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언어들

'보수'라는 말의 마지막 숨결

by 리함

언어가 죽어가는 시간들

어떤 단어들은 시간 속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보수(保守)라는 말이 그렇다. '지킬 보(保)'에 '지킬 수(守)'.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마음일 뿐인데, 언제부터 이 단순한 마음이 정치적 색깔로 치부되기 시작했을까?

사전을 찾아보면 "종래의 풍습이나 전통, 사상, 제도 등을 그대로 지키려고 하는 성향"이라고 나와 있다. 여기 어디에도 부정적 의미는 없다. 오히려 안정감 있고 신뢰할 만한 태도로 느껴진다.

그런데 지금 이 말은 거의 죽어가고 있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독을 풀어놓은 것처럼. 신중함은 답답함으로, 전통 존중은 시대착오로, 점진적 개선은 무기력함으로 둔갑했다.


온고지신의 잃어버린 의미

공자가 말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것을 안다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수 정신의 핵심이다. 과거를 단순히 그리워하거나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지혜를 찾아 현재와 미래에 적용하는 것. 전통과 혁신 사이의 섬세한 균형을 잡는 것.

하지만 지금의 소위 '보수'들은 이 균형을 잃었다. 온고(溫故)는 있되 지신(知新)이 없다. 과거에만 매몰되어 미래를 읽지 못한다. 아니면 아예 반대로, 전통은 내팽개치고 권력욕에만 매달린다.

진정한 보수라면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좋은 것은 계승하되 나쁜 것은 개선하고, 검증된 지혜는 받아들이되 시대착오적 관습은 버려야 한다. 이것이 온고지신의 정신이다.


정치가 언어를 살해하는 방법

문제는 '보수'라는 개념이 정치적 성향으로 축소되면서 시작되었다. 본래 보수적 성향이란 개인의 기질이나 사고방식에 가까웠다. 급진적 변화보다는 점진적 개선을 선호하고, 검증되지 않은 실험보다는 검증된 방법을 신뢰하며, 파괴보다는 보존을 중시하는 태도.

하지만 정치권이 이 말을 독점하면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보수 정당이라는 것들이 나타나서 "우리가 보수다!"라고 선언했고, 사람들은 보수라는 개념 자체를 그들과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거대한 사기극이다. 마치 특정 회사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상표로 등록한 다음, 그 회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거부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바이마르의 그림자, 극단이 온건을 삼키는 법

역사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193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을 보라.

당시 독일에는 건전한 보수 세력이 있었다. 온건하고 합리적이며, 민주주의 틀 안에서 점진적 개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극우 세력의 부상 앞에서 무력했다.

나치가 등장했을 때, 온건 보수들은 "우리가 그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극우의 에너지를 활용하되 우리가 주도권을 잡겠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극단이 온건을 집어삼켰고, 보수라는 이름으로 파시즘이 득세했다.

지금 한국의 상황이 그때와 얼마나 다른가? 건전한 보수는 사라지고, 극우와 종교근본주의가 '보수'라는 이름을 차지했다. 온건한 목소리는 묻히고, 극단적 구호만 울려 퍼진다.

바이마르의 교훈은 명확하다. 극단주의가 온건함을 이용할 때, 온건함이 살아남는 길은 극단주의와의 명확한 결별뿐이다.


가짜 보수들의 반보수적 행태

스스로를 보수 정당이라고 부르는 집단들의 행태를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진정한 보수적 가치란 무엇인가? 신중한 판단과 점진적 개선, 원칙과 절차의 존중, 안정성과 예측가능성, 전통적 가치의 계승과 발전, 품격 있는 언행과 상호 존중이다.

그런데 현재의 보수 정당들은? 신중함은 커녕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다. 원칙은 내편 외편에 따라 바뀌고, 안정보다는 갈등과 분열을 부추긴다. 품격은 찾아볼 수 없고, 전통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도구로만 사용한다.

윤석열을 보라. 검찰총장 시절 "수사권 독립! 정치적 중립!"을 외치며 원칙을 강조했지만, 대통령이 되자마자 검찰을 사병화했다. 이원석을 총장으로 앉히고, 채상병 수사에는 외압을 가하며, 이재명은 기소하고 김건희는 비호한다.

이게 온고지신의 정신인가? 이건 그냥 권력욕의 발로다.


자본주의에 대한 왜곡된 이해

보수가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공정한 경쟁과 자유로운 시장을 바탕으로 한 건전한 경제 시스템이다. 개인의 노력과 창의가 정당하게 보상받고,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지되 결과는 각자의 몫인 사회 말이다.

