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앙 공주 앞 의자에서

여유의 기술과 믿음의 연습

by 방수진


더현대서울 ALT.1에 들어서면 전시는 관람객을 거장들의 이름으로 맞이한다.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의 명작을 한 자리에서 만난다는 문장은 시작부터 전시의 무게를 선명히 한다. 그러나 전시를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남는 것이 언제나 많은 작품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 점의 작품, 단 한 번의 시선이 오래 남아 이후의 시간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그 한 점은 때때로 선택이 아니라 운명처럼 찾아온다. 발걸음이 멈추고, 눈이 한 곳에 고정되고, 설명보다 먼저 어떤 감각이 마음을 붙든다. 그 순간부터 전시는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내부의 일이 된다.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


삶을 움직이는 것은 대개 양이 아니라 강도이기에, 한 점의 그림을 붙잡고 쓰는 글은 가능하다. 그림 한 점이 한 사람의 하루를 흔들고 살아가는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면, 그 작품은 이미 전시 전체를 대변할 자격을 갖는다. 이는 주어진 환경에 고개를 돌리는 대신, 그 안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태도와도 닮아 있다. 고통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고통을 통과하며 더 단단한 자신으로 변해가는 연습 말이다.


장 마르크 나티에의 <로앙 공주>


장 마르크 나티에의 <로앙 공주> 앞에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여기서 잠시 멈춰도 된다’라는 조용한 허락처럼 느껴졌다. 전시장에 의자가 놓이는 순간, 그 자리는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구역, 오래 바라봐도 좋은 공간이라는 특별한 성격을 갖게 된다.


의자에 앉아 그림을 오래 바라보면, 그림이 먼저 말을 거는 순간이 생긴다. 설명문을 읽지 않아도, 화려한 이름을 외우지 않아도, 한 사람의 태도와 표정이 천천히 마음에 들어온다. 그때 그림은 ‘어느 시대의 인물’을 넘어, 지금 여기의 삶과 연결된 한 사람의 장면으로 다가온다. 그림 속 공주는 책을 들고 있지만, 시선은 책 밖 어딘가를 향해 있다. 누군가의 호출을 들은 듯한 그 찰나의 정지가 묘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장 마르크 나티에 <로앙 공주>


책을 읽는 장면은 평온과 여유의 상징으로 보곤 한다. 그러나 책을 든 채로 밖을 바라보는 그 시선은 여유가 결코 안정적인 고정값이 아님을 보여준다. 여유는 쉽게 깨지고 자주 끊기며, 끊임없이 다시 이어 붙여야 하는 무엇이다. 그러므로 이 장면은 완성된 휴식이라기보다 간신히 얻어낸 ‘틈’에 가깝다.


현실의 시간은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손을 뻗어온다. 수험생인 고3, 예고에 입학한 고1, 그리고 중2. 세 아이는 각자의 불안과 과제를 들고 하루를 통과한다. 그 곁에서 지켜보는 나에게 하루는 길고, 마음은 자주 마모된다. 여유가 사라지는 이유는 단지 시간이 없어서만이 아니다. 가장 큰 부분은 심리적 여유가 사라지는 데 있다. 마음이 계속 ‘다음’으로 쫓기고, 아직 오지 않은 문제를 미리 걱정하며, 이미 지나간 말을 후회한다. 그러다 보면 현재에 머무를 자리가 사라진다.


이때 문화생활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 된다. 전시 관람, 책 읽기, 글쓰기, 그림 그리기, 책 만들기 같은 일은 짐을 잠시 내려놓는 방식이 된다. 더 정확히는 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짐을 든 몸의 자세를 다시 고르는 일이다. 도피는 비겁함이 아니라 숨을 고르기 위한 움직임이 될 때가 있다. 하루 속 잠깐의 시간이 주는 만족감이 24시간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 잠깐의 시간에는 ‘살아있다.'라는 감각이 들어 있다.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생길 때도 그러하다. 종이를 자르고 붙이고, 글을 쓰고 지우며, 그림을 그리고 덮어 두는 과정은 보이고 만져지는 증거를 남긴다. 그 증거는 때때로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번역된다. 지금의 삶이 무의미하지 않다.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다. 주어진 것들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감사할 이유가 있다.


이러한 감정의 축적이 다음 날의 반복을 견디게 한다. 그러므로 전시장에서 의자에 앉아 그림을 오래 바라보는 일 또한 같은 종류의 행위가 된다.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시 정렬하는 시간이다. 같은 하루가 되풀이되어도 그 하루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확인하는 시간이다.



