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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Feb 15. 2016

아버지가 늙어갈 때

늙지 않는 아버지처럼 끔찍한 것은 없다.
나에게 아버지는 힘이였고, 지배였다.
그 힘에 짓눌리면서 끊임없이 도망가려 했던 대상.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가면 나는 숨을 쉬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늙지 않는다는 건 영원히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거란 말과도 같다. 체제 전복이나 살부 따윈 꿈꾸지 않았다. 그저 중력이 조금 덜한 별에 태어났더라면 지금 보다 키가 크지 않았을까. 태양을 향한 내 몸짓이 조금은 덜 쭈볏거리지 않았을까. 그저 그런 정도의 바램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늙어간다. 아, 늙어가는 아버지는 나에게 얼마나 많은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가.
어느날 귀엣머리가 하얗게 센 아버지, 귓불이 늘어지고 멋진 턱선이 주름진 선으로 뭉개진 낯선 아버지를 보며 내가 그토록 원했던 제국의 붕괴가 너무나도 허망하게 느껴졌다.
원래 그 제국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걸,
단지 있는 그대로 살아가길 원했던
한 아이의 사랑받고자 한 소망이
기워 만든 가엾은 구조물이었음을
옛궁궐터의 영화를 상상한 고고학자가
폐허를 바라보는 심정처럼
아릿하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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