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by pumpkin



오래전,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을 읽으며 강상중 교수의 ‘오매불망 내 사랑’인 나쓰메 소세키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자전적 소설이란 말에 솔깃하여 그의 작품 <한눈팔기>를 접했었는데, 이번에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을 읽었다. 오랜만에 깔깔 웃음이 터져 나오는 재밌고 유쾌한 책이었다.


처음부터 소설로 써내려고 한 작품이 아니라, <두견새>라는 회보에 단행본으로 실렸던 글이 생각지 않게 호평이 대단하여 연재 제의를 받고 11편으로 엮은 책이라 책의 스토리기에 체계적이지 않고 다소 산만한 구성을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 우리 인간사가 체계적으로 그렇게 계획대로 이어지던가. 오히려 예고 없이 중간에 불쑥 끼어드는 인물들로 더 현실적인 일상으로 느껴져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나쓰메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쓰면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고 하니, 나로서는 이만저만 감사한 작품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나쓰메 소세키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으니 말이야.

그의 자전적 소설 <한눈팔기>를 읽기는 했지만 모노톤으로 이어지는 회색적이고 암울한 분위기가 책 전체에 깔려 있어 읽으면서 내내 우울한 느낌이 함께했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 입양되어 가지만 훗날 다시 파양 되어 친부모에게도 양부모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우울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갖고 있는 겐조의 이야기. 이 아이는 나중에 영어 선생이 되어 나름 존경받는 위치에 오르나, 좀 살만하니 양아버지가 끈질기게 자신의 은혜에 보답하라며 돈을 요구하고, 그 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마음 한 구석에 묵직한 돌덩어리를 메단 듯한 갑갑하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마치 그의 사전에 ‘웃음’이나 ‘행복’이란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은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밝고 유쾌했다. 이름이 없어 그냥 ‘나’로 명명되는 고양이의 눈에 비치는 인간들의 삶을 바라보는 예리하고 시니컬한 시선은 상상치 못한 부분에서 폭소를 안겨준다. 인간관계나 심리를 꿰뚫고 있는 듯한 이 시건방진 고양이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나도 어느새 고양이 <나>와 함께 짓궂은 일당이 되어있었다.


어찌나 재밌게 읽었는지 같은 작가가 썼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진지함 속에 툭툭 터지는 유머에 깔깔대며 읽은 책도 드물었던 것 같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구성이 흥미롭다. 하나같이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 몇몇 시선을 끌은 등장인물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PNG


고양이 <나>


이름이 없어 <나>로 지칭되는 주인공 고양이. 비록 고양이지만 ‘에픽테토스를 읽다가 책상에 내던지는 학자’의 집안에 기거하는 고양이로 세상의 일반적인 유치하고 어리석은 고양이와는 종자가 다르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고양이다. 이 책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장본인 아니, 장본묘다.


“고양이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 단순하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울 때는 죽어라 하고 운다. 게다가 일기 같은 씨잘 데 없는 것은 절 때 쓰지 않는다.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에 드러내 보일 수 없는 자신의 속내를 풀어놓아야 하겠지만, 우리 고양이족은 먹고 자고 싸는 생활 자체가 그대로 일기이니 굳이 그렇게 성가신 일을 해가면서 자신의 진면목을 보존해야 할 것까지는 없다. 일기를 쓸 시간이 있으면 툇마루에서 잠이나 즐길 일이다.” (P30)


오랜 기간 일기를 썼던 나로서는 뜨끔한 일침이었다. 글고보니 그런 것 같았다. 겉과 속이 다르니 일기라도 써서 내 속내를 풀어놓아야 하는 것. 행복한 일, 기쁜 일, 힘겨운 일, 등등을 쓰기도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며 관계 속에서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일기장에 끄적거리는 나였으니, 정말이지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겉과 속이 다른 인간, ‘내가 그런 인간이었구나’ 몰랐던 사실이다.


