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모르는 중국] 중국 화장실, 깨끗하지만 더러운

화장실로 본 중국의 20년

by 길벗의 앤 Anne

1999년, 중국 대륙의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나를 맞이한 것은 웅장한 자금성도, 만리장성의 위용도 아니었다. 그것은 한 칸의 작은 화장실이었다. 문이 없었다. 물도 내려가지 않았다. 냄새는 코를 찌르는 정도가 아니라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10년 전 대만에서 경험했던 깨끗한 화장실과는 천지 차이였다. 1989년과 1991년 대만 여행에서 만났던 화장실들은 정말 깨끗했다. 같은 중화권인데 이렇게 다르다니.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20여 년에 걸친 긴 여정의 시작이라는 것을.


2004년에 베이징에서 중국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화장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디를 가나 화장실이 문제였다. 특히 베이징 기차역의 화장실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문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수로 하나가 길게 이어져 있어서 어디에 앉아야 할지조차 가늠이 안 되는 구조였다.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당당한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일상이었다. 부끄러워할 일도, 숨길 일도 아니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 큰 충격은 2005년 톈진행 고속버스 여행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휴게소라고 정차한 곳에서 화장실 위치를 기사에게 물어보니 언덕 너머를 가리켰다. 가보니 거대한 텐트 하나가 쳐져 있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볼일을 보고 있었다. 텐트 안의 '자유로운' 풍경은 문화충격을 넘어 실존적 위기감마저 들게 했다. 이곳에서 나는 과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관광지에서는 더욱 기가 막힌 광경이 펼쳐졌다. 서로 마주 보며 문을 활짝 열고 큰일을 보면서 수다를 떠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들에게 화장실은 단순한 용변 공간이 아니라 사교의 장이었던 모양이다. 큰일을 보느라 힘을 주다가 갑자기 맞은 편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경악을 넘어 어떤 경외감마저 들었다. 휴지는? 당연히 없었다. 냄새는?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문을 열고 큰일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사이에 서 있던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볼일이 급하지 않았다면 당장 뛰쳐나왔을 터였다. 제발 문이라도 있었으면. 아니 문은 존재했다. 그들이 닫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일상이 10년 넘게 계속되던 2015년, 마침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화장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화장실 개혁이 시작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지시로 전국적인 화장실 개선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중국의 화장실은 극적인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혁명이라고 부를 만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십수 만 개의 화장실이 신설되거나 개보수되었다. 나중에는 화장실에 별점까지 매기는 시스템이 도입되어 5성급, 4성급 화장실까지 등장했다. 별점이 매겨진 화장실이라니,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변화는 뚜렷했다. 특히 유료 관광지의 화장실은 확실히 달라졌다. 은근한 냄새는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타일은 깨끗했고 화장실 칸칸마다 청소도 잘 되어 있었다. 손만 씻어도 어디선가 달려와 뒷정리는 하는 관리인들 덕에 깔끔했다. 하지만 무료 관광지는 여전히 낙후된 화장실이 많았다. 무료 관광지 역시 화장실 혁명을 거치면서 화장실의 외관은 갖추게 되었지만 유료 관광지만큼의 청결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관광지를 갈 때 유료라고 하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최소한 이 안에서는 화장실 때문에 곤욕을 치를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 화장실이 깨끗해져서일까. 관리인들은 화장실을 집처럼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화장실 안에서 편안히 쉬거나 심지어 도시락을 까먹는 경우도 여러 번 보았다. 우리에게는 최단 시간 머물며 할 일만 하고 바로 나와야 하는 곳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곳이 일터였다. 그 일터가 이만큼이라도 깨끗해진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혁명에도 한계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깨끗했지만 실제로도 깨끗한지는 의문이었다. 관리인들이 열심히 청소를 했지만 가끔 시간대가 맞지 않으면 변기 위에 남겨진 선명한 발자국을 보아야 했다. 좌변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변기에 올라서서 쪼그려 앉는 방식을 선호했다. 공중화장실에 누가 다녀갈지 알 수 없으니 함부로 앉는 것보다는 그것이 더 청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만 더럽혀지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 내가 올라서서 쪼그려 앉은 곳이 그다음 사람이 앉아야 할 변기라는 생각이 그들 머릿속에는 없는 듯했다.


관리인들의 부지런함은 어떤가. 열심히 닦아내지만, 과연 깨끗할까? 내 눈에는 그들이 사용하는 걸레 자체가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걸레질을 하고 나면 세면대에서 썩은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걸레를 만지는 손 역시 깨끗할 리 없었다. 깨끗해 보이지만 깨끗하지 않은 곳. 그것이 중국의 화장실이었다. 겉으로는 깨끗해 보여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여전히 양변기보다는 쪼그려 앉는 좌변기를 선호했고 화장실에서는 무조건 최단 시간을 머무는 것을 목표로 하며 화장실 문을 들어서곤 했다.


