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하안 도서관 서평 수업의 여운
둘째가 왼손잡이인 것을 알고 놀랐다. 나도, 남편도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시아버님이 왼손잡이인 사실을 알고 궁금증은 어느 정도 사라졌지만 내 아이가 왼손을 쓰고 심지어 왼발까지 쓰기 편안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학교에 가면 오른손잡이 위주의 생활패턴과 시설에 불편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마치 놀이처럼 왼손에 쥔 연필을 은근슬쩍 오른손에 쥐여주니 아이도 은근슬쩍 다시 왼손으로 연필을 잡고서는 신나게 뭔가를 그렸다. 이건 아이의 타고난 본성이라 여기며 나는 손 사용 바꾸기 프로젝트를 일찌감치 포기했다.
다른 사람의 습관을 고치기도 힘들지만 나의 습관도 고치기 만만치가 않다. 이미 일 년 이상 블로그에 서평이라는 이름으로 써 왔기에 더욱 그랬다.
서평 글쓰기 수업을 듣는 초반에는 왠지 참 막막했다. 무엇보다도 객관적이 글쓰기를 강조하시고 개인적이 감정을 배제하라는 말씀에 수긍이 가면서도 나의 독후 쓰기 스타일이 잘 바뀌지 않아서다. 가뜩이나 시간을 내어 힘들게 한 편 한 편 작성하고 있었는데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쓰지 못해 힘들었다. 오랜 세월 다져진 습관이나 버릇의 속성처럼 서평 쓰기가 마음처럼 깔끔하고 논리적으로 되지 않아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소망에서 배우기 시작했지만 한편으로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치유하고 싶은 욕구가 더 크다 보니 변화가 더 두렵기도 했다.
서평의 속성이라지만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객관적으로만 서술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 인용하고 싶은 문구, 생각과 감상이 너무나 많은데 정해진 틀에서 무조건 줄여야 할 때면 슬프기까지 했다. '아쉬운 점에 대한 취지'는 이해하나 항상 무조건 찾아서 굳이 표현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내 이해력이 부족해서 큰 잘못이나 아쉬운 점을 잘 못 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억지로 쓰려니 너무 사사로운 오류를 찾아 비판하는 느낌이었다. 종류를 막론하고 누군가를, 누군가의 창작물을 지적하는 건 여전히 부담스럽다. 괜히 부메랑처럼 더 큰 비난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되돌아올 것만 같은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를 듣고 배운 내용을 조금씩 실천해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익숙하지 않은 새 신발을 신은 느낌이지만 불편해도 조금씩 적응해 보며 신어 보기도 하고 다시 벗어서 시간을 두고 기다리며 예전 신발을 신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서평단으로 조금 더 서평을 쓰기로 약속했으니 내 마음대로만 하기 애매해졌다. 형식에 맞추어 써 보기도 하고 내 마음을 따라 조금 일탈을 해 보기도 하려 한다. 어휴, 이렇게 내 마음이 흔들려서야. 갈대같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건 굳이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닌 것 같다.
좁은 내 시야를 넓힌 좋은 시간이기도 했다. 타인의 글을 보고 함께 고민하며 토론도 하면서 나의 편견이나 놓친 부분을 깨닫는 기쁨은 생각과 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의 조언대로 '기록의 힘'을 믿고 수업의 중간과 말미에 수업 내용에서 기억하고 싶은 부분과 인상 깊은 부분, 늘 서평 쓰기에서 강조하신 사항들을 정리해 보았다. 그렇지 않으면 수업 후 어느새 기억에서 빨리 날아가 버릴 테니까.
우선 거의 매시간 추천 도서를 아낌없이 제안하셨다. 많은 사람이 좋아한 베스트셀러라도 누군가에게는 별로인 책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처럼 선생님의 추천 목록에 다 내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선생님의 진지하고 깊은 성찰을 듣노라면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 몇 권 마음에 남아 표시를 해 두곤 했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좋은 문구를 짚어 주신 때가 가장 좋았다. 들어본 것도 있고 처음 듣는 것도 있었다. 어떤 문구의 경우 알고는 있었지만 실천하지 못하거나 잊고 있어 반갑거나 부끄럽기도 했다.
