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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Oct 22. 2024

편법이 돈벌이의 일이라면

세상의 끝, 자본주의 사회

나는 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돈을 얼마나 아껴 썼는지에 대해 늘어놓는 것을 좋아한다. 대게는 이런 것이다.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필요한 물건을 담아두고, 할인 쿠폰이 발급되는 날까지 기다렸다 결제했다.

이벤트에 응모해 커피 키프티콘을 받아 사용했다.

지난겨울에 세일하는 샌들을 사뒀다가 올여름에 꺼내 신었다.


만원 안팎의 돈을 아끼는 일이 무척 기쁘고 남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나 이렇게 해서 아껴서 돈을 썼어. 허투루 쓴 것 없이 잘했지?' 너무 대견해 때로는 잘했다 칭찬도 받고 싶다.


최근에는 돈 버는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깨나 복잡한 마음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줄곧 직장생활을 해왔다. 몇 번 이직을 했지만 월급쟁이라는 정체성에는 변함이 없었다. 또 게으른 탓에 주식이니 가상화폐니 하는 부수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들도 시도해보지 않았다. 정해진 날짜에 약속한 금액만큼 통장에 월급이 꽂히면 그걸로 한 달 치 소비를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는 내 집 마련, 양육비를 충당하고 노후에 쓸 돈을 모아두기 위해 자산을 불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언제까지고 돈을 벌 순 없을 텐데, 관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쓸 돈이 필요하다니 눈앞이 아득해졌다.


찔끔찔끔 아끼고 예금적금만으로 돈을 모으는 나와 달리, 신랑은 비교적 돈을 벌고 모으고 불리는데 더욱 눈이 밝은 사람이다(다행). 한때 그의 별명은 코주부였다. 코인, 주식, 부동산에 모두 기웃거렸기 때문이다. 코인, 주식은 '알아서 하겠거니, 그래도 손해는 보지 마. 돈 벌면 나 용돈 좀 줘.' 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나는 관심을 꺼두었다. 부동산은 비교적 큰돈이 들어가는 탓에 머리를 맞대고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도 그가 내 머리채를 쥐고 끌고 가는 꼴이었다. (실거래가 따져가며 이자니 세금이니 드나드는 비용 계산하는 게 머리 아파서 하기 싫었음...) 코주부 신랑 덕분에 배우게 된 점은 '부지런을 떨고, 머리를 쥐어 싸매고 하기 싫은 일도 참고 해내면 가진 돈을 (조금이라도) 불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돈, 풍족한 자산을 생각하면 맥락없이 늘 이 장면이 떠오른다. 저 흡족한 표정.


돈 버는 일이란 뭘까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있다. 친구 A가 공유숙박업을 시작했는데 불과 2주 만에 100만 원을 벌었다고 했다. 100만 원이라니, 나는 눈을 번쩍 치켜뜨고 친구가 하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부동산 투자 노하우를 알려주는 온라인 강의를 들었는데, 오피스텔 월세를 얻어 그 공간을 등록도 신고도 하지 않고 다시 임대하는 방법을 알려줬다고 했다(탈세). 그걸 알려주는 강사는 부동산 수익 외 강의료만으로 2억을 벌었다고 했다는데 마치 종교처럼, 팬클럽처럼 그 강사를 모시는 사람들이 여럿이라고 했다.

나는 모든 지점에서 놀라웠다. 편법을 가르쳐 2억을 벌었다니. 그리고 그걸 당당하게 자기 입으로 광고하다니! 게다가 편법인 줄 알면서 그걸 배우기 위해 쫓아다니는 사람이 한둘 아니라니. (그 와중에 100만 원 벌고 싶어서 불법은 아니지 않냐며 듣고 있는 내가 제일 놀랍다...)

또 다른 친구인 B는 공무원인데 부동산 투자에 필요한 돈을 대출받기 위해 브로커를 써서 사업자를 냈다고 했다. 걸리면 큰일 나는 거 아니냐 물었더니,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그 브로커가 또 다른 방법을 알려주기로 했단다.  


A와 B는 악의가 없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이 공유숙박업을 하고 브로커를 써서 대출을 받아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 수 있다. 음흉하게 하고 있는 일이었다면 내 귀에까지 이런 이야기가 들려올 수는 없는 것이다. A와 B는 돈 쓰는 일 앞에서 늘 즐거워 보인다. 아이 사교육도, 외식도, 손발톱을 꾸미고 미용실에 가는 일에도 고민이 없는 것 같다.


남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돈 버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우와, 정말 부지런하다!'와 같이 감탄하는 말만 내뱉는다. '그래도 되니?' 묻고 싶지만 그런 마음은 속으로만 삼킨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우리 엄마 세대처럼 벌고 쓰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규칙, 내 가치를 지키기보단 이러나저러나 더 벌어서 아이에게 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좋은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잡한 마음이다. 문득 돈 버는 일, 돈 쓰는 일에 있어 세상일과 상관없이 살고 있는 것 같아 외딴곳에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사실은 최근에 이경미 감독의 <잘돼가? 무엇이든> 속 아래 문장을 읽다가 별안간 돈벌이 이야기까지 오게 되었다.

나는 조금 행복한 편이다. 그러니까,
오늘 낸 세금, 행복한 내일로 돌려줘!
제발 우리 모두에게 수치심을 되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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