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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mpkin Feb 22. 2021

영혼보다 피렌체를 더 사랑한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

폭군을 위한 저서도, ‘악마’의 저술도 아닌 민주주의의 교과서였다.


오랜 시간 바라만 보고 있던 악명 높은 <군주론>을 집어 들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흠뻑 빠져 읽었던 터라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아직은 좀 더 진중한 분위기 속에 묻혀있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도 많이 들어서 마치 읽은 듯한 느낌마저 안겨주는 <군주론>. 고전이란 읽지 않았음에도 읽은 것처럼 느껴지는 책이라 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라면 <군주론>는 고전으로서의 기본 의무(?)는 충실히 해낸 셈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해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최고다. 결과가 왕이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마키아벨리가 전하고자 한 그의 주장들이 편협적인 시선으로 왜곡되어 알려져 있었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마키아벨리는 15세기 초인 1469년에 피렌체에서 태어나 1527년에 삶을 마감했다..  마키아벨리가 태어난 당시 이탈리아는 로마 교황청, 베네치아, 피렌체, 나폴리, 그리고 밀라노 등 5개의 작은 공화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 안에서 서로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과 다툼은 그가 죽는 날까지 계속 이어졌다. 


한 마디로 마키아벨리의 삶은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먼 생존의 위험을 느끼는 전쟁과 함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그로 하여금 군주론을 쓰게 했을 것이란 것을 미루어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마키아벨리는 한 마디로 규정하기 힘들 정도로 여러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외교관이자 사상가이고, 작가였던 그는 르네상스적인 천재였다. 피렌체의 공화정에 참여하며 공화주의자였던 스페인의 공격에 의해 피렌체의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간의 군주정이 복원되면서 그는 공직에서 추방된다. 그 후, 교황 레오 10세가 즉위하며 특사를 받고 석방되면서 군주론을 집필하여 거인 로렌조 메디치에게 헌정한다. 그의 기대는 실현되진 않았지만 메디치 정부의 공직에 부름을 받고자 하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책 전체를 통해서 군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어떠한 정책을 펼쳐야 하는지를 국가의 형태에 따라 그 차이점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세습 군주국과 복합 군주국일 때가 다르고, 또한 자신의 무력과 역량에 의해 얻게 된 신생 군주국일 때와 타인의 무력과 호의로 얻게 된 신생 군주국일 때가 다르며, 시민형 군주국과 교회형 군주국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각 챕터마다 주제별로 다루며 군주는 상황에 따라 어떻게 행동을 하고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을 비유로 무엇이 옳고 그르고,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세세하게 보여준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나 아퀴나스와 같은 중세의 사상가처럼 ‘이데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현실적인 역사의 사건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상을 펼치는 것이다. 


읽는 동안 나의 시선을 끌었던 부분은 바로 인간적인 면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듣고 배웠던 ‘성품’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잔인함과 인자함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와 피스토이아를 예로 보여주며 과연 누가 잔인한 군주인지, 또는 인자한 군주인지 묻는다. 잔인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엄격한 조치로 질서를 회복시켰고, 그 지역을 통일시켰고 또한 평화롭고 충성스러운 지역으로 만든 체사레 보르자와 잔인하다는 평판을 듣는 것을 피하려고 사분오열되도록 방치한 피스토이아를 비교할 때, 과연 누가 더 자비롭다고 판단되겠냐는 것이다.

“현명한 군주는 자신의 신민들 결속과 충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잔인하다는 비난을 받는 것을 걱정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너무 자비롭기 때문에 무실서를 방치해서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군주보다 소수의 몇몇을 시범적으로 처벌함으로써 기강을 바로잡는 군주가 실제로는 훨씬 더 자비로운 셈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행위를 입증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쓸 당시 유행하던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시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동기로 시작했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동기는 입증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과 두려움 


사랑도 느끼게 하고 동시에 두려움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동시에 둘 다 얻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굳이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체사레 보르자는 로마냐 지방을 점령한 후, 그곳을 무능한 영주들이 다스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민들을 올바르게 다스리기는커녕 온갖 약탈과 무질서의 근원이었다. 체사르는 그곳을 평정하고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레미로 데 오르코라는 잔인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평정하게 한다. 레미로는 체사르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여 단기간에 질서를 회복한다.


하지만 그가 취한 엄격한 조치로 신민들의 미움을 받을 우려가 생기자, 체사레는 인민들의 환심을 얻고자 레미로를 처형한다. 레미로는 체사르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을 뿐인데, 결국은 그 모든 죄를 짊어지고  처형당하게 된다.


