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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Nov 19. 2020

술례길같은 순례길이어도 순례길 #1일 차

20대 직장 5년 차 계획 없이 떠난 유럽 여행 겸 산티아고 순례길





네 맞아요. 오지 않을 거 같았던, 잊고 있었던 순례길로 떠나는 날이 왔어요. 파리에서 굴과 와인을 즐기던 그 모습은 이제 없습니다. 이제 배낭과 등산화가 전부인 순례자의 모습으로 아침 일찍 파리를 떠났다. 인터넷과 구글 지도만 있다면 이 세상에 못 갈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구글 지도가 안내해준 경로로 따라가니 기차역이 나왔다. 정말 큰 기차역이었다. 너무 커서 내가 타야 되는 기차가 어딨는지 잘 모르겠어 두리번거리니 친절한 직원분이 다음에 들어오는 기차를 타면 된다고 친절히 안내도 해줬다. 기분이 묘했다. 한국에서도 가방 달랑 하나 매고 떠나본 적 없는 내가 말도 안 통하는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배낭 하나 들고 자발적 떠돌이가 되었다니. 기차가 도착했고 난 내 좌석을 찾아 앉았다. 프랑스 남부 끝, 생장으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처음 타는 프랑스 기차에 내가 떠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고, 시간이 좀 지나니 점점 현실이 와 닿으며 급 우울해졌다. 한참을 가니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내가 앞으로 순례길을 걸으며 이런 풍경들을 계속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또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조울증 같이 기분이 몇 번 오락가락 하니 종착역에 다다랐다.


생장가는 기차안에서




기차에서 내려 버스를 한번 더 타야 했다. 나와 같은 행색을 한 사람들이 몇몇 있길래 그냥 따라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 정말 순례자들만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 나 혼자가 아니지. 버스를 타고 더 깊은 산골로 가는 기분이었다. 풍경도 파리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 펼쳐졌고 내가 프랑스 남부 마을로 왔구나라고 실감이 났다. 아기자기한 마을에 도착했고 다른 순례자의 모습을 한 배낭 멘 사람들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비수기라고 했지만 그래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역시나 있었다. 등록을 하고 숙소를 배정받기 위해 순례자 사무소를 찾았다. 브레이크 타임이라며 문이 닫혀 있었다. 문 앞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기다렸다. 한국인 같이 보이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고 다른 외국사람들도 많았다. 이 사람들과 같은 날 순례길을 출발하고 또 우리 모두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또 마음이 뭉클하고 나 스스로 대견했다. 





순례자 사무소가 문을 열었고 난 제일 먼저 들어갔다. 직원분들이 다 백발의 노인분들 이셨다. 너무 놀랐다. 걸음걸이도 느리시고 두꺼운 돋보기안경들을 쓰셨으며 일처리 속도는 전혀 1도 기대할 수 없는 분들이었다. 한국에서는 전혀 상상조차 안 되는 그림이었다. 연세가 많으신 백발의 노인분들이 순례자들을 환영해주며 안내해주는 모습에 존경스러워 보였으며 나는 어르신들의 속도에 맞춰 그 기다림을 즐겼다. 제일 처음에 서있던 나에게 한 백발의 할머님 직원분께서 한국인이냐고 물어보시더니 코리안들을 모아 같이 오라고 하셨다. 한국인은 한국인인 게 딱 티가 난다. 혹시 한국인이세요?라고 족집게처럼 물어보는 사람마다 다 한국인이었고 나까지 총 4명의 한국인을 모았다. 순례자 사무소 직원 할머님은 매우 흡족해하시면서 한국인들이 아주 많이 온다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처음 보는 한국분들과 어색하게 한 팀이 되어 등록을 하고 숙소도 순서대로 배정을 받았다. 순례자의 증표인 조개껍데기도 하나 예쁜 걸 골라 받아왔다.  너무 예뻐! 



순례자의 증표! 조개껍데기




프랑스 길 시작점인 생장 피에 드 포트. 프랑스 남부에 있는 스페인과 가까운 작은 마을.  이곳에서 가장 깨끗하고 좋은 순례자 숙소라고 한국인들에게 소문난 55번 공립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로 배정받았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이 오면 숙소에 한국어 설명만 따로 있을 정도였다. 공립 알베르게라서 가격은 저렴했고, 배드 버그 때문에 걱정이 많았지만 룸 컨디션도 생각보다 깔끔했다. 제일 먼저 들어와서 첫 번째 일층 침대를 차지했다. 잠 잘 곳을 해결하고 가방도 내려놓으니 이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작고 아기자기한 프랑스 남부 마을 생장. 






