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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Nov 28. 2023

'돈 빌려달라는 친구 거절법' 검색하셨나요?

거절해도 밥만 잘 먹더라

빵집 매니저를 그만두고 산와머니에 면접을 보러 갔다. 사무실은 대낮이라 환했지만 뒷골목의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구석에 있는 탕비실로 들어가  면접관을 기다렸다. 마주 앉은 면접관의 서글서글한 눈매와 두꺼운 팔뚝이 돋보였다.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추심에 자신이 있었고 고리대부업자라 비난받더라도 금융업이니 합격하기를 바랐다. 그때 불합격을 해서였을까? 지금의 나는 돈 빌려달란 말만 나오면 벌벌 떨고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덕선이네 집은 친구네 반지하방에 세 들어 산다. 아버지인 성동일은 한일은행의 은행원이지만 삶이 고달프다. 빚보증으로 전재산을 날린 탓이었다. 나는 주인공 가족이 극 내내 가난하다가 마지막 회쯤 빚을 진 친구가 나타나는 결말을 보면서 다짐했다. 절대 사채와 보증은 안 하겠노라고. 그러나 현실은 사채와 보증이 필요할만한 거금보다 몇십만 원의 돈에 고달파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돈을 빌리기보다 빌려주는 쪽이었다. 누가 돈을 빌려달라 하면 친구의 엄마와 오빠와 애인을 곱씹어보았다. 제때 변제하지 않으면 독촉에 이용하려는 심산이었다. 다행히 밑바닥까지 보는 일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어릴 때 좋은 채무자만 만나왔는지 '돈 빌려주면 친구도 잃고 돈도 잃는다'라는 말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예나 지금이나 빚진 자들은 여전한가 보다.


처음엔 너그러웠다. 빚진 자는 거절하기 힘든 딱한 사정을 말했고 언제 주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나는 여유롭지도 않으면서 여유롭게 돈을 건넸다. 그 이후부터는 뻔한 레퍼토리가 이어진다. 약속한 날에는 잠잠했고 나는 전전긍긍하고 어느 순간 내가 사정사정하고 있었다. 유튜버 곽튜브는 빌려주는 돈을 손절비용이라고 하였다. 나는 기나긴 변제기간 동안 손절까지 생각해야 했다.


약속한 날이 지나도록 연락한 통 없으면 나에게 새로운 고민을 안겨주는 친구가 야속했다. 30만 원 적다면 적은 금액, 재촉하기도 민망하지 않나? 다가오는 신용카드 대금 결제일에 초조 해지는 건 나였다. 몇 번의 사건을 거쳐 마음고생을 시킨 사람에겐 돈거래를 하지 않기로 했다. 돈은 빌려줘도 빌려주지 않아도 마음이 불안했다. 내 생일을 모르는 먼 친구에겐 냉정하게 거절하는 내 모습이 뿌듯했다. 그렇지만 소중한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고 난 후에는 3개월 동안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남편은 고민하는 나에게 필요로 할 때 도움이 되어야 친구라고 했다. 친구라면 고민 없이 돈을 빌려주고 믿는다고 했다. 남편의 여유가 부럽기도 나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했다. 친한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지 못한 자책감에 사로잡혀 처음으로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친구와 돈거래'에 대한 철학은 저마다 달랐다. 누구는 돈을 건네지 않고 소액대출을 알려준다고 했고, 10분의 1의 돈을 그냥 준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나의 시간이 들어간 돈을 베푸는 아량은 없다. 돈이 우선이냐 우정이 우선이냐 문제는 아니다.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욕심인 거 같다. 나의 속사정과 다르게 친구는 잘 살고 있다. 세상에 '돈 빌려달라는 친구 거절법'은 많고 '돈 빌려준 친구의 속마음'을 찾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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