지금까지 레미로가 행한 잔인한 조치는 체사르 자신이 시킨 일이 아니라 그의 대리인의 잔인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처참하게 처형되는 레미로를 본 인민들은 만족했지만, 경악했고 두려움에 떨게 된다.

현명한 군주는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되, 비록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미움을 받는 일은 피하도록 해야 합니다. 미움을 받지 않으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체사르 보르자는 레미로를 처형함으로써 그 두 가지 모두를 얻게 된다.  



약속


마키아벨리는 18장에서 ‘군주는 어디까지 약속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었는데.  군주는 모름지기 짐승의 방법과 인간의 방법을 모두 이용할 줄을 잘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명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그에게 불리할 때 그리고 약속을 맺은 이유가 소멸되었을 때,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며 또 지켜서도 안 됩니다. 이 조언은 모든 인간이 선하다면 온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사악하고 당신과 맺은 약속을 지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 자신이 그들과 맺은 약속에 구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필요하다면 군주는 전통적인 윤리를 포기할 태세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자비롭고 신의가 있고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경건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것이 좋다. 그러나 달리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정반대로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의 주장이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종종 신의 없이, 무자비하게, 비인도적으로 행동하고 종교의 계율을 무시하도록 강요당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올바른 행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말아야 하겠지만 필요하다면 악행을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우리가 ‘자고로 사람은 이러한 덕을 지켜야 한다’는 윤리적인 도에서 벗어나는 주장들로 읽는 이들로 하여금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중세 시대에 그가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용기를 필요로 했을까,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과연 마케아벨리가 주장했던 것이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그는 윤리적인 유토피아를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주장한 모든 것은 한 인간이 갖춰야 할 덕목, 즉 개인적인 삶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와는 다른 차원임을 고려해야 한다.


마키아 벨리는 ‘국가의 존립’에 관계되는 것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신민들의 안정과 나라의 존망이 딸려있기에 파멸로 치달을 수 있는 섣부른 자비는 위험한 것이며, 질서를 위해서는 잔인한 무력도 합당화가 된다는 지극히 날카롭고 현실적인 시선으로 조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으로 인해 교회에서는 그가 악마적인 존재로 비쳤음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프로이센의 프레드리히 대왕은 “ 이 사람의 책은 악의 책이고, 그는 악의 교사다. 이런 사람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까지 했다니 그 당시 마키아벨리가 그들에게 어떠한 존재로 비쳤는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인간은 착한 일을 해야 하고, 남을 도와주고, 사랑을 베풀며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인데, 마키아 벨리는 그러한 도덕적인 윤리관 속에 갇힌 당위적인 인간이 아닌, 현실적인 인간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으니 불편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시선으로 군주론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평가는 극과 극으로 치닫는다. 


헤겔


헤겔의 마키아벨리에 대한 재평가를 들어보자.

끊임없이 벌어지는 전쟁 속에서 인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것을 통해서 우리 공동체를 어떻게 튼튼하고 정의롭게 만들어 가는지, 전란과 황폐 시대를 살아가면서 얻은 그 보석 같은 지혜를, 우리가 “나쁜 거다”며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즉, 평화로운 시대에 얻은 생각을 가지고, 저 사람은 사악하니 선하니를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헤겔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이다.  


군주론은 이상적인 인간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어떤 현실적인 모습을 해부학적으로 하나하나씩 다 낱낱이 잘라내고 뒤집어보고 반응을 체크해 보며,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군주론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 즉 절대왕정이 성립되는 시기에 그 현실을 바탕으로 쓴 책이고, 군주가 어떠해야 되고, 어떤 것이 군주의 바람직한 자질이 되는지를 쓴 것이다. 지금 현대는 절대 왕정시대를 넘어서서 민주시대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지 300년이 돼가는 시기로, 현실적으로 군주론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융통성 있게, 탄력적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기계론적인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라고 정승민 교수는 말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에서의 정치와 윤리의 문제에 관한 두 가지 논점을  기록 차원에서 옮겨 왔다.

