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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mpkin Aug 08. 2022

재밌는 철학사, 안광복의 <처음 읽는 서양사>를 읽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 비트겐슈타인


저자 안광복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Elenchos)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중동고등학교 철학교사로 고등학생들에게 철학과 논리적 사고를 가르치고 있으며 학생들과 함께 ‘즐겁게 철학하기’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을 위하여 철학과 비판적 사고에 관한 글을 여러 곳에 쓰고 있으며, 서양 고대 철학과 철학 교육을 화두 삼아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또한, 자립형 사립고 특성화 교과로 기획된 “Who am I?”라는 창의적 재랑활동 과목을 수업하며 개발 중이다. (어쩜, 지금은 개발을 끝내셨을지도)


책에서 느끼는 그는 빠울로 꼬엘료가 작가를 두고 했던 재밌는 표현처럼 흐트러진 머리에 안경을 쓰고 뭔지 모를 무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다니는 철학자의 느낌이 아니었다. 아주 현대적이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심각하게가 아닌, 진지하지만 즐겁게 철학을 삶 안에서 실현하는 분으로 느껴졌다. 


글 속에 잠복하고 있는 윗트와 유머는 읽는 내내 종종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뜨리게 했고, 그 흐름이 얼마나 재밌는지 마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는 듯 안달나는 짜릿한 희열을 안겨주었다. 그가 말하는 철학은 단순히 그냥 이론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실용적인 철학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고, 논리적으로 되짚어 생각하게 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을 앎으로서 삶의 문제를 풀어내게 하려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흥미로웠다. 어쩜 그래서 더 가까이 쉽게 재밌게 다가왔던지도 모르겠다.


저자 조사를 하다가 안광복 선생이 생각보다 훨씬 젊어서 살짝 놀라기도 했다. 이런 어려운 철학을 안광복 선생님과 함께 재밌고 즐겁게 공부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중동 고등학교 학생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도 중동 고등학교 학생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난 남자로 태어나는 우선절차를 거쳐야 하니, 안타깝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부러움의 크기가 더 컸는지도.


삶을 살아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우연히 이뤄지게되는 훌륭한 스승과의 만남은 삶이 안겨주는 축복이다. 대부분이 나의 의지나 선택의 영역 안의 것이 아님을 떠올릴 때, 중동 고등학교 학생들은 얼마나 행복한 학생들인지. ‘지상으로 내려온 철학’이 아니라, ‘지상으로 떨어진 축복’을  누리고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을런지.


저서로는 <청소년을 위한 철학자 이야기>. <소크라테스의 변명 – 진리를 위해 죽다>. <철학, 역사를 만나다>등이 있고, <곰스크로의 여행>등의 번역물, <플라톤, 소피스트’편에서의 비존재 논의 고찰>. <교양과목으로서의 논리학 개선 방안 연구>. <논술형 평가의 실제>, <통합 교과적 독서교육방안 연구>등의 논문을 발표 했다.




나를 외도하게 만든 책..


철학은 내게 넘 거창하고 거룩해 보이고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 느껴졌기에 감히 읽겠다거나 가까이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없었다. 하지만 철학 특강으로 ‘철학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우선, 무엇보다 철학자들의 삶이 나의 깊은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2010년 5월, 이 책을 만났던 당시, 나는 이 책이 읽고 싶어 몸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해서 읽고 있던 책을 잠시 옆으로 밀어놓고 급기야는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일단 책을 손에 들으면 끝까지 다 읽을 때까지 일편단심인 나를 외도하게 한 책. 바로 안광복의 <처음 읽는 서양철학사>였다.


관심가는 철학자를 골라 읽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 책에 나열된 순서로 읽어나간 것이 내게는 흐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왜 고대주의에는 이상과 국가가 철학자의 관심이었고, 스토아 철학에 이어 스콜라 철학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근대에 들어 신을 부정하고 이성과 과학을 앞세우는 철학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특히, 간결하면서도 옛날 이야기를 읽듯 재밌게 마치 저자 스스로가 신이 나서 써 내려간 듯한 스토리 전개는 도저히 책을 손에서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철학자의 모습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진실로 추구하고자 했던 사상과 마키아 벨리. 홉스. 그리고 쇼펜하우어처럼 그들의 사상과 주장 뒤에 숨어있는 궁극적인 목적과 의미를 알고난 후에는 아련한 아픔이 일기도 했다.



칸트 - 비트겐슈타인 - 미셀 푸코



철학이 아닌 철학자, ‘사람’


서양 철학사를 읽으며 느낀 것은 역시 나는 ‘사람에 관심이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도저히 손에 뗄 수 없을만큼 재밌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책에 소개된 철학자들의 이론이나 주장이 매력적이거나 내 가슴을 깊이 파고 들어서가 아니었다. 물론 그들의 사상에 전혀 관심이 안가는 것은 아녔으나, 그들이 삶을 바쳐 주장한 사상보다 나를 매혹시켰던 것은 바로 철학자 그들 자신의 삶이었다. 그들이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떤 환경 속에서 자랐고 그들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어떤 성향을 지녔더랬고, 어떤 과정을 통해 철학에 관심을 갖게되었고 어떤 사랑을 했는지 등등의 그들의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들이 나를 열광시키며 빠져들게 했다. 