하지만 이런 선택권도 나이가 들면 가지기 어렵다. 무릎 수술을 받고 1년도 채 안 된 상태에서 중국을 방문한 80대 엄마는 쪼그려 앉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 양변기만 고집하셨다. 그래서 엄마와 다닐 때는 화장실이 가장 큰 문제였다. 엄마가 가장 선호한 것은 역시 백화점 화장실이었다. 백화점은 그나마 관리가 잘 되고 또 양변기가 많았으니까. 나는 변기에 살이 닿는 것이 싫어서 아무리 백화점이라 해도 양변기보다는 좌변기 쪽을 선호하는데 엄마는 아니었다. 엄마는 백화점이 아니면 생리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연세 드신 분들은 아마 다들 공감하실 것이다. 좌변기를 쓰려면 스쾃(스쿼트)을 하는 것 같은 힘과 체력이 필요하니까.


화장실 혁명을 거치면서 구식 화장실의 변기가 교체되고 문이 달렸지만 중국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문을 잘 잠그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이 있는데도 노크 없이 문을 벌컥 열려고 하고, 노크를 해도 똑똑 노크로 대답하는 대신 "有人(사람 있어요)"이라고 말한다.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문이 빼꼼 열려 있어서 사람이 없는 줄 알고 문을 밀었는데 거기서 누군가 일을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당황하는 것은 나 혼자다. 상대방은 그냥 슬그머니 문을 밀어 나를 공간 밖으로 밀어내는 것으로 본인의 존재를 확인시킬 뿐이다. 그들은 도대체 왜 문을 잠그지 않는 걸까? 왜 문을 열고 볼일을 보는 걸까? 왜 노크를 하지 않는 것일까? 왜 나를 봐도 놀라지 않는 것일까?


역사에 답이 있다. 문화 대혁명 시기에는 개인의 사적 공간 자체가 부정되었다. 특히 가정집의 깨끗한 개인 화장실은 부르주아적 사치품이자 퇴폐의 상징으로 규정되어 조직적으로 철거되었다. 평등한 삶을 위해 농촌은 물론 도시에서도 다 같이 공중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문혁이 끝난 후 가정집에서 개인 화장실을 다시 쓸 수 있게 되고 1990년대 이후에는 건물마다 현대식 화장실이 빠르게 보급되었다. 하지만 외관이 현대식으로 바뀌었어도 여전히 불결했다.


그나마 도시는 낫다. 농촌에서는 예전처럼 공중화장실을 사용하는 곳이 많고, 문 달린 화장실 대신 재래식으로, 그것도 일정 공간에 수로만 파서 화장실이랍시고 만든 곳도 있다. 나 역시 20년 전에 텐트형 공중화장실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급속한 도시화 속에서 지방에서 도시로 유입된 사람들 상당수는 문이나 잠금장치가 달린 화장실에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외에 중국인들의 문화적 배경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중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신체 노출에 대해 관대해 보인다. 어린아이들의 '카이당쿠(开裆裤)'를 생각해 보자. 카이당쿠란 엉덩이 부분이 뚫린 전통 아동복이다. 대소변을 보기 편하도록 바짓가랑이에 구멍을 낸 바지를 가리킨다. 갓 태어난 아기는 기저귀를 사용하지만 아기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몇 년간 아래가 터진 바지를 입힌다. 이 시기의 아기들은 스스로 바지를 내리고 용변을 볼 수 없으므로 앉으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바지를 입혀 배변훈련을 유도한다고 들었다. 무려 한나라 시대부터 시작된 오래된 전통이다.


아기들이 배변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바지의 가랑이 부분을 잘라서 배변 훈련을 쉽게 하도록 하다니. 기저귀가 귀하고 물과 세제가 비싸던 시절에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을지 모르지만 제삼자의 눈에는 엉덩이만 드러난 아기들이 결코 귀엽게 보이지 않았다. 저 상태로 아무 데나 앉으면 아기들 피부는 괜찮을까? 세균 감염 문제는 없을까? 저 모습이 과연 귀여운 게 맞는 걸까? 아이를 키워 보지 않은 나로서는 너무나 생경한 광경이었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렇게 하반신이 노출되어 키워지고, 또 사람들은 이런 아이들의 모습이 익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출에 관대해진 것이 아닐까?


카이당쿠를 입힌 부모들은 길거리 어디에서나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배변을 시켰다. 아이들 버전의 문 없는 화장실을 보는 기분이었다. 요즘은 개의 용변도 치울 줄 아는 중국인들이 많지만 예전에는 아이들의 흔적을 치우는 부모가 거의 없었다. 마치 강아지처럼 배변을 시키고 그 자리를 떠나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서 카이당쿠가 정말 싫었던 적도 있다.


