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희 그림책 《네 기분은 어떤 색깔이니? 》를 읽고
도서관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유난히 높고 푸르다. 저 하늘빛이 내 마음이라면 오늘은 좋은 날이다. 최숙희 작가의 그림책 <네 기분은 어떤 색깔이니?>(2023년 7월 출간)를 들고 있는 지금, 손자 로리의 기분은 어떤 색깔일까?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림 속 아이의 표정과 함께 색깔이 바뀌고 있다. 로리도 그림과 함께 내 목소리에 몰입해 있다. 노랑은 설렘, 초록은 호기심, 분홍은 두근두근 좋아하는 마음, 그리고 파랑은 화해의 색으로 감정을 물들게 하는 책. 그 속의 아이는 하루동안 달라지는 기분에 따라 표정도 달라지고 그림의 배경과 색도 다양하게 표현된다. 하양에서 검정까지, 마침내 아이는 자기의 기분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기분은 알록달록 무지개 색, 자꾸자꾸 달라져. 자꾸자꾸 달라지는 수많은 색 이 모두 나야. 모두 나를 이루는 색깔이야."
<네 기분은 어떤 색깔이니?>를 다 읽어준 후 로리에게 물었다.
"로리야, 지금 너의 기분은 어떤 색깔이야?"
로리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대답했다.
"음, 나는 지금 분홍색이고 노란색이야."
"노랑은 어떤 기분인데?" 하고 묻자 로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비처럼 팔랑팔랑, 기분이 아주 좋아! 할머니가 멋있는 책 읽어줘서 좋아!"
"그럼 분홍색은?"
이번에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며 말했다.
"마음이 쿵쿵하는 색. 할머니, 소리 들어 볼래? 할머니 귀 여기에 대봐."
로리는 나를 잡아당기며 조그마한 제 가슴에 귀를 대어보라고 한다.
"어? 심장이 쿵! 쿵! 하며 뛰는데?" 하며 놀라는 척 하자...
"로리 마음이 분홍색이라 그래. 로리 마음은 사랑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웃고 말았다. 네 살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심장이 쿵쿵하는 색이 분홍이고 사랑'이라니. 아이는 이미 마음의 언어를 알고 있었다. 기분의 색깔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방금 책을 통해 본 그 감정들을 색깔과 마음속 언어로 말하고 있다. 아이 나름의 삶을 느끼며 자연스레 몸에 새겨지는 감각이었다.
<네 기분은 어떤 색깔이니?>를 쓰고 그린 최숙희 작가는 '나는 소중해', '괜찮아'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다. 언제나 아이의 눈높이에서 '존재의 존엄'을 노래해 왔다. 그림책 속 색깔들은 단지 감정의 표상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성장의 과정이다.
그림은 아이의 표정과 감정의 색으로 단조롭지만 깊은 여백을 품고 있다. 둥글고 부드러운 선, 배경은 군더더기 없이 비어 있다. 감정의 색이 오롯이 돋보이도록 배치된 화면 구도는 아이의 내면을 한 점의 붓터치로 표현한 듯 담백하다.
붉은색은 불길한 분노가 아니라 살아 있는 온기이고, 푸른색은 차가움이 아니라 화해의 청명 함이다. 그의 색은 언제나 따뜻한 방향으로 기울어 준다. 삶을 다독이는 색, 존재를 안아주는 빛. 그림책 속 문장은 마치 색채를 입힌 '시'같다.
"지금 내 기분은 포근한 갈색, 걱정 마 괜찮아질 거야. 토닥이는 손길처럼 따뜻한 갈색."
이 한 줄이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시'같다. 기분이란 흘러가는 것이며, 좋고 나쁨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걸 색깔로 표현했다. 그저 지금의 나를 이루는 건 한 가지 색일 뿐이다. 그리고 수시로 변한다는 걸 안다.
로리는 책을 덮으며 다시 말했다.
"할머니, 나는 핑크색이 좋아.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생각났어."
아이의 마음속에는 이미 좋아하는 감정이 자라고 있다. 누군가를 떠올리면 마음이 분홍빛으로 물들고,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면 노랑의 빛이 번진다. 문득, 어른이 된 우리는 언제부터 기분의 색을 잃어버렸을까 생각했다. 감정을 꾸미고 감추느라, 마음속 색깔을 잿빛으로 덧칠해 버린 건 아닐까.
로리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친구가 생각났다고 했다. 분홍과 노랑 사이, 그 순수한 마음이 세상을 물들인다. 오늘 하루의 색이 무엇이든, 그 색깔이 바로 '나'라는 것을 로리는 이미 느끼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