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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Mar 25. 2020

정권은 바뀌어도 관료·언론은 안 바뀐다

2017년 하순 미국산 쇠고기에서 5번째 비정형 광우병이 발견됐다. 한미관계가 어떤지를 엿볼수 있는 것은 바로 미국산 쇠고기를 대하는 소관부처의 태도다. 정권은 바뀌어도 정부(부처)는 그대로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관계부처는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MBC> 조능희 PD를 인터뷰했다. 조 PD는 광우병 보도로 고초를 겪은 <PD수첩>의 책임프로듀서였다. 보도 후 회사로 항의전화가 여럿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3년전의 인터뷰라 현 상황과는 좀 다른 부분도 있다. 이제와 이 인터뷰를 다시 전하는 이유는 정책, 관료, 검찰, 언론의 문제를 가늠해보자는 취지에서다.


유럽의 ‘전형·비정형 광우병 발생 조사 결과(2001~2004)’를 보면 건강한 소에서도 비정형 광우병이 발견된다. 최근에는 정형 광우병이 줄어들고 비정형 광우병이 부상하고 있다. 북미육류협회(North American Meat Institute, NAMI)의 보고서에는 ‘비정형 광우병은 인간에게 덜 위험하다’거나 ‘인간에게 위험하지 않다’는 표현이 포함돼 있다. NAMI의 회원사들은 주로 한국에 쇠고기를 수출하는 육류 기업들이다. 그리고 2017년 7월 미국산 소고기에서 5번째 비정형 광우병이 발견됐다.



그해 8월 3일 서울 모처의 한 카페. 조능희 PD와의 만남은 그때가 세 번째였다. 그는 기억나지 않겠지만 수년 전 법원에서 스치듯 본 게 처음이었다. 두 번째는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지난 최근의 일이다. 미국의 5번째 광우병 발생 후 보건시민사회단체가 마련한 설명회에서 그와 처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인터뷰 제안을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돌이켜보면 만남은 늘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과거 <MBC> PD수첩의 탐사보도는 정치권과 검찰, 군과 정권에 메가톤급 충격을 안기곤 했다. 그가 책임PD로 활동할 무렵만 해도 그렇다. 광우병 보도는 이명박 정부에게 있어 쓰나미와 다를 바 없었다. 정권은 보도를 문제삼아 사정당국의 칼날을 들이댔다. 결론은 PD수첩 제작진, 모두 무죄. 조능희 PD는 “울고 싶은데 따귀 때린 격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검찰이 PD수첩을 수사함으로써 언론에 일종의 '본보기'를 보였단 의미다. 무리한 수사였음은 이견이 없다. 그렇지만 제작진은 수년간 모욕과 위협을 감당해야 했다.  


당시 조 PD는 <MBC>내 주조정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와 만난 3일도 밤샘 근무를 끝내고 밀린 잠을 깨고 나온터였다. 체력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PD에게 프로그램 제작을 못하게 한 회사의 조치는 스트레스를 넘어 고통일 것이다. 악전고투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눈은 잠시 붉어졌다. 조능희 PD는 광우병과 <MBC>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말 속에는 차갑지만 뜨거운, 어떤 감정이 배여있었다. 이따금 차가운 분노도 느껴졌다.         


기묘한 논리


- 최근 미국에서 5번째 비정형 광우병이 발견됐는데, 국내 언론보도를 보면 천편일률이란 느낌이 들더군요.


“광우병에 대한 언론보도는 늘 그래왔어요. 진보매체를 제외하곤 대다수 언론은 정권에 따라 포지션을 바꿨죠. 참여정부 당시 조중동은 광우병의 위험을 떠들었지만, 이명박 정권하에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옹호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때 이상한 논리를 갖다붙였죠. ‘재미동포들은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를 다 잘 먹고산다. 왜 문제 삼느냐. 선동하지 말라’는 기묘한 논리였죠.


당시 유력 일간지 간부는 일본에서 다수의 광우병 소가 발견된 것을 들어, 왜 일본 소는 미친 소(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일부 누리꾼은 미국 소를 ‘미친 소’에 빗대 표현했었다)로 부르지 않냐고 강변했습니다. 따져보면 이 말은 사실과 달라요. 일본은 자국 내 모든 소를 전수검사한 반면, 미국은 1000마리 중 한 마리꼴의 검사가 고작이었어요. 이러한 사실을 쏙 빼고, 단순 비교만 한 거죠. 2012년 미국에서 4번째 광우병이 발견되자, 이번에는 유럽과 캐나다, 일본 등 선진국도 가만히 있는데 왜 유난이냐는 겁니다. 공직자와 정치인, 학계도 여기에 동조했습니다. 이들은 공공연하게 정권 편향적인 주장을 폈어요. 유럽, 캐나다, 일본 등이 광우병 발생국이란 걸 빼놓고 말하죠.”  