다행히 카이당쿠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중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도시 미관과 공중위생 개선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용변을 보는 장면이 외신 보도를 통해 부정적으로 퍼지면서, '국가 이미지' 차원에서 카이당쿠 사용 자제를 유도하는 캠페인도 펼쳐지고 해외여행이나 유학 경험이 있는 젊은 부모들은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카이당쿠를 꺼리기 시작한 것이다.


카이당쿠는 사라져 가고 있지만, 노출의 시대는 계속되는 중이다. 중국에서 살면서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여성들이 노출에 대한 너무나 무덤덤하다는 것이다.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은 좋지만 짧은 치마를 입고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아무렇지 않게 탄다. 심지어 팬티스타킹 상단 허벅지의 표시줄이 훤히 드러나는 상태를 수도 없이 보았다. 팬티가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역시 낯이 뜨거운 것은 나일뿐, 그녀들은 너무나 당당했다. 노출을 의도해서 하는 노출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냥 보이거나 말거나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중국인의 성격을 나타내는 수많은 단어 중에 '부리타(不理他)'와 '샤오관셴스(少管閑事)'라는 말이 있다. '부리타(不理他)'는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고 '샤오관셴스(少管閑事)'는 "쓸데없이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기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말처럼 보이지만 이는 오랜 역사 속에서 수 없이 핍박에 휩싸였던 사회적 배경이 투영된 결과다.


또다시 문화 대혁명 시대로 거슬러 가 보자. 이미 알려진 바대로 이 시기는 서로가 감시의 대상이었다. 말 한마디를 잘못 전달하면 상대방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나 자신도 함께 수렁에 빠질 수 있는 시절이었다. 이 시기를 살아남은 사람들은 관심의 대가가 얼마나 가혹한지 뼈저리게 배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부모들은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라"라고 가르친다. 나 역시 중국에 처음 왔을 때 중국 친구로부터 들은 조언이 누구에게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나서지 말고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람을 구하면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할 것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알고 보면 사깃꾼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래서인가 중국에서는 여성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든, 신체 부위를 노출하든 말든 아무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러닝셔츠를 위로 말아 올려 부푼 배를 까고 다니는 아저씨들이나 잠옷을 입고 쇼핑몰을 오가는 사람들이나 다들 당당하다. 왜냐고?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 노출에 관대한 문화,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했던 공중화장실의 경험, 이런 것들이 합쳐져 중국의 화장실 문화가 만들어진 것 같다. 그래도 화장실 혁명 덕에 중국의 화장실은 질적으로 상당히 향상되었다. 그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 그에 못 미치는 것 같지만.


화장실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얘기하자면 중국 대학교에서의 경험도 잊을 수 없다. 2022년까지 근무했던 상하이의 대학에는 수로형 화장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나마 문과 칸막이가 달려 있기는 하지만 내부는 여러 칸이 하나의 수로로 연결된 구식 구조였다. 볼일을 보는 동안 위쪽 칸에서 흘러내려오는 '흔적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21세기, 그것도 상하이의 대학교에 이런 화장실이 남아 있다는 게 믿어지는가? 다행히 교수 연구실 쪽은 정상적인 화장실이었지만, 수업 시간에는 이런 학생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최근에는 정말 많이 나아졌다. 코로나 이후 화장실 칸 안에 소독 티슈를 비치한 곳들이 늘어났다. 이런 곳을 발견하면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화장실 입구에 휴지를 비치한 곳도 꽤 많아졌다. 예전에는 아예 없거나 동전을 넣어서 유료로 구입하는 곳이 많았는데 지금은 공용 휴지를 비치한 곳이 늘었다.


기술의 발전도 화장실에 스며들었다. 2017년 베이징 천단공원에는 안면인식 휴지 디스펜서가 설치되어 화제가 되었다. 얼굴을 인식하면 일정량의 휴지를 받을 수 있는데 같은 사람이 얼굴을 다시 인식하면 휴지 배급이 거부되는 시스템이었다. 휴지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는데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실제 기술로 구현하다니 당시 기사를 보았을 때는 웃음부터 났다(심지어 나눠 주는 양도 아주 소량이었다고 한다).