“지카마쓰 하면 희곡가인 지카마스를 일컫지, 지카마쓰가 둘이 있으랴. 그런 것을 묻는 주인을 어지간한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주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사팔 뜨기가 자기를 보고 반해 자꾸만 곁눈질로 바라본다고 착각하여 기뻐하는 사람도 있는 세상이니 이 정도 어리석음은 놀라울 것도 없어, 주인의 손길에 머리를 내맡기고 있었다. (P47)


앞으로 고양이를 보면, 저 녀석은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질 것 같다. 앞으로 고양이한테 좀 잘 보여야 할까나?


“나는 머리로 활동하라는 하늘의 명을 받고 이 험난한 세상에 왔을 만큼 고금을 막론한 희귀한 고양이이므로 몹시 소중한 몸이다. <천금지자 좌불수다>이라는 말도 있듯이 남보다 뛰어난 것을 자만하여 공연히 내 신상에 화를 초래하는 것은 나의 재난임은 물론이요 하늘의 뜻을 크게 거역하는 것이다. (…) 이리도 똑똑한 내가 쥐를 못 잡을 리 없다. 못 잡을 리 없을 뿐 아니라 잡았다가 놓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잡지 않은 것은 잡고 싶지 않아서이다” (P181)


이쯤 되면 자뻑도 구제불능 수준이다. 잘난 척이 하늘을 찌른다. 그 자만감이 어찌나 거대한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때는 아마도 고양이가 아닌 호랑이로 보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너무나도 잘나신 고양이의 눈에 비친 인간사는 어땠을지 상상이 어렵지 않다.




진노 구샤미


<나>인 고양이의 주인으로 중학교 영어 선생이다. ‘진노 구샤미’란 이름이 재밌다. 진은 일본의 재래종 애완견이며, 구샤미는 ‘재채기’란 뜻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재채기하느라 찌그러진 진처럼 못생긴 얼굴임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할 것은 결코 아니나, 그 외모가 어떤지 가히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신경쇠약과 위장병을 앓고 있고, 시니컬한 성격에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예방 주사를 잘못 맞아 구샤미는 곰보 얼굴을 하고 있다. 자신의 얼굴이 곰보인 것이 은근 신경 쓰이는 구샤미가 어느 날 서양에서 돌아온 친구에게 묻는다.


“자네, 서양에도 곰보가 있는가?”
“글쎄, 잘 안 보이던데”
“잘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은 아니겠지”
“있어도 거지나 부랑자겠지. 교양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없는 듯했어”
“그런가, 우리나라와는 좀 다르군:


은근 자신의 학식을 잘난 척을 하면서도 미운털이 박히지 않은 모양이다. 진득한 인간적인 면이 있는지, 늘 집안에는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읽다 보면 나쓰메 소세키가 자신의 많은 부분을 이 구샤미에 그려놓았음을 느낄 수 있어서 그 또한 재밌었다.



미학자 메이테이


시도 때도 없이 구샤미 집에 드나들어 집주인이 누군지 헷갈릴 정도로 구샤미네 집에 들락거리는 친구다. 활발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메이테이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샤미와 늘 티격태격하면서 웃음을 던져주는 인물.


유식한 채 하고 싶을 때는 “무릇 아름다운 것은 그리스에서 발원한 것’이라며 그리스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자신이 바보라는 것만 모르지 웬만한 것은 다 알고 있다는 재밌는 이야기꾼이다.


구샤미와 주로 티격태격하는 사이이긴 하지만, 그 마음 밑에는 그만큼 허물없는 사이며, 또 진정 친구를 위하는 인물임이 느껴진다. 미리 연락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자기 집처럼 들락거리는 것만 빼면, 밝은 기운을 던져주는 재밌는 캐릭터로 이런 친구가 한 명쯤 내 곁에 있었음 하고 바라게 되는 인물이다.



