가 말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배우고 있을 뿐이며, 결국 그 종착점은 같기에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더 낫고, 못나고, 더 옳고, 그르고 가 없다고.
개인적으로는 오랜 시간 카톨릭이라는 종교, 그 틀이 나의 삶, 죽음, 그리고 사후 세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갖게 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착하게 살다 죽으면 신이 예비한 그곳으로 가서 평안을 누릴 것이라는 당연한 논리는 너무도 강한 내면의 체계였다. 흔들릴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 체계였다.
그런데 엄마의 죽음 이후 솔직히 난 내가 가진 종교에서 깊은 위안을 받을 수 없었다. 그간 산티아고 길을 걸었고, 위안을 받고자 온갖 종교 서적, 철학서를 읽었고, 종교라는 그 테두리 안에서 신의 사랑을 느끼고 엄마 영혼의 영원한 행복을 간절히 염원했다. 이건 어찌 보면 내가 가진 종교로 모든 상황들이 스스로 납득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들이었다. 엄마가 가진 종교에 대한 그 굳건한 믿음도 더욱 이해해 보고 싶었다.
물론 위로는 되었지만, 그것이 내가 가진 질문들에 대답을 줄 수 있는 그런 깊은 차원의 위안은 아니었다. 신은 존재한다 해도 종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마치 강력한 최면처럼 가지고 있는 죄의식, 인간이 만들어 낸 허례허식들, 시대별로 정치권력에 의해 입맛대로 해석된 작위적인 신의 말씀... 이런 것들이 더 크게 느껴질 뿐이었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입니다.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 그 모두를 존중하며, 종교적인 논쟁을 하고자 쓴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고대의 히브리어로 쓰인 성서를 해석하는 과정에서도,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시스템 안에 인간의 이기가 작용했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신의 사랑을 제한하고 있지 않을까. 내가 생각한 신은, 존재한다면 무한한 사랑 그 자체일 텐데 어릴 때 내가 접한 성경이나 종교서에서 신은 잘못된 일을 벌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일을 주로 하시는 듯 느껴져 어쩐지 무섭기도 했다. 그건 신이 아니라 종교의 바람 같다.
적어도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사랑을 제약 없이 함께 나누도록 서로 격려하는 집단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창조되었다면 지금 가진 믿음과 가치관의 여부에 상관없이 어느 것도 더 우월한 것이 없지 않은가.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그녀의 전생 이야기들을 전달하는데 끝나는 것이 아니라(사실 이런 호기심이라면 그걸 충족시켜 줄 자극적인 사례들은 조금만 찾아봐도 넘친다. 그중엔 주목받기 위해 구라를 치는 경우도 종종 섞여있을 것 같다;) 특히 그녀의 수많은 죽음들? 그 이후의 경계점에서 받는 메시지는 거대한 주제들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공한다. 이 메시지를 통해 죽음 후에 궁금했던 것들, 우리는 왜, 대체 뭐하러 살고 있는가, 왜 이런 경험들을 하며 살아야 하나, 이런 질문들의 해답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개인적으로는 다른 차원의 깊은 위안을 받았다. 브라이언이 개인적인 임상 경험을 통해 캐서린의 삶뿐만 아니라 그의 삶이 변화했듯 그처럼 나 역시 죽음이 더이상 두렵지 않고,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나쁜 일 포함)에 보다 더 관대한 시각을 갖게 되었다. 단순히 엄마의 영혼이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혹은 천국에서 만나요 이상의 강렬한 희망이다.
꿈에 엄마가 나왔다. 엄마는 대뜸 새로운 책을 썼다며 내게 보여줬다. 생전에 엄마는 주로 종교적 믿음을 엄마만의 방식으로 푼 글들을 쓰긴 했었지만, 꿈에서 내게 보여준 글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결의 글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순간 난 엄마 생각에 너무나 공감한다며 기쁘고 벅찬 감정을 느꼈던 건 확실하다. 엄마는 엄마 만의 확고한 종교적 틀이 있었지만 늘 내가 가진 다양한 생각들에 열려 있었고 한결같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셨다. 그러나 밖으로 더 표현하지는 못하셨다. 꿈에서 나는 엄마와 더 연결되는 느낌을 받으며 행복했다. 그리고 꿈에서 깼을 때 너무나 자유로웠다. 엄마는 한층 자유롭고 행복해진 나를 지지해 주고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충만한 기쁨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