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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Apr 08. 2016

아버지의 아버지

어린 시절 또렷하게 남아있는 아버지의 장면 중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우리 아버지는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그것이 당신의 평생 업이시기도 해서 하루 종일 집에서 음악 흘러 나왔다. 나에게 음악은 정서 그 자체이다. 생각해보면 요즘 부모들처럼 감정을 읽어주고 바로 반응해주지도 않으셨지만 나에게 정서의 곳간이 텅 빈 것이 아니라 풍부하게 살아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바로 그 음악 때문이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어떤 곡은 너무나도 많이 들었는데 그 음악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죽음과 우울이었다. 하루는 거실을 어둡게 하시고는 소파에 누워 아버지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네 할아버지가 보고싶다고.

아버지는 30대였다.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젊은, 잘 생기고 수재이며 작곡을 하고 강의를 하고 번역을 하며 날마다 문학 평론가나 시인들과 교류하시며 시대를 아파하던 젊은 아버지.

그런데 나는 그런 아버지가 무덤에 누워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할아버지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시면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할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신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고는

나를 오래도록 쓰다듬었다.

나는 아버지가 불쌍했고

아버지가 죽을까봐 무서웠다.


아버지는 마음이 많이 아픈 분이시다.

내가 괴로와 했던 것은 나에게 주신 그토록 많은 사랑이 병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부터였다.

아버지가 주는 사랑을 아이가 거부할 이유는 없다. 어린 나는 당연히 기쁘게 사랑받았을 것이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버지의 사랑엔 병적이고 고약한 면도 있다는 걸 알았다.

 어른이 된 어느 날, 자신이 겪은 실패나 잘못된 선택, 그리고 미련하게 남들과 잘 지내보려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은 일들이 마치 아버지 때문이었던 것 처럼 생각되었다.

인간은 설명되지 않고 인과를 해명해내지 못하면 더 비참한 법이니까.

아버지는 아버지의 우울과 병과 싸우면서 나를 키웠다. 살아보니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있는 힘을 다해 내 아이들을 키웠다. 인정받지 못해 아프고 힘들었지만, 더 사랑하지 못해 후회스러울 뿐이다.

적어도 아버지는 후회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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