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순간 우주가 나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움직인다.”
‘성공’이란 표현은 성취감을 안겨주는 긍정적인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내게는 조금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성공’은 경제적인 부로 많이 국한되어 표현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경제적인 풍요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품위’를 지킬 수 있을 만큼의 물질적인 여유는 필요하다. 물질의 중요성은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어릴 때부터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외국생활을 하면서 숨 쉬는 것조차 고문이라 느껴질 만큼 혹독한 고통을 겪었다. 물질적인 풍요가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온 몸으로 경험했다. 그렇기에 나의 사랑하는 딸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 나와 남편이 열심히 일을 하는 이유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내적인 성장 없이 외적인 성공만을 강조하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부분들이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외적인 조건으로 판단됨을 느끼곤 한다. 명품에 목숨 거는 이유도 바로 그런 데서 오는 것 아닐까. 외적으로 좀 뭔가 있어 보여야 인정받는 사회다 보니, 빚을 내서라도 명품 백을 들며 그룹에 속하고 싶은 마음. 안타깝고 안쓰럽다. 자존감은 가출한 지 오래고, 그저 사회적인 시선에만 예민하게 반응하며 영혼을 잃어버린 사회.
물론, 우리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사회의 추세가 그렇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멋진 도약을 하는 이들이 있음을 내 어찌 모를까. 그런 건강한 지성들이 있기에 아직 우리 사회는 밝고, 희망이 있는 것이다. 딸들에게도 강조하는 것도 바로 그런 부분들이다. 외적인 멋에 매달리기보다 삶에 의미를 안겨주는 삶을 살라고 말이다. 명품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차라리 여행을 떠나라고 이야기한다. 딸들은 고맙게도 잘 따라주었다.
큰 아이가 대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갈 때 이야기다. 유학을 떠나기 전 몇 년 동안 점심 비용까지 아껴가며 용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틈틈이 유럽 여행을 다니며 흥분되는 경험들로 가득 채우고 돌아왔다. 둘째 아이도 포르투갈에서의 유학생활도 언니처럼 그렇게 해냈다. 그것은 여행을 떠난 딸아이에게도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나에게도 아주 멋진 경험이었다.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딸아이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놀랍게도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큰 아이는 지금 프랑스에서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모든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하면서. 그리고 작은 아이는 회사에서 커머셜 디자인을 하며 건축학 전공을 살려 프리랜서로 뛰고 있다. 내가 우리 딸들의 엄마여서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아이들. 딸들이 자라는 동안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피상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자기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꿈을 꾸는 행복을 나누는 비젼가로 성장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꿈을 꾸는 순간 우주가 자기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움직이고 있음을 삶 속에 뜨겁게 경험하면서...
꿈을 꾸는 순간
우주가 나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움직인다.
지난날, 빠울로 꼬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으며 내게 전율을 일으켰던 구절이다. 나는 꿈을 갖게 되면 치열하게 그 꿈을 마음속에 그렸다. 매 순간 그 꿈을 그렸기에 잊힐 수 없었고, 나의 모든 시간과 생각은 그 꿈으로 향해 있었다. 수많은 어려움이 내 앞에 닥쳤지만, 치열하게 헤치고 앞으로 나갔더랬다. 내 앞에 장애물이 닥칠 때마다 나는 더 강해졌고, 꿈에 대한 열정은 더 뜨겁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 꿈이 내가 눈을 뜨고 있는 현실 안에서 이뤄지는 뜨거운 희열을 누렸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꿈꾸는 것을 잊어버렸다. 때론 꿈은 꾸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그 그림은 잊히고 사라졌으며, 나는 다른 꿈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읽던 중 문득 머리를 세차게 치고 들어온 생각 하나. ‘왜 나는 지난날의 나와는 다르게 꿈에 이르지 못하는 걸까.’ 처음엔 상황과 환경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결혼했고 가정이 있으니 할 수 없는 거라는 그럴싸한 이유가 튀어나왔다. 그런데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니 환경 탓도 경제적인 탓도 아닌, 바로 내가 꿈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충격이었다. 터져버린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내가 언제부터 꿈을 잊어버렸던 걸까..?
내가 언제부터 꿈을 꾸기를 그만두었던 걸까..?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딸아이들도 컸고, 아이들이 성장해감에 따라 나도 함께 커갔다. 그리고 딸아이들의 꿈과 함께 나도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내가 그린 그림들이 삶 안에서 어떻게 그려지는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희열과 전율 속에 느꼈다.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여전히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고, 내가 하는 공부들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더 많은 책을 읽고 싶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공연엘 가고 싶고, 세계 미술관 순례를 하고 싶고, 멋진 이들과 지적 교류를 나누고 싶고,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를 꼭 가고야 말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눈을 감는 순간, 나는 성공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는 꿈을 이룬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꿈을 시도하며 그 순간을 즐기며 행복해하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욕심을 좀 더 부리자면, 우리 애리와 리예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꿈을 사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삶을 살아가다가 때때로 힘겨운 고통이 닥쳐오더라도 꿈으로 이겨내며, 자신의 삶을 꿈으로 가득 채우는 그런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기 바란다. 그래서 많이 많이 행복하기를....
그래서 천상병 시인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