이학사 미즈시마 간게쓰군


한 때 구샤미의 제자로 제목도 너무 재밌는 <목메닮의 역학>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인물이다. 부자 사업가 가네다가 자기 딸의 남편감으로 점찍고 있는 인물로 허구한 날 유리 공을 갈고 있다. 가네다네로 장가를 가는 듯싶었지만, 어느 날 고향에 다녀온다더니 덥석 결혼을 하고 나타난다. 남이 뭐라 하건 자기 할 말은 조근조근 다 하는 은근 재밌는 인물이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천재 간게쓰가 그 시골에서 바이올린을 구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정말이지 압권이다.


철학자 야기 도쿠센


중간에 툭 끼어든 인물로 역시 구샤미 집에 드는 친구들 중의 한 명으로 염소 수엽을 기르고 다닌다. <동양적 소극주의>를 주장하는 나름 철학자지만, 그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여 <무각 선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역시 메이테이군과 티격태격하는 사이다.


이 밖에도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엑스트라는 옆으로 두고, 주연과 조연들만 올렸다.






이 소설이 그토록 내 안에 깊이 들어온 것은 하나도 특이한 사건이 없는 우리 일상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놓았음이다. 그래서 마치 내 주위에도 벌어질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들, 사건들을 그렇게 고양이의 시선을 펼쳐놓은 것이다. 그 평범한 이야기들의 전개는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나 시인들이 그렇듯이 소세키의 관찰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제목답게 고양이의 몸동작 하나하나 글로 표현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집요하고 치열하게 관찰했는지를 알 수 있다. 고양이가 운동이라며 버마제비 잡기와 쓰르라미 메미를 잡는 묘사 부분은 묘사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의도 없고 시건방진 사업가 가네다의 부인 하나코의 코를 두고 나누는 대화는 짓궂음의 절정이다. 평소 고고 한척하는 구샤미 선생과 메이테이, 두 사내 안에 숨어있던 개구장이의 출현.


안 그래도 가난한 살림에 안주인이 바꿔 멜 허리띠조차 없는 집안에 도둑이 들어 애들 옷이며, 허리띠며, 버선이며 가져가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다. 그때 선생과 아내가 도둑이 훔쳐간 목록을 만들면서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배꼽을 잡게 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세 딸아이들의 밥을 먹는 장면을 그려놓은 부분에서는 허걱 놀라움이 일었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느낌. 작가의 묘사력에 그저 놀랄 따름이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간게쓰가 바이올린을 사기까지의 스토리가 담긴 에피소드는 나의 유머 코드를 제대로 저격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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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주고는 고양이는 2살의 짧은 삶을 마감한다. 인간들이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듯한 맥주를 자신도 마셔보겠다며 부엌으로 들어간다. 혓바닥을 싸하게 쏘아대는 맛에 잠시 멈칫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 죽은 후에 비석 뒤에 웅크리고 앉아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는 마셔보자며 들이킨다.


그렇게 마시고는 취한 고양이는 그만 물독에 빠져 생을 마감한다. 바둥바둥 대 보지만 10cm를 넘어서지 못하고는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생각지 못한 결론이었다. 어떤 결론을 그리며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고양이의 죽음은 상상에서도 그려보지 못한 결론이었다. 허무함이 느껴지는 순간. 마치 우리의 삶은 죽음은 결국 허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늘 태평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을 두드려 보면
어디에선가 슬픈 소리가 난다.”

책 전체를 지배하는 풍자와 해학으로 읽는 내내 폭소를 자아내게 하지만, 그 안을 가만 들여다보면 나쓰메 소세키의 삶의 어두움이 칙칙하게 깔려 있다. '인간의 삶이 다 그렇지 뭐'라고 말하려는 듯.

그래선가.

읽는 내내 깔깔댔던 웃음이 무색하게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눈물 한 방울이 대롱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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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번역 덕분에 읽는 내내 행복했다.

글의 결을 그대로 살려 우리말로 옮겨주신 김난주 님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