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김 Sep 17. 2024

첫 수업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좋아했으면 된 거다.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그 첫날, 나는 마치 풍선처럼 부푼 마음을 진정시켰다. 오랜만에 아동센터 아이들을 봐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애써 준비한 수업이 계획대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수업이 있는 시간보다 1시간이나 먼저 그 동네에 도착하여 나의 프로그램 담당자 선생님을 뵙고 인사를 드렸다. 처음이다 보니까, 나이가 다소 어리다 보니까 미숙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날도 몹시 더웠다. 하지만 일부러 하얀 셔츠에 검은 슬랙스 바지, 일명 모나미룩으로 차려입었다. 그 덕분인지 모르지만, 다행히 그분은 나를 존중하는 태도로 대해주셨다. 수업 시 주의해야 할 사항과 함께 출석부를 받아 계약서를 작성하고 센터로 향했다.


 수업하기 며칠 전, 세 달 동안 같이 요리학원에 다녔던 수강생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 날이 더워 나가기 싫어하는 내가 일부러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음료 한잔을 마시며,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해 본 그 선생님께 내 상황을 말씀드렸다.


 "계획대로 하려고 하지 말아요."


 "일하러 가는 게 아니라 놀러 간다고 생각해요."


 그러자 그분은 진심 어린 조언으로 두 마디를 건네주셨다. 사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인데, 어떻게 놀러 간다고 생각하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다 쳐도 놀러 간다고 생각하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나 첫 수업이 끝나자마자 난 그 조언을 완전히 이해해 버렸다.


 사실 그날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 중 나를 처음 본 아이는 한 명뿐이었다. 그 아이들은 나를 보더니 까르르 웃었고 다시 봐서 좋다고도 하였다. 고마움과 훈훈함으로 물드는 순간이었다.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하며 나를 처음 보는 아이를 위해 내 소개도 했다. 그리고 프로그램 진행 방식도 설명하고 음식을 만드려고 하자,


 "선생님, 저 오늘~"


 아, 아차 싶었다. 어린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조금만 여지를 줘도 수업에 상관없는 말을 꺼낸다는 것을 말이다.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 정도 안다.


 '제 얘기를 듣고 반응해 주세요'


 알지만 한번 들어주면 끝도 없기에 애써 웃으며 달랬다.


 "수업 끝나고 얘기할 시간 줄게~"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효력은 얼마 가지 못하는 말. 그래도 아이들의 요리활동을 돕는 게 당연히 우선이었기에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도와주고 지도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실수로 음식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고, 처음 하는 요리다 보니 맛이 좋지 않아 보이는 것도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좋아했다. 그래, 좋아했으면 된 거다.


  슬리퍼가 벗겨질 정도로 다니다 보니 그렇게 약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정말 힘들었다. 입술은 말을 많이 해 끈적이는 느낌이 들었고 목은 아플 정도로 말랐다. 하지만 이 힘듦은 금방 잊혔다.


 "선생님, 오늘 너무 재밌었어요! 정말 맛있을 것 같아요!"


 이 말 한마디에 말이다. 순간적으로 재밌게 해 줘서 고맙다고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이렇게 어리숙한 나를 좋은 선생님으로 봐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하지만 난 어른이니까. 울지는 않고 고맙다는 말만 담백하게 건네었다. 그날 나의 퇴근길은 행복감과 뿌듯함으로 가득 찬 길이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아이들이 좋아했으니까.


 이렇게 14회 중 1회 차 수업이 끝이 났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요리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