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말하고, 나는 듣기만 할 때

‘들숨'과 '날숨'이 필요한 관계

by 애니유칸
나는 언제부터인가 특정 사람의 전화를 받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늘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쏟아냈다. 처음에는 친구니까, 가족이니까 들어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감이 밀려오며, 에너지가 고갈되는 걸 느꼈다.


대화란 마치 호흡과 같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공감하는 것이 ‘들숨’이라면,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날숨’이다.


그동안 나는 오로지 들숨만 쉬며 상대방의 말을 들이마셨다. 나의 날숨은 허락되지 않았고, 심지어 내쉰다 해도 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이러한 일방적 대화로 나는 정서적인 산소 부족을 겪고 있었고, 마치 맑은 공기가 없는 공간에 갇힌 사람처럼 서서히 질식해 가는 기분이었다.


이러한 느낌은 공감적 경청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대화의 관계 구조 자체가 불균형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교환 이론(Social Exchange Theory)에 따르면, 우리는 대화에서 감정적 비용(피로감)과 보상(공감, 위안)을 무의식적으로 계산한다고 한다.

일방적인 대화가 반복되면 비용이 보상보다 커지고, 결국 관계를 피하고 싶은 심리적 회피 반응이 나타난다.


일방적으로 말하는 사람의 심리

그렇다면 상대방은 왜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것일까?

이는 단순히 이기심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들의 내면에는 다음과 같은 심리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낮은 자존감과 불안감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싶어 한다. 이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자기 중심성

다른 사람의 관점을 고려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며, 자신의 경험과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이야기는 자신과는 무관한 배경 소음처럼 들릴 수 있다.


감정 해소의 필요성

오랫동안 쌓아온 감정을 해소할 대상이 절실히 필요할 때 일방적 대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이해는 상대방을 비난하기보다 관계를 재정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무조건 관계를 끊기보다, 현명한 대화법을 통해 관계를 개선해 볼 수 있다.


나를 지키는 대화의 솔루션


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한 방어 기제였다. 관계를 끊는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숨 쉴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다음 단계는 대화의 주도권을 되찾아와 자신을 위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나' 메시지로 감정 전달하기:

“네가 계속 이야기해서 지친다"라고 비난하기보다 "나는 지금 좀 피곤해서 네 이야기를 계속 듣기가 어렵다"와 같이 자신의 감정 상태를 솔직하게 전달한다.


대화의 경계 설정하기:

대화 초반에 "미안한데, 내가 지금 시간이 많지 않아서 10분 정도만 통화할 수 있을 것 같아"와 같이 미리 시간을 정해두거나, "오늘은 내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잠시 내 이야기도 들어줄 수 있을까?"라고 직접적으로 요청한다.


기대치 조절하기:

이 사람에게서 위로받거나 에너지를 얻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기대치를 내려놓는다. 대신 다른 관계에서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


삶의 모든 관계는 섬세한 균형 위에 서 있다. 서로에게 건강한 공기를 나누어 주는 관계만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작은 결단은, 나 자신과의 관계를 먼저 회복하는 첫걸음이었다.

나는 이제 들숨과 날숨이 모두 있는 건강한 대화를 연습하고 있다. 그 연습의 시작은, 먼저 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부터 시작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