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치즈푸딩

8화 - 산후우울증

by 장정윤

슬픈 젖꼭지 증후군과 출산보다 힘들었던 몇 번의 젖몸살을 겪으며 단유를 결심했다. 단유 또한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젖은 한 번에 끊기는 게 아니었으므로 단유차를 마시며 젖을 말리고 말리는 과정에도 유축은 계속해야 했다. 빨리 젖이 말라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치즈푸딩은 겨우 2kg에 태어났기에 미숙아분유도 필수로 먹여야 했는데 미숙아분유보다 모유를 먹일 때 더 잘 먹고 소화도 잘 시켰다. 부족하게 태어난 만큼 더 채워주고 싶어 웬만하면 모유를 오래 먹이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깟 고통 하나 참지 못하고 단유를 결심한 나에게 스스로 엄마로서의 자격을 묻기도 했다. 이기적인 엄마인 거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사소한 죄책감은 자주 들었다.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듣기 싫을 때, 피곤함에 짜증이 날 때, 못 견디고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갔다가 아이가 감기에 걸렸을 때, 우유를 거부하는 아이에게 계속 젖병을 들이밀다가 결국 분수토를 했을 때, 칭얼대는 거에 지쳐 그냥 두었는데 나중에 보니 응가를 해서 칭얼거렸다는 걸 알았을 때, 어른들은 제일 좋을 때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느끼지 않을 때. 육아는 매일 부족한 나와 마주하는 일이었다.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어느 때보다 모자란 나였다. 그런 감정이 차곡히 쌓여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을 때 단유에 성공했고 생리가 터졌다. 나도 전혀 몰랐던 내용인데 젖이 도는 동안엔 생리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이에게 1년이고 2년이고 젖을 먹이는 엄마는 그동안 생리가 없다는 것이다. 여자의 몸이란 정말 신기하기도 하지. 아무튼 출산 후 첫 생리를 마치고 무거운 마음과 같이 몸도 축 쳐지는 게 느껴졌다. 출산을 하고 회복이 빨랐기에 애 낳고 다음 날부터 밭일을 나갔다는 옛날 어른들 말이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내심 생각했다. 하지만 생리 이후 어쩐지 힘이 없었다. 실제로 그러진 않았겠지만 몸속 모든 영양분이 다 빠져나간 느낌, 그러니까 속이 텅 빈 느낌이 들었다.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 아이가 울면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우는 아이가 신경 쓰여 볼일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뛰어나왔다. 뒷골이 자꾸 당기고 눈앞이 순간 흐려지기도 했다. 잠은 항상 부족했다. 잘 먹지 못했다. 잘 씻지 못했다. 감기에 걸렸는데 내 몸보다 아이에게 옮는 게 더 걱정이 되었다. 잘 때도 마스크를 쓰고 아이 옆을 지켰다. 편하게 아플 수도 없는 게 엄마구나, 깨달았다. 그때는 여러 감정이 폭풍처럼 밀려와 지금도 그 감정들을 정리하기 어렵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써야 할지 모르겠다. 예민하고 감수성 높은 내 성격 탓도 있을 테고, 호르몬 탓도 있을 테다. 혼란스러운 낮과 밤, 그런 날들을 버티고 있었다.


아이가 깬 지 한참 됐는데 남편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가 남편에게 들이밀었다. 남편이 저리 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 감기 걸린 거 같아."


속으로 든 생각은 '근데? 그래서?'였다. 방문을 닫고 나와 아이와 거실에 있었다. 남편이 곧 나오길 기다리면서. 유독 흐린 날이었고 집안은 고요했다. 남편은 다음날 오후까지 문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아파도 나와서 아이와 내 안부를 물을 만 한데 그러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힘겨운 달리기를 같이 하다가 파트너가 중도하차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파도 힘들어도 멈추지 않았는데… 걱정보다 배신감이 먼저 들었고 그 파트너는 언제든 이탈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외로워졌다. 혼자서도 잘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무거워졌다. 갑자기 눈물이 났고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산후우울증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도 종종 한 번 눈물이 터지면 주체할 수 없었다. 추석날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갔다가 나를 보러 오겠다고 한 친정엄마가 그냥 집으로 갔을 때, 남편이 아이와 나를 두고 졸리다고 방에 들어가 잘 때,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시 침대에 누웠는데 남편이 우는 아이를 달래지 못하고 결국 내가 일어나 아이를 돌봐야 할 때,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려고 했는데 아이가 너무 울어 결국 나가지 못했을 때, 창밖에 노을이 너무 예쁜데 나갈 수 없을 때, 아이가 자지 않을 때, 그로도 수없이 나는 서러움에 울고 말았다. 울 이유도 아닌데 울고 있는 내가 못나보여 더 울었다. 예쁜 아이를 두고 그러는 게 아이에게 미안해 또 울었다. 남편은 산후우울증이란 말만 들어봤지 실제로 어떤 것인지 잘 모르기에 내가 울면 어쩔 줄 몰라하다 못 본척하였고 때로는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마 자신 때문에 운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금씩 남편과의 사이도 멀어졌고 그 사실이 마음 아팠지만 관계를 회복할 의지나 내 상황을 설명할 의지가 없었다.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도 모두 접었다. 그리고 한없이 부정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아이 낳기 전에 종종 확언명상을 했는데 그땐 yes였던 것들이 모두 no로 변했다.


"나는 운이 좋다"

'아니.'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아니.'

"나는 건강하고 활력이 넘친다"

'아니.'


아이의 탄생은 나의 상실이기도 했다. 그렇게 어두운 터널을 아이라는 빛에 의존해 버티고 견뎌내며 걸었다. 한동안의 시간은 정말 지루하게도 가지 않았다. 아이와 나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자주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날수록 아이는, 빛은 점점 커지고 서서히 엄마의 터널이 밝아졌다. 나는 나름의 방법을 찾으며 산후우울증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가장 도움이 많이 된 건 친정엄마와 동네에서 만난 육아동지들이다. 그리고 무한정 참아내며 노력해 준 남편. 지나고 보니 힘들었던 건 잘 기억나지 않고 예쁘고 귀여웠던 아이, 애썼던 나, 그리고 어쩐지 짠한 남편만 남는다. 잘 지나왔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엄마들도 그 시간들을 잘 지나올 것이다. 뻔한 말이지만 엄마는 강하니까.


그림 김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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