장 마르크 나티에 <로앙 공주>


그림 속 공주를 현실에 대입하면 장면은 달라진다. 고요한 공간을 향해 작은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엄마, 이거 어디 있어요?"

"엄마, 이거 어떻게 해야 해요?"

"엄마, 교재를 제 책상에 놓고 왔어요. 학원으로 가져다주세요."


그 순간 표정은 변한다. 찡그린 미간, 깊어지는 주름, 마음에서 먼저 올라오는 조급함이 생긴다. 입에서는 거친 말이 튀어나오려 하고, 눈빛은 날카로워진다. 마음 한편에서는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고 싶으나 현실은 그 마음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커질수록 허무함이 찾아온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바닥에서 올라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과거에 대한 긍정 경험이 남겨 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의 소중한 추억, 예전의 시간을 통과해 낸 경험, 그때의 아이들을 믿었던 마음이 남아 있다. 그 기억은 현재의 아이들을 믿게 하고, 미래의 아이들을 믿게 한다.


이 믿음은 낙관이 아니다. 인간이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믿음을 선택하는 쪽에 가깝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의지하는 분이 있고, 그 의지 때문에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삶이 무너질 듯한 순간에도 한 번 더 일어나게 하는 것은, 머리로 따져 내리는 결론이 아니라 “그래도 오늘을 살아 보자!”라고 마음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믿음은 확신의 감정이라기보다 견디는 방향이다. 흔들리면서도 다시 잡는 방향이다. 그 방향이 있기에 오늘의 짐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된다.


그림 속 여인은 무엇을 생각했는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신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인가. 혹은 누군가의 호출을 들었던 것인가. 책이 아닌 곳에 시선을 두는 얼굴은, 마음이 바깥으로 끌려가는 순간을 담고 있는 듯하다. 완벽한 고요가 아니라, 고요가 깨지기 직전의 미세한 떨림이 있다. 그러므로 그 장면은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여유는 어떻게 유지되는가?'가 아니라, '여유는 어떻게 다시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이다.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


이번 전시는 권력과 아카이브, 신화와 기억, 예술과 비즈니스, 일상을 비추는 아름다움, 자연의 포착, 세계로 확장되는 시선 같은 층위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러한 큰 이야기들은 결국 한 사람의 삶에서 작게 재현된다.


권력이 회화로 자신을 기록했듯, 어떤 삶은 일상의 기록으로 자신을 지킨다. 망각에 저항하던 신화의 복원처럼, 어떤 삶은 사라질 듯한 하루의 감정을 글로 붙잡아 둔다. 영감만으로 완성에 닿을 수 없듯, 삶도 구조가 없으면 쉽게 무너진다. 평범한 하루의 결이 오래 남듯, 한 개의 의자와 한 번의 멈춤이 오래 남는다. 전시가 묻는 질문은 결국 하나이다. '시간을 어떻게 기록하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다둥맘이라는 문장은 욕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문장에는 삶을 사랑하려는 의지가 들어 있다. 세 아이가 각자의 길을 온전히 걸어갈 때, Ebon Art에서 실행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펼치고 싶다는 바람도 그러하다. 꿈이 있고, 공간이 있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큰 복이다. 그 복은 허락받은 시간이자 책임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시간은 미래를 위한 유예가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실제의 시간이다.


조급함과 허무함 사이에서 흔들리더라도, 다시 돌아오는 연습이 필요하다. 여유는 타고나는 성격이 아니라 반복하여 배우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매번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방식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전시장 의자에 앉아 오래 머무는 일은 현실을 부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현실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이다. 잠깐의 도피가 24시간을 지탱하는 힘이 되듯, 잠깐의 관람이 하루의 결을 바꾸기도 한다.







안녕하세요. 방수진입니다. 요즘 일상에서, 이름만 들어도 괜히 기대가 생기는 일이 있나요? 꼭 거창한 전시나 특별한 경험이 아니어도 좋아요. 우연히 들은 노래 한 곡, 마음에 남는 문장 한 줄, 지나가다 본 이미지 하나가 하루의 기분을 정리해 주는 때가 있잖아요. 이 전시를 보고 난 뒤, 당신에게도 그런 ‘한 장면’이 남았는지 궁금해요.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글에서 다시 인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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