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봄
첫번째 책, 체호프 단편선.
26p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행동 끝에 후회하고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겪어야 하는 인물들.
사람은 모두 갈팡질팡, 확신 없고 불안한 삶을 산다. 갑작스런 선택에 기로에 놓였을 때 그 상황이 생각났다. 나는 한다, 안한다의 기로에 놓일 때 대부분 한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에 기억나는 후회는 없었다.
자신의 글에 어울리는 죽음의 모습이 인상깊다. 마치 행복과 불행(죽음)이 맞닿아 있는 느낌.
두번째 책, 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싶은 걸까 의문이 들었는데, 사실 뇌에 있는 모든 생각을 흐름대로 나열한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길을 가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이 전환될 때가 자주 있다.
세번째 책, 오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85p 존재감없이 스스로 무언가 이루려는 욕심도 없이 오셀로의 숨겨둔 마음을 파고들고 행동을 부추긴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주변 모든 상황과 나와 친한 사람들과의 대화속에서 자연스럽게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것 같다.
사실 나는 어떤 행동을 부추기는 말, 행동, 분위기 이런 동기보다 그래서 도출된 결과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누군가의 멸시와 조롱 속에서 더 독한 마음을 먹고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고, 반대로 늘 촉망받던 사람이 부담을 느껴 미끄러지는 경우도 있다. 동기는 수만가지가 될 수 있고 어떤 동기에 주목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네번째 책,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118p 이 이야기 전체가 젊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작가의 생애를 보니 왜 이렇게 이야기 했는지 알것같다.
근래에 친구와 멀어졌다. 내가 실수해서 생긴 일이다. 이 책을 읽고선 이미 벌어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돌리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할지, 여러가지로 나아갈 수 있는 노력을 해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2024년 이 친구는 우리 윗집에서 살고 있다)
다섯번째 책,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142p 개츠비가 원한 것은 하나의 요소만으로 이뤄진 사람. 내가 원했던 그때의 그 모습만으로 상대방이 채워져 있는 것.
146p 되찾을 수 없는 한순간.
여섯번째 책,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시간과 공간, 존재를 채우는 여러겹의 층위들"
언젠가 시간의 흐름, 과거의 표현이 모호하고 어렵게 느껴진 적이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너무 어렵게 다가온다
일곱번째 책,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
이 길이 평탄대로 속이라도 언제든 매력적인 대안이 나타날 수 있다. 만일 내가 가는길에서 매력적인 대안이 생긴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여덟번째 책,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228p 나오코, 229p 미도리
나오코는 처음느낀 사랑, 미도리는 처음 다가온 매력적인 사랑으로 보였다. 청춘의 사랑과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이 책을 좋아한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땐, 누굴 사랑해본적도 없는 내가 마치 여름날 벤치에 앉아 사랑을 나눴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홉번째 책, 페스트. 알베르 카뮈
코로나와 겹쳐보이는건 기분탓일까.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미뤄지더라도 쉼없이 싸우고 버티라는 구절들이 마치 나에게 말하는 듯 했다. 조금 헤이해 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나라도 꾸준히 거리두기를 실천해야겠다는 묘한 찔림을 받았다.
열번째 책,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292p 먼곳에 쏜 회살은 등 뒤에 꽂힌다.
애써 부정하기 위해 모른척 해왔지만 결국 그 상황을 마주한다. 어느 순간에는 내 손으로 제어할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인다.
열한번째 책,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탈로 칼비노
도시에 대한 묘사가 돋보인다. 나의 기준이 되는 도시는 서울과 부산이다. 여행을 갔을 때 어떤 곳이든 기준이 내가 자주 가본 도시가 되는건 당연하다. 일본 도쿄의 낮은 회사원이 많은 대학로같고, 홍콩의 밤은 네온사인이 많은 홍대같다. 블라디보스톡은 춥고 서양건물이 많은 부산같다. 같은듯 다른 도시들. 기억을 살려본다.
열두번째 책, 변신 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변신을 보면 남들과 다른 내 모습에 소외되진 않을까 불안함에 휩싸였던 때가 생각난다. 요즘도 자주 있는 일이지만 어렸을 때 부터 나는 자기 검열이 일상이었다. 평범해보이고 싶었다.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그래서 긴장도 많이 하고 불안해 했었다.
열세번째 책, 나를 보내지마. 가즈모 이시구로
AI가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그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야하나? 아님 그 목적에 맞게 사용하기만 하면 될까?
멘티 친구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감정이 생기게 되면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가 줄어드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나는 목적에 맞게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이 얘기를 듣고 인격적으로 대우해야한다고 마음이 바뀌었다.
사실상 인간을 위해서도 AI를 인격으로 대우해야 한다. 근래에 서비스된 '이루다'의 경우도 이와 같다. 각종 혐오 표현을 학습하고, 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점차 확대된다면 잘못된 가치관 형성에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인문 고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머리가 복잡한 요즘,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복기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