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만약에...
내가 빼놓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연애의 참견이다. 보다 보면 기이한 이야기도 많고 공감 가는 이야기도 많다. 40년 살면서도 깨닫지 못한 남녀와의 문제를 패널들이 명쾌하게 답 내려 주는 것도 희열 포인트다.
이번주 방송엔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흠잡을 데 없이 예쁜 여자가 주인공인데 그에겐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있다. 남자친구와의 대화 중 남자친구가 성형한 여자를 거의 사기꾼 취급을 하는 사람인 걸 알게 된다. 사실 주인공 여자는 성형한 여자였기에 고민 끝에 남자친구에게 성형한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 이후로 남자친구의 태도가 급변한다. 그동안 속였다는 것이 소름이 끼친다는 둥, 주인공의 과거 사진을 찾아보고는 계속 그 얼굴이 생각난다는 둥.
토요일 아침밥을 차리며 그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데 승현이 방에서 나왔다. 평소에 보지 않는 프로그램인데도 남자 하는 꼴이 워낙 별꼴이라 그런지 웬일로 혀를 차며 집중해서 보고 있길래 질문을 던졌다.
"선배 만약에 알고 보니 아내가 싹 다 성형한 여자야. 그럼 어떨 거 같아?"
여자들은 왜 ‘만약에’를 좋아하는 걸까. 하지만 승현은 만약에 병에 걸린 아내에게 섣불리 대답했다가 곤혹스러운 일을 치른 적이 여러 번 있기에 이젠 호락호락 그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성형 안 한 여자랑 결혼했지~"
"아니, 그게 아니고, 알고 보니 내가 싹 다 성형한 얼굴인 거야. 그럼 어떻겠냐고."
승현은 잠시 내 얼굴을 빤히 보며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지금 얼굴이 성형한 얼굴이라고? 그 병원 어디야!"
우리는 배꼽을 잡고 낄낄대며 한참을 웃었다. 결혼 4년 차. 이젠 디스도 흔쾌히 웃어넘긴다.
(승현과 정윤은 성형에 대한 선입견이 전혀 없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기다리신 분들 많다는 거 알면서도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치우느라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눈앞에 닥친 일들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지만 저도 손이 근질거려서 가벼운 에피소드로 인사드립니다. 1년 정도 글을 쓰지 않는 동안에도 구독자가 늘어나고 좋아요를 눌러주셔서 기뻤습니다.
저희 부부는 요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작년 인공수정 이야기를 끝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는데 이번엔 시험관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로서 참 힘든 과정이더군요. 다음화부터는 그 이야기를 차차 풀어보도록 할게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운 여름 다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