첫째, 마키아벨리는 정치영역에서는 윤리적인 덕이 자동적으로 공적인 덕으로 전환되지 않으며, 사적으로는 비윤리적인 행위가 공적인 영역에서는 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했다. 남을 잘 신뢰하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 사적인 영역에서는 유덕한 행위이지만, 인간의 이기심과 재화의 희소성으로 인해서 폭력과 기만이 난무하고, 한 개인의 사활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사활이 걸린 정치영역에서는 그러한 행위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공적으로는 유덕한 행위가 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마키아벨리는 지적하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사적인 영역에서 남을 속이거나 폭력을 수반하는 잔인한 행위는 유덕한 행위가 아니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전체 공동체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유덕한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월린이 지적한 것처럼 마키아벨리는 공적인 영역에서 항상 사적인 윤리에 반해서 행동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사적인 윤리규범이 적용되지 않는 정치적 상황의 특수성과 한계를 지적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즉 마키아벨리는 “대부분의 정치적 상황이 불안정하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국가 공동체와 인민은 사적인 개인과는 다른 방법으로 통치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둘째,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행위가 사적인 행동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에 부합하는 상황을 지적하고자 고심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정부가 안정되고 확고한 상황에서 운영된다면 정부는 연민, 신뢰, 정직함, 인륜 그리고 종교와 같은 기존의 덕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곧 마키아벨리는 이와 같은 상황하에서는 공적인 윤리와 사적인 윤리가 일치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적인 상황이란 선과 악 중에서 일목요연하게 택일하는 것이 아니라, 악(evil)과 보다 적은 악(lesse vil) 중에서 보다 적은 악을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웃음이 지어졌던 것은 브라질 선거철 때마다 브라질 사람들이 늘 하는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정부패로 썩어빠진 브라질 관리들이 이런저런 온갖 미사여구로 이룰 생각도 없는 공약을 내던지며 표를 구하는 모습을 보는 국민들은 자괴감에 빠진다. 자괴감에 빠지는 것은 무능력한 ‘그녀’만이 아니다. 누구를 뽑을 거냐고 서로 물으면서 대답은 공통적으로 튀어나온다. “menos ruim”, 즉 ‘덜 나쁜’, ‘덜 썩은’ 후보자를 찍겠다는 의미다.


모든 것인 선과 악의 선택으로 택해질 수 있다면 세상은 이렇게 어지럽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지극히 소소한 개인적인 삶 속에서도 선과 악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데, 심지어 정치 세계에서는 오죽할까. 


마키아벨리는 통치 역량과 무력을 겸비한 체사레에게서 외세의 각축장이 된 조국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부분적으로는 그를 모델로 삼아 <군주론>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체사르 보르자는 아버지 율리우스 2세가 죽고 난 후 금방 죽게 됨으로 지모로도 용모로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뛰어났던 남자였던 체사르는 32세의 나이로 반란군의 손에 죽게 되며 마키아벨리가 그토록 원했던 이탈리아의 통일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영혼보다 피렌체를 더 사랑한 마키아벨리는 진정 애국자였고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군주론>은 폭군을 위한 저서도, 권모술수를 전파하려는 ‘악마’의 저술도 아니었다. 그것은 귀족들의 전횡 속에서 질서가 무너진 취약한 한 국가가 타국의 침략 속에서 나아갈 바를 모르고 있을 때, 그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집필된 것이었다.  (...)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이탈리아에는 두터운 성벽도, 함선도, 금은보화도 부족하지 않았다.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관계에 있었다. 귀족들이 자원을 독점하고 인민들이 정치에서 배제된 상황에서 이탈리아는 그 풍부한 물적, 인적 자원을 응집시켜 외세에 대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는 귀족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이 되었고, 인민들은 귀족들이 나누어주는 떡고물에 취해 배가 불러 꼭두각시가 되어버렸다. 공은 사라지고 사만 풍미하게 된 것이다. 부패와 무질서의 상황을 극복하고 질서를 세우는 것, 공동체의  영역에서 사의 전횡을 물리치고 공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군주의 임무였던 것이다.   – 제3판 개역본 해제 중 –  


<군주론>이 ‘민주주의의 교과서’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읽다가 자주 책을 손에서 내려놓아야 했다. 그가 낱낱이 해부하여 보여주는 인간의 양면성과 어두운 면을 보며 그 안에서 나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떤 인간인가? 나는 어떤 리더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뜨끔뜨끔하며 콕콕 찔려오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부족한 모습들. 많은 부분 편치 않았지만, 군주들에게 하는 마키아벨리의 조언은 군주도 공주도 아닌 내게 귀한 조언들로 다가왔다.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받는 따끔한 충고는 칭찬만큼이나 언제나 나에게 감사함을 안겨준다. 덕분에 1cm만큼 성장한 것 같은 풍요로운 충만함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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