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프랑스 체류기
새벽 3시 반.
시차 적응 실패와 허벅지 상처의 통증 때문에 눈을 뜨면 안 되는 그런 시간에 눈이 떠졌다. 무사가 휘두른 칼에 잘린 것처럼, 수면과 현실의 경계가 1초의 뭉개짐도 없이 명쾌하게 갈리는 기상이었다. 다시 잠들기 힘들것 같은 억울한 현실 복귀... 폰 잠금화면의 불빛으로 주변의 어둠을 조금 걷어내니 남편과 아이의 잠든 모습이 보인다. 지난밤 우리의 취침 레이아웃은 내천(川) 자에 가까웠는데, 밤새 아이가 90도를 회전하여 영어 대문자 'H'가 되어 있었다. 잠결에 몸부림치는 아이에게 잠자리를 내어주느라 나와 남편은 침대의 절벽에서 몸을 모로 세워 칼잠을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잔 것 같지 않게 몸이 찌뿌둥해도 달콤하게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뇌 속에 엔도르핀이 몽글몽글 솟구치는 느낌이 든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침대 한 켠에서 폰의 밝기를 최소로 해서 ebook을 읽었다. 직업도 없이 아이 넷을 키워야 하는 뚱뚱한 이혼녀가 쓴 에세이로, 달리기를 통해서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올해 초에 시작한 어느 출판사의 서평단 활동으로 읽게 된 책인데, 나의 취향과 전혀 무관한 장르여서 인내심을 발휘하며 읽어야 했다. 영어를 잘해서 원서로 읽었다면 위트 있는 문체에 반했을지도 모르지만... 번역본 책을 통해 얻은 것은 딱 하나다. 내 삶은 평범하지만 무겁거나 어둡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것.
6시가 넘어가니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어스름 새벽빛이 창과 커튼의 틈새로 슬그머니 스며들었다.
시차 때문인지 아이는 프랑스에 온 뒤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을 내놓을 때까지 "배고파"를 무한 반복했었다. 오늘 아침엔 아이가 눈을 뜨자마자 밥을 바로 먹을 수 있게 할 생각이다. 남편과 아이가 깨지 않도록 엄지발가락에 온 체중을 실어 일층으로 내려갔다. 남편의 아침잠을 허락하고 (밥은 당연히 셀프), 새벽에 일어나 아이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나... 이 정도면 현모양처이고도 남지 싶다. 학창 시절 현모양처를 꿈꾸던 친구를 보며 속으로 안타까워하며 웃었던 기억이, 글을 쓰는 지금 잠깐 스쳐 지나간다. 알고 보면 삶의 태도란 것은 온전히 내 의지로만 설계되는 것이 아니기에, 아무리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나야!라고 외쳐봤자 세대를 거듭하며 자연스럽게 학습되어버린, 아내와 엄마로서의 '헌신'이라는 기질은 아주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 같다. 요즘 개인심리학으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계시는, 심리학자 아들러가 들으면 발끈하겠지만...
아이를 위한 오늘의 메뉴는 바로 '미역국'이다. 유럽인 친구들이 미역국을 처음 대할 때 보이는 반응은 "이거 먹는 거야?"다. 남편도 대부분의 한국 음식을 즐기지만 미역국은 먹지 않는다. 아내의 산후조리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주는 수많은 남편들의 블로그를 보여주며 "좀 만들어줘 봐봐"라고 외쳐도 봤고, 돌고래의 산후조리를 보고 미역국을 끓여 먹기 시작했다는 지혜로운 조상들의 이야기도 들려줘봤지만, 남편은 미역국을 끓여주지도 먹지도 않았다. 사실 아이도 미역국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먹는 미역국은 역시 꿀 맛인가 보다. 아이는 그릇을 통째로 들고 원샷을 해가며 밥과 국을 말끔히 비웠다. 고마워.
11시 정각. 항상 시계처럼 정확한 스케줄로 움직이시는 시아버님은 약속하신 대로 정확히 11시에 현관문을 두드리셨다. 아버님의 손에는 근처 케밥집에서 포장해온 우리의 점심 식사가 들려있었다. 남편이 항상 '개밥'이라고 부르는... 그 케밥은 정말 맛있었다. 아이는 프렌치프라이를 보더니 망치를 맞은 무릎의 반사신경처럼, 자동으로 남편의 무릎으로 뛰어올라 소에게 풀을 먹이듯 남편의 입속에 프렌치프라이를 구겨 넣기 시작했다. 곤혹스러워하는 남편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아이의 장난질에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오늘은 다리를 다쳐서 많이 걷지 못하는 나를 위해 근교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다. '르 마레 푸아트방 (le marais poitevin)'이라는 곳인데, 늪과 나무로 뒤덮여 있어서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지역이라고 했다. (구글에서 지역명으로 이미지 검색을 하면 초록빛 낭만 가득한 사진들이 화면을 가득 채움) 기대를 많이 했는데, 막상 가보니 겨울의 쓸쓸함과 적막함만 느껴지는 곳이었다. 간판이 귀여웠던 쿠키 가게의 뚱뚱한 여주인마저 겨울 날씨처럼 참 쌀쌀맞았던 곳... 이 곳은 여름에 와야 지역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언제 다시 올지 기약할 수 없으니, 일단 관광객의 셔터질은 열심히 해두었다.
며느리를 위해, 남편의 가족에게는 전혀 새롭지 않은 곳들을 시간 내어 열심히 돌아다녀주신 부모님을 위해, 오늘 저녁은 내가 요리사~. 한국에서 남편에게 한 번 만들어 줘봤더니 맛있어했던, 프랑스 가정식 '뵈프 브루기뇽 (Boeuf bourguigno)'을 만들어 드렸다. 한국인에게 생소한 맛의 양념 블록과 각종 허브들을 넣고 끓이는 음식이어서 맛도 보지 않고 만든 음식인데 (맛을 봐도 맛의 정답을 모르니...), 다행히 입맛에 맞으신지 남기지 않고 모두 드셨다. 일 년에 한 번 하는 며느리 노릇, 성공이다! 달랑 음식 하나 해드리고 넘치는 칭찬을 받는 며느리의 모습, 한국에서는 좀 어렵지 않을까. 요즘 젊은 시부모님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초저녁에 시작된 저녁 식사가 끝나지 않는다. 남편과 부모님의 프렌치 대화가 점점 깊어갈수록 나의 눈꺼풀도 점점 무거워져 갔다. 영어로 열심히 통역을 해주던 남편은, 나의 풀린 동공을 보더니 센스 있게 저녁 식사를 마무리 지었다.
프랑스에서의 세 번째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