아까 순례자 사무소에서 함께 설명을 들은 한국분들도 내 뒤를 이어 들어오셨다. 역시 한국인들.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제일 먼저 들어와서 침대를 잡으셨다. 한국분들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다들 앞으로 짧으면 오늘 하루, 길면 순례길 내내 옆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자게 될 사람들이다. 후다닥 짐 정리를 대충 마치고 나와서 귀엽고 작은 이 마을을 구경했다. 2019년이라는 게 잘 실감이 안 날정도로 뭔가 예스럽고 참 한국과 달랐다. 그렇게 동네를 구경하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생각해보니 기차에서 샌드위치 하나 먹은 게 다였다. 근처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가서 파스타 하나와 맥주를 시켰다. 어제만 해도 에펠타워를 보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뷰가 이렇게 바뀌다니.. 정말 스스로도 웃음이 나고 재밌었다.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동네를 좀 더 걸어 다녔다. 프랑스 남부가 아름답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내 생에 언제 프랑스 남부까지 가겠나 했는데 이렇게 와보다니.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아 난 벙어리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친절한 프랑스 사람들 덕분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날씨 좋고 따듯할 때 다시 프랑스 남부 마을들만 여행하고 싶더라. 그렇게 동네 구경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등산복도 벗고 샤워도 깨끗이 하고 오기 전에 샀던 침낭도 처음으로 펼쳐서 안에 들어가 누워보았다. 오? 생각보다 따뜻하고 아늑했다. 한국 사람들 말고도 이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배낭 하나만 메고 들어왔다. 내 위 침대에 침대보다 더 큰 덩치의 사내가 배정이 되었다. 그 사람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때마다 침대 전체가 흔들렸다. 너무 무서웠다. 무너질까 봐.. 그 사이 저녁이 되었고 한 한국 남자분이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한국인들끼리 다 같이 식사를 하자고 제안해주셔서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내일부터 당장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는 큰 고비가 있기 때문에 오늘은 거하게 고기와 와인으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다들 남자분들 이셨고, 여자는 나 혼자였다. 나이도 다양했고 직업도 다양했다. 다들 혼자 오셨고 걱정이 많으셨는데 다행히 한국인들이 함께 있어서 마음이 안심된다고 하셨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간단하게 자기소개와 함께 순례길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함께 나누면서 식사를 했다.





세상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어가 통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함께 한 저녁식사는 또 처음이었다. 파리에서 처럼 난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일부러 보고 오지 않았다. 사실 귀찮은 것도 있었고 알다시피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다. 나에 비해 다른 이분들은 마을 하나하나 모든 정보를 다 알고 계셨고, 다들 어디에서는 어떤 걸 해야 한다 라는 구체적인 계획들이 있으셨다. 나와는 매우 다른 스타일이셨다. 근데 덕분에 나도 내일이 아주 험난하다는 것과 점심을 미리 이 마을에서 준비해서 출발해야 된다는 것 등등 정보를 얻었다. 내일 이렇게 같이 자고 출발하면 웬만하면 다음 마을에서 또 만나고, 스피드가 비슷하게 되면 앞으로 쭉 만날 거라는 것도 알게 됐다. 뭔가 기대도 되고 떨리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딱 봐도 가장 어리고? 젊기 때문에. 그리고 웬만한 성인 남자랑 체력도 비슷한 나 이기 때문에 크게 무섭진 않았다. 저녁을 먹고 어두워진 동네를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 거실 같은 공용 공간에 모여 커피 한잔씩 마시며 다른 외국 사람들과도 눈인사로 얼굴을 익혔다. 불이 꺼졌고 이제 다들 침낭을 피고 잘 준비를 했다. 이렇게 남녀 혼숙을 하다니. 그것도 단체로. 하나하나가 다 나에게 너무 새롭고 도전이었다. 내 위의 거구의 사내도 올라갔다. 철컹. 침대가 부서질 거 같은 소리를 냈다. 그 남자가 뒤척이자 침대가 또 흔들렸다. 아 내가 과연 잘 잠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기도 전에 잠들었다. 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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