그들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사상이나 철학을 자신의 삶으로 실현해내고자 한 바로 그것이 나에겐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하마트면 착각할 뻔 했다. 내가 ‘철학’에 큰 관심이 있는 것으로 말이다. 내가 ‘철학’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사람’에 관심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나에 대한 또 다른 발견이다. 나는 늘 ‘사람’에 관심이 있었는데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있던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은 큰 얻음이었다.


암튼, 인간적으로 존경과 감동 속에 눈물 흘리게 하는 철학자가 있는가 하면 고개 숙여지는 철학자가 있었고,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매력적인 철학자도 있었으며, 베이컨처럼 어떻게 이런 장삿군 같은 철학자도 있었을까하며 읽으면서 분통 터뜨리게 하는 철학자도 있었다. 이렇듯, 철학자들의 재밌는 에피소드는 나를 더욱 책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그 중에서도 메인이 아닌 졸지에 밤 무대 이류 가수로 둔갑한 쇼펜하워의 이야기는 웃기지만 슬펐고, 비트겐슈타인이 부지깽이 들고 포퍼에게 덤벼들던 장면에서는 배꼽을 잡고 데굴데굴 굴렀고, 애틋하면서도 정신적인 아름다운 사랑을 했던 헐리우드 배우 뺨치는 삶과 외모의 소유자 존 로크와 품격있는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사랑이야기는 내 가슴을 촉촉히 적셔내렸다. 


어디 그뿐인가? 아름다운 미소년 플라톤이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드림에서 바로 ‘플라토닉 러브’라는 단어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와 함께, 철저한 자기관리, 시간관리 그리고 성실한 학습으로 게으른 나를 놀라게 했던 칸트. 그 아름답고 슬픈 청년 ‘에밀’의 루소, 볼테르, 라이프니츠 등등등, 너무나도 나를 매료시킨 수 많은 철학자들.  


그외에 나에게 존경과 감동과 사랑이 우러나게 했던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를 좀 더 깊이(?) 알게되었고, 못생긴 소크라테스의 당당함에 눈물이 났더랬으며,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성의 소유자 ‘걸어다니는 수학 공식’ 버트런드 러셀. 전쟁 영웅이며 괴짜인 비트겐슈타인은 정말 매력덩어리였다. 


미셀 푸코의 매력적인 외모에서 내가 존경하던 울프 교수님의 모습을 느낄 수가 있어서 또한 내겐 읽는 내내 즐거움이었다. 철학계의 제임스 딘, 사르트르가 궁금하여 그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그의 못말리는 여성편력에 혀가 끌끌 내둘러지기도 했다.


천재는 어쩜 그리도 많은지 읽으면서 살짝 기가 죽기도 했지만,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흥미로움과 기쁨과 슬픔과 감동은 나를 잠시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했다. 수 많은 매력적인 철학자들의 이야기 속에 나는 풍덩 빠져 헤어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 속에 묻혀 허우적거리고 싶었다.



안광복




이루어진 바램..


책을 읽는 내내 얼마나 웃었는지. 시니컬하면서도 윗트와 유머가 곳곳에 묻어나는 저자의 표현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철학이란 분야를 재밌는 철학이야기로 둔갑시켜버렸음이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셔서 그런가? 학생들이 사용할만한 웃기고 재밌는 표현들을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면서 독자들이 알아듣기 쉽게 풀어 놓았다.  그 다음에 이어질 철학자는 누구일지 어떤 분일지 궁금하여 읽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였다. 얼마나 재밌었는지 남아있는 페이지가 줄어드는게 불안할 정도였다. 



저자인 안광복 선생님의 표현대로 철학을 모르는 이들에게 철학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어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는 그의 겸손한 바램은 그 이상으로 이뤄지지 않았을까 싶다. 어렵다고 생각되는 철학을 재밌게 읽고 즐기도록 하면서 철학이 무엇인지를 보려주려고 했음이 분명하게 느껴졌고, 이렇게 폭 빠지게 했으니. 물론 내경우 철학이 아닌 철학자에게. ^^ 


이 책 한권을 읽고 내가 철학을 알았다고 어찌 말하겠는가? 그저 들어도 낯설지 않은 철학자의 이름이 조금 더 많아졌고, 그들의 삶을 좀 더 알게 되었다는 정도일 뿐이지만, 고대부터 현대까지 주루루 흝어 내려오며 전체적인 흐름을 엿볼 수 있었음은 내게는 참으로 크나 큰 공부가 되었다. 너무나도 달콤했던 시간.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철학자가 많아졌음에 괜히 마음이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우선 안광복 선생님의 다른 책을 사서 읽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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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Else Matters - Metallica

William Joseph의 피아노 연주로 올려본다.


2010.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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