2024년에는 산시성 윈강석굴의 화장실에 칸별 타이머 시스템까지 등장했다. 체류 시간을 표시하여 혼잡을 관리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사생활 침해라는 논란도 일었다. 나도 다른 도시 여행에서 이런 타이머를 직접 봤었다. 마침 큰일 생각이 났던 때라서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이 불편했다. 다행히 사람이 없는 곳이었고 타이머가 끝나도 문이 자동으로 열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화장실 칸 별로 사람 유무를 표시하고 화장실 입구에 화장실 혼잡도를 LED 전광판으로 표시하는 곳까지 등장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화장실 혁명 이후 중국 화장실은 자동 물 내림 시스템이 적용된 곳이 많아졌다. 이것도 기술의 발전이다. 하도 물을 내리지 않으니 강제로 물을 내리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덕분에 앞사람이 남긴 결정체를 봐야 하는 일은 많이 사라졌다. 겉보기에는 발전한 시스템이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일을 보고 있는데도 물이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국은 변기 모양이 이상해서 물을 내리면 물이 사방으로 튀기도 한다. 일을 보고 있는데 물이 내려가면서 변기의 물이 내 살로 튀는 것을 상상해 보라. 나는 발전된 중국 화장실에서 가장 싫은 것이 자동 물 내림 시스템이다. 물은 그냥 내가 필요할 때 알아서 내리면 되지 않을까?


중국 화장실에는 첨단 기술이 속속 도입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문을 닫지 않고 양변기에서도 쪼그려 앉는다. 오죽하면 다른 나라 공항 화장실에 중국어와 영어로 "변기에 올라서지 마세요"라는 표지판까지 생길 정도다. 안면인식 기술이 적용된 휴지 디스펜서와 이런 표지판이 공존하는 나라. 이것이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에 살다가 한국에 오면 화장실에서 여러 번 놀란다. 비데가 있는 곳이 많고, 어디나 휴지가 비치되어 있다. 습관적으로 매번 휴지를 챙겨서 나섰다가 "아 참, 한국은 휴지가 있지" 하며 챙겨 온 휴지를 두고 화장실의 휴지를 쓰곤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화장실이 정말 깨끗하다. 관리인은 보이지 않는데도 지저분한 화장실이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아마도 비밀번호로 관리되고 있는 곳이 많아서인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화장실에 가려면 꼭 비밀번호를 물어봐야 했다. 중국 화장실은 관리인이 있으니 비번이 필요 없다.


중국에 살기 시작한 지 20년이 흘렸다. 중국 화장실은 발전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어디를 가든 휴지를 챙겨 다녀야 마음이 편하다. 아직은 휴지가 없는 곳이 더 많아서 가방에 휴지가 없으면 불안할 정도다. 깨끗해 보이지만 더러운 중국 화장실. 예전처럼 심한 냄새는 아니지만 쇼핑몰이나 백화점 화장실에조차 남아 있는 은근한 찌린내. 문을 닫지 않거나 잠그지 않는 사람들 속에 놀랍게도 한 줄 서기를 하는 사람들. 중국은 여전히 변화 중이다.


언제부터인가 중국은 이미 상당히 발전했다고 생각했었다. 사실이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화장실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천지개벽을 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뒤통수를 치는 사건이 작년에 발생했다. 살면서 내가 본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년 집 근처의 장가항 메리어트 호텔 주차장에 입차할 때 목격한 일이다.


5성급 호텔, 그것도 이 도시 유일한 최고급 호텔 주차장 입구에서 한 어머니가 어린 딸의 치마를 올려주며 그 자리에서 큰일을 보게 했다. 나는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고 정말 기함할 뻔했다. 굳이 거기에서, 굳이 그 순간에. 최고급 시설에서 벌어지는 가장 원시적인 행동. 심지어 이 모녀는 행색이 남루하지도 않았다. 호텔의 방문객답게 아이는 치렁치렁한 레이스가 달린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엄마도 뾰족한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1분만 걸어 들어가면 호텔 로비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을 이 모녀는 몰랐던 것일까. 바로 옆에는 수풀이 있었다. 급하면 수풀에라도 아이를 데려가야 하지 않았을까. 내 상식에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장면을 보고 중국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이날 나는 급속한 발전과 여전한 관습이 공존하는 중국의 양면을 가장 극명하게 목도했던 것 같다.


물론 중국은 20년 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만 발전하면 무슨 소용일까. 사람들이 아직 이 모양인데. 그 모든 모순과 변화를 지켜보며 든 생각은, 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카이당쿠의 역사적 의미를 알고, 공동 화장실 문화의 배경을 이해한다고 해도, 여전히 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이해할 구석은 있지만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는 문화. 그리고 이제는 조금쯤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할 때쯤 나의 뒤통수를 치는 곳. 그래서 아무리 살아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곳. 그곳이 넓고 넓은 땅 중국이다.


과연 중국의 모든 화장실이 정말 깨끗해지는 날이 올까?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도 사람들의 인식과 습관은 생각만큼 빨리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인식과 습관이 전부 바뀌기에 중국인은 너무나 많다. 분명한 것은,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