- PD수첩 이야기를 잠시 하면, 광우병 보도 이후 사정당국은 PD수첩 제작진의 수갑 찬 모습을 언론 앞에 연출하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적잖이 충격적이긴 했습니다. 언론에 ‘까불지 마라. 끽하면 이렇게 된다’는 시그널을 보낸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수갑 찬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버텼는데 쉽지 않았어요. 당시 한 PD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다분히 정치 논리가 들어간 '청부 수사'로 설마 구속까지 시킬까 싶어 자진출두 했었습니다. 전부 울음바다였어요. 회사에서 체포당해 수사 받으러 갈 때 유치장에서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그 PD의 사진이 인터넷에 뜨더군요. 몹시 분노했습니다. 참담했어요. ‘아무 죄도 없이 수갑을 찬 이 모습이 영영 인터넷에 남겠구나. 아이들과 손자까지 보겠구나.’


전 검사들이 ‘검찰 관계자’로 비겁하게 숨어서 권력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대개 이런류는 출세하고 승승장구하기 마련이죠. 그래서 전 기자들 앞에서 절 수사한 검사들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상당한 파문이 일었습니다. 그렇게 한 건 모름지기 검사라면 부장검사가 지시한, 잘못된 수사는 거부해야한다는 메시지였던 거죠.”


- 당시 PD수첩 제작진의 고초가 언론과 대중에 전해지면서 ‘침묵’의 일상화랄까요. 이건 이명박 정권의 당초 의도였을텐데, 그 영향인지 특히 광우병에 대해서는 지금도 언론은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이 있습니다. 자기검열의 체득으로도 볼 수 있고요.  PD수첩이 방송 및 언론 장악의 시발점이란 시각도 있지 않나요?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었을 거예요. 2007년 대선 이후 이명박 정권이 <MBC>를 접수하려 든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방송 장악 계획은 그 전부터 짜여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차에 PD수첩이 이들의 레이더에 걸려든 거죠. 노무현 탄핵 당시 비판적 언론 보도가 봇물을 이뤘고, 촛불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졌죠.


그 결과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역풍을 맞습니다. 이때부터 방송 장악 의지를 가졌던 것 같아요. 실제 당시 언론 관련 학회들이 ‘방송 편파 보고서’란 것을 작성합니다. 그 보고서를 쓴 서울대 교수는 승승장구했고요.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언론과 방송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든 결과는,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 국민들의 철퇴였던 거죠.”      



미국은 특별하다


- 정권이 바뀌었지만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미국이라 특별하단 걸까요?  


미국은 선진국, 은혜를 베푼 나라라는 의식이 깔려있어요. 10년 전 정책 결정자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좋은 상품’으로 봤습니다. '여기에 어떻게 감히 이의를 제기하느냐'고 되레 문제삼은 거죠. 실제 광우병 보도로 체포됐을 때, 검사가 ‘빨갱이, 종북좌파가 아니냐’고 묻더군요. 이러한 현상은 미국 쇠고기 문제를 비롯해 미국과의 수입 조건 등 한미관계의 불평등한 조약 등을 지적하면, 종북좌파로 몰아가는 수구언론의 소위 ‘안보장사’의 일환일 겁니다. 그러나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를 정권에 대한 도전이나 한미관계를 ‘흔드는’ 행위로 바라봐선 안 됩니다. 이건 미국에 대한 외사랑, 사대관계에 지나지 않아요.”


- ‘비정형 광우병은 안전하다’는 농식품부의 논조는 미국 농무부, 더 정확하게는 축산업자들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봅니다. 한편으론, 일각에선 ‘국민 불안 확산을 우려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주장을 펴기도 해요.


“이승만이 6·25 당시 우리 국군은 북진중이라고 안심시킨 뒤 도망을 갔죠. 딱 그 꼴이에요. 국민 불안을 해소한다? 이건 정부 관료의 시각이 아닙니다. 미국 축산업자의 입장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겁니다. ‘값싸고 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란 표현은 미국 축산업체의 주장이죠. 흥미로운 건 미국 내에서도 자국의 쇠고기 위험성을 지적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는 점이에요.


이명박 정부 초기만 해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관료들이 있었어요. 이후 10년 동안 과연 올바른 이야기를 하는 관료가 살아 남았을까요? ‘영혼 없는 관료들’이 계속 요직을 차지하고서 그간의 과오를 반성하기는커녕, 더 공고화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합리화를 확인없이 받아 적는 ‘앵무새 언론’의 부역도 여전하죠.”


- 한미동맹을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에 대입하려는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관찰됩니다. 광우병 위험이 예상되는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해 정부의 합리적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 곧 한미동맹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논리인데요. 이 정도로 흔들릴 동맹이라면 애초 동맹이라고 부르기 어렵지 않을까….   