“세상 모든 명문들도 형편없는 초고로부터 시작된다”/앤라모트
“위대한 글쓰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위대한 ‘고쳐쓰기’만 존재할 뿐이다”/E.B. 화이트(<샬롯의 거미줄>작가)
'기억보다는 기록의 힘을 믿는다'라는 말씀은 누누이 강조하셨고 이를 통해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기억하려고 애썼다. 학기가 시작하고 책보다는 교과서에, 글쓰기보다는 예습하기에 헉헉대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오늘의 '볼넷 저널'에는 '쓰기' 항목을 표시하고 종일 갈등하기도 한다. '오늘은 뭔가 조금이라도 써야 하는데 시간이 없네'라고 변명하면서.
처음 에세이 수업을 들은 작년에 비하면 뭔가를 끄적대는 횟수가 늘었지만 여전히 시작은 힘들다.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는다지만 질적인 면에서 양적인 면에서도 개인차가 있고 환경도, 조건도 다르면 재능도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기에 열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선생님은 프로 작가도 상당수가 글쓰기를 시작하는 순간은 항상 어려워 꾸준함과 퇴고가 최고의 방법이라고 강조하셨다. 맞는 말이다. 어떤 분야건 '기본'은 가장 중요하다.
각자 배울 점이 다르게 다가오겠지만 대부분의 수강생에게 도움 되는 부분은 확실히 있었다. 첨삭 예시글을 통해 구체적인 서평의 양식에 익숙해지고 객관화하는 작업을 연습할 기회를 활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타인과 자신의 첨삭 포인트를 함께 따져가며 각자 자주 반복하는 버릇, 실수 및 지양할 부분을 검토했다. 공개적으로 내 글이 분석되는 상황은 그 취지를 알면서도 여전히 부끄럽고 당황스럽다. 하지만 완벽한 지문보다 오답을 하나하나 고쳐가는 내용이 좋은 교과서의 역할을 하는 실습 자료라 생각하면 창피한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
서평, 아쉽지만 ‘발표를 위한 서평은 반드시 객관적일 것, 그렇지 않으면 독후감’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깔끔하고 똑 부러지는 내용을 써야 한다는 주장에 수긍이 가면서도 감정을 배제하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독후감은 독후감 대로, 서평은 서평대로 매력이 있는 글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그 중간 형태인 듯한 독후 에세이를 선호하지만 서평을 이해하고 알아두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일 테니까. 개인적으로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알지 못했던 서평의 조건을 배워서 좋았다. 가령, ‘아쉬운 점을 꼭 쓰라, 만점 별점을 주는 건 지양하라, 발췌 없는 서평은 서평이 아니다, 추천 대상을 구체적으로 좁게 지정하라’ 등의 포인트는 그 취지라도 잘 기억해야겠다. 타인의, 특히 프로 작가의 작품을 비평하는 게 아직 어색하지만 이 역시 생각하는 또 하나의 디딤돌 같다.
결국 서평은 서평, 독후감은 독후감, 단상은 단상. 결국 내가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릇을 정하면 될 일이다. 국수를 담는 그릇에 밥을 넣거나 간장을 담을 종지에 김치전을 놓으면 뭔가 본연의 맛을 즐기기에는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억지로 그렇게 할 수는 있지만 그릇의 용도에 따라 내용물을 잘 맞추어주는 게 보기도 먹기도 좋을 테니까. 서평을 써야 한다면 서평의 규칙에 최대한 맞추고 느낌과 생각을 좀 더 표현하고 싶으면 정확한 타이틀 없이 그냥 쓰면 되지 않을까 싶다. 논리적으로 쓰고 싶기도 하지만 형식에만 매몰되어 딱딱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조금 어설프고 규칙에 어긋나도 행복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 새 신발과 헌 신발을 번갈아 신 듯 서평과 에세이를 사이를 오가며 시소 타기 모험을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