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 쑤 May 22. 2016

사랑을 꾸다

나는 망각한다.

어쩌면 매일 망각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져 들떠있고, 사랑에 빠져 오류 덩어리가 되버린 그녀가 말한 것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는데...

그토록 그녀를 멀리 둔 것이다.

몽땅 타버릴 것 같은 정신, 육체가 달뜨기 시작하면서 온몸에 전류가 과하게 흐르고,

그의 목소리나 그의 생각이 담긴 글자가 아니면,

세상 어느것에서도 힘을 얻을 수가 없어.

집안이 너무 서늘하고, 시시해져서

손으로 무엇하나 잡을 수가 없는 빈사 상태.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다, 두손으로 머리를 짛이겨 버릴 듯이 치거나

나는 미친 년이야, 혹은 내 인생은 왜 이런 거니를 반복했다.

아무 것도 설명해줄 수가 없었다.

그래, 그때 나도 그랬지.

제라늄이 예쁘게 피어 베란다에서 활짝 웃고 있었는데

나는 꽃에 물 한방울을 부어줄 수가 없었다.

꽃이 말라 죽고, 잎이 노랗게 뜨고, 결국 지저분한 잎줄기가 무덤가처럼 무성해져도

베란다에 슬리퍼를 끌고 나가 잠시 앉아 있을 힘이 없었다.

하루 종일 너의 문자를 기다리면서,

침대에 반듯이 누워있었다.

네가 아니면, 이 회칠한 무덤 속에서 나를 일으킬 수 없었다.

때로 네가 너무 바쁠 때면 나는 눈물에 겨워서,

햇빛이 내리쪼이는 거리를 유령처럼 나가

아무 버스나 타고, 흐느적거리면서 아무 전시회나 들어갔다.

목울대에 울움이 차 있었나?

목이 부은 것처럼 아팠고, 내 눈은 뚫려있는 영사기 구멍처럼

물건들을 비추거나 아니 물건 위로 너를 비추었다.

어두운 전시장을 나와 거리를 만나자

초현실적인 먼지들이 춤추었고, 햇빛이 소용없이 내리쬤다.

네가 없는 나는 찬바람처럼, 날아가는 드라이 아이스처럼

거리에 서있었다.

베란다에서 식물들이 하나씩 죽어갔다.

나는 뭔지 잔인한 쾌감에 젖어 말라비틀어진 식물 뿌리를 뽑아 버렸다.

화분을 차곡차곡 정리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았다.

내 손이 닿아야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될대로 되버렸으면 좋겠다.

저 따위 것들, 내 몸을 움직이는 이 뜨거운 것에 다 타버렸으면 좋겠다.

내 안에서 전극이 분리되었는지 내 안의 의식이 몸을 놓쳐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내몸이 부지런히 쫓아가는 그곳은 너의 몸이 있는 곳.  

너의 입김이, 너의 목소리가, 너의 눈동자가 나를 기다리는 곳.

매일 매일 백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두 개의 '나'가 앞지르기를 하면서

너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나에게 생명을 달라고, 물을 부어 달라고,

네 부드러운 혀로 달콤한 말을 해달라고.

아무리 들이 마셔도 목이 마른

너의 목소리, 너의 말들로

나를 배부르게 해달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미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