“한미동맹은 상호 존중이 전제돼야 합니다. 어느 한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거나 불합리한 관계가 강요돼선 안 됩니다. 당당하게 지적할 수 있어야 해요. 서로 할 말은 하는 관계라야 동맹도 공고해지는 것 아닌가요? 불완전한 조건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거나 하자있는 미국 무기를 사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미국을 마치 성역처럼 바라보죠. 이건 정치 리더나, 학자, 관료들도 마찬가지에요.”


- 이번 미국의 5번째 비정형 광우병 발생에 대해 의학 및 과학 기자들의 모임인 한국과학기자협회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합니다. 전문가 집단인 의사들도 마찬가집니다. 의학 기자들의 침묵도 이상하긴 매한가지입니다. 되레 사회부 기자들이 '커버'하는 모양새인데요.


정권에 맞서서 과학적 입장을 견지하기란 쉬운 게 아닙니다. 침묵은 쉽습니다. 편하죠. 과학적 발언을 하려면 철저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과연 의사들이 소신대로 말할 수 있을까요? 과거 광우병 논란으로 시끄러웠을 때, 대한의사협회(의협)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입장은 ‘반대’에서 ‘찬성’으로 180도 뒤바뀌었어요. 광우병 보도로 재판을 받을 때, 판사가 의협에 자문을 요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의협은 정부 입장과 가까운 전문가 의견서를 보냈습니다.


일관되게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경고하고 한국 정부의 불평등한 쇠고기 수입 조건을 지적해온 전문가들은 극소수입니다. 이들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시달리고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우희종 서울수의대 교수만 해도 매장시키려는 시도가 있었고요. 반면, 광우병 전문가가 아닌 이들이 하루 아침에 전문가로 변신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어느 의사가 우희종 교수를 찾아가서는 집 앞 놀이터에서 프리온 단백질에 대해 2시간 동안 물어보더랍니다. 이후 그 사람은 어떤 토론회에서 정부를 옹호하는 전문가 노릇을 하면서, PD수첩을 공격하는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이후 건보공단의 요직을 꿰찼다는 소문을 들었죠. 의학기자들도 정권과 유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황우석 논문 조작 사태 당시 경험했었죠. 정권의 입장을 옹호하면 편해집니다. 정부가 보호해주고 챙겨주니까요.”



앵무새...


- 다시 언론으로 돌아와서,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광우병이) 위험하지 않더라도 낱낱이 밝혀야한다”는 발언을 대다수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더라고요.


“가장 큰 문제는 관료가 그대로라는 거예요. ‘안전하다’고 보고하면 대통령도 그런가보다 했을 겁니다. 농식품부 관료들은 과연 FDA의 광우병 권고 사항을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과 청와대, 대통령에게 보고했을까요? 그동안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온 사람들이 말입니다.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성이 있다. 정형, 비정형 광우병 모두 위험하다. 현물검사 강화는 광우병 검역에 아무런 의미도 갖질 못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를 보고한다는 건 그동안 그들이 국민들을 속여 왔다는 자백이나 마찬가집니다. 촛불 시민들에게 철퇴를 받은 건 언론과 관료를 지휘한 소수의 권력자일 뿐입니다. 사실상 국정농단을 초래한 관료와 언론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어요. 청와대와 대통령조차 여기에 기만당했을 겁니다.”


- 9년이 지났지만, 광우병 보도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하셨는데요. 언론이 무비판적으로 받아 적는다, 정권에 반하는 논조의 부담, 자기검열, 출입처 문화의 폐해, 과학적 사실에 대한 무지 혹은 침묵, 공부하지 않는 언론… 결국 저널리즘 본령에 대한 고민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출입기자들은 받아적는데 도사죠. 가장 심한 출입처가 검찰과 청와대인데요. 이곳 출입기자들이 받아쓰는 이윤 두 가지입니다. ‘면죄부’와 ‘도피’. 권위 있는 정부 기관의 발표는 (설사 사실과 다르더라도) 받아써서 보도하면 문제가 없단 겁니다. 안전하단 거죠. 출입기자들의 이 같은 관행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언론개혁의 시작입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소품'과 '엑스트라'로 전락해 버렸어요. 이들도 일종의 부역자라고 봐요. 견제와 감시, 비판 없는 언론. 질문하지 않고 그저 받아쓰는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언론이 질문을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일갈한 최승호 PD의 말처럼, 앵무새 언론이 득세했던 박근혜 정부는 정말로 망해버렸어요.”




난 공정 방송, 바른 보도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


“비판과 감시죠. 국민들은 권력자가 정책을 집행할 때, 그 한계와 문제를 이야기해주길 바랍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귀 기울이고 이들의 입장을 대변해줘야 합니다. ‘앵무새 언론’이 되어선 안 됩니다. 끝도 없이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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