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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Nov 11. 2022

점심 약속

파리의 안나 113

잠을 푹 잤다. 아무래도 어제 밤을 너무 열심히 수확한 것 같다. 다행히 뚜왈렛이 늦게 와서 도울 수 있었다. 임무 수행 후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밤도 몇 개 깎아 먹었다. 엄청 달지는 않았지만 햇밤이라 싱싱했다. 점심에 만나기로 한 미화 언니에게 줄 것을 따로 포장하고, 밤 보관방법을 검색해보았다. 오래 보관할 경우 냉동실이 좋고 금방 먹을 것은 김치 냉장고에 보관하라고 나왔다. 알이 조금 굵은 것들 위주로 모아 김치 냉장고에 넣고, 나머지 자잘한 것들은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 시간 있을 때 꺼내어 밤 잼이라도 만들어 먹어야겠다.


점심 약속을 위해 얼른 씻고 준비를 했다. 열두 시 반까지 만나기로 해서 11시 40분쯤 집을 나섰다. 그런데 70번 버스가 14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결국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까지 갔는데 12시 15분이었다. 도착할 즈음 미화 언니가 버스 때문에 늦는다고 연락이 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그냥 버스를 탈 걸 후회했다. 시청 앞 분수대에 앉아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 햇살이 너무 강해서 곧 일어나 걸었다. 시청을 한 바퀴 돌았다. 매일 역 앞에서의 모습만 보다가 옆과 뒤의 모습을 보니 새로웠다. 강가에서 시험용 영상을 하나 찍고 미화 언니가 도착했다고 해서 다시 분수대 쪽으로 갔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언니에 말에 괜찮다고 말하고 적당한 레스토랑을 찾아 헤맸다. 박물관 쪽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시켰다. 나는 식전 주로 kir라는 것을 마셨다. 복숭아 향을 골라 은은하니 좋았다. 언니는 모히토를 골랐다. 전채요리는 치킨 샐러드를, 본식은 베이컨 햄버거를 시켰다. 비주얼도 훌륭하고 버거 맛도 좋았다. 다만 샐러드엔 치킨이 없고 이상한 치즈 튀김 같은 게 들어있었는데 맛없었다. 음식을 먹으며 워홀 이야기와 영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가 커피를 사준다고 해서 계산을 하고 일어서려는데 총 37.50유로가 나왔다.

고마움의 표시로 내가 20유로를 내기로 했는데 언니는 카드였다. 그런데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언니는 돈을 출금하러 가고 나는 멍하니 기다렸다. 하지만 출금이 아예 안 된다며 나보고 우선 내줄 것을 부탁했다. 다행히 37.50유로가 현금으로 있었다. 계산을 하고 일어나 CIC 은행을 찾아 삼만리. 언니는 초면에 늦은 것부터 지금까지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를 했다. 조금 황당한 상황이긴 했지만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냥 괜찮다고 말했다.


결국 생자크 탑 주변의 CIC를 찾아냈지만 언니의 카드엔 잔고가 6유로뿐이었다. 오늘 날짜로 300유로 가까이 되는 금액이 빠져나갔는데 언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우선 돈의 행방을 알아야 하니 우리는 시청 근처에서 헤어졌다. 나는 70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날씨가 굉장히 좋아서 현지인, 관광객들은 반팔에 민소매에 반바지까지 입었는데 나는 코트를 들고나갔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도착해 삶은 밤을 먹으며 쉬다가 오후 임무 수행을 했다.


이후 의미 없는 인터넷 서핑을 즐기다가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내 계좌를 보내주고 한화 26000원을 송금받았다. 저녁을 먹고 쉬다가 수기를 작성했다. 다음 주 일요일까지 완성할 수 있겠지? 내 글은 볼 때마다 수정할 부분이 생기는 것 같다. 내일은 비가 오지 않는다면 스냅사진을 찍기로 했다. 잘 나온 사진을 골라서 공모전에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상 촬영은 다음 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이루어질 것 같다. 그전에 편집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놔야지. 할 일은 많은데 나도 모르게 휴식 시간을 너무 많이 가지는 것 같다. 조금 더 각성하고 몸을 움직여야지. 우선 내일 예쁘게 나오려면 빨리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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