온고지신의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의 '고(故)'는 자유 경쟁과 개인의 창의성 존중이고, '신(新)'은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공정하고 지속가능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보수 정당들이 옹호하는 자본주의는? 특정 기업이나 재벌을 위한 특혜 자본주의,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기득권 자본주의다. 시장의 룰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고, 실패의 책임은 사회에 떠넘기는 왜곡된 시스템이다.

진짜 보수라면 시장 경제를 신뢰하되 그것이 공정하게 작동하도록 감시해야 한다. 독과점을 견제하고, 불공정 거래를 막으며, 시장이 실패할 때는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봐야 한다.


애국과 국익에 대한 성찰

보수가 추구하는 애국심과 국익이란 무엇일까? 공자의 가르침처럼, 우리 역사와 문화의 좋은 점은 계승하되('온고'), 그것을 현재와 미래에 맞게 발전시켜나가는 것('지신')이다.

건전한 자긍심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국가 사랑, 우리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되 맹목적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고, 국익을 추구하되 다른 나라와의 상생을 잊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보수 정당들은? 일본에는 굴욕적으로 굽신거리면서 중국에는 무작정 적대시한다. 미국 눈치만 보면서 자주적 외교는 포기한다. 역사를 왜곡하고 전통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바이마르 공화국도 그랬다. 극우 세력들이 '조국'과 '전통'을 외쳤지만, 정작 그들이 한 일은 조국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었다. 애국을 가장한 매국, 전통을 빙자한 파괴였다.


교회와 정치의 불순한 결합

가장 한심한 것은 종교와 정치권력의 결탁이다.

전광훈, 김노아 같은 인물들을 보라. 이들은 목사라는 종교적 권위를 정치적 영향력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나님께서 윤석열을 세우셨다",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신앙이다", "진보는 사탄의 세력이다"... 이런 말들이 설교단에서 공공연히 나온다.

공자라면 뭐라고 했을까?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각자의 역할과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목사는 목사다워야 하고, 정치인은 정치인다워야 한다. 종교는 영혼을 다루고, 정치는 현실을 다룬다. 이 경계를 무너뜨리면 둘 다 타락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도 일부 기독교가 나치와 결탁했다. '독일 기독교도(Deutsche Christen)'라는 이름으로 히틀러를 지지했다. 그 결과는? 교회도 망하고 나라도 망했다.


진짜 보수의 역설적 선택

역설적이지만, 지금 시대에 진짜 보수일수록 보수 정당을 지지할 수 없다.

공자의 또 다른 가르침이 있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나는 안다. 현재의 보수 정당들이 진짜 보수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보수의 이름을 도용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 보수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을.

보수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의 선택이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필연이다. 바이마르의 온건 보수들이 극우와 손잡았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우리는 안다.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할 때, 진짜는 가짜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온고지신의 정신에 따르면, 과거의 교훈(바이마르의 실패)을 통해 현재의 선택(가짜 보수 거부)을 해야 한다.


언어 되찾기의 의미

결국 이것은 언어를 되찾는 투쟁이다. '보수'라는 말이 다시 본래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까?

공자가 말한 정명(正名) 사상이 떠오른다. "이름을 바르게 하라.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리에 맞지 않고, 말이 순리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수'라는 이름을 바르게 해야 한다.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바이마르의 교훈으로 무장해서 가짜 보수들로부터 그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

보수는 신중함이지 완고함이 아니다. 보수는 전통 존중이지 시대착오가 아니다. 보수는 안정 추구이지 변화 거부가 아니다. 보수는 원칙 고수이지 권력 숭배가 아니다.


다시 태어나야 할 보수

언어는 죽을 수도 있지만, 되살아날 수도 있다.

공자의 온고지신처럼, 보수의 좋은 전통은 되살리고 나쁜 관습은 버려야 한다. 바이마르의 교훈처럼, 극단주의와는 명확히 선을 그어야 한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아, 신뢰할 만한 태도구나", "원칙적인 자세구나", "미래를 생각하는 관점이구나"라고 여기는 그런 날을 꿈꾼다. 정치적 색깔이 아닌 인간적 덕목으로,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닌 사회 전체의 자산으로 인식되는 그런 시대를.

그때까지 우리는 계속 말해야 한다. 나를 보수라고 욕하지 마라. 나는 진짜 보수니까.

가짜 보수들이 더럽힌 그 이름을, 온고지신의 지혜로 다시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 바이마르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언어를 되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수가 할 수 있는 가장 보수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