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
1.
인간은 행복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진실.
우리가 환희와 쾌락 속에 머물지 않고 고통을 통해 더 개선되도록 만드는 것이 신의 목적이며, 진화의 본질이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락한 삶과 의미있는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기에 인간은 얼마나 애틋한 존재인가.
"행복"하고자 하면 할수록 더 행복과 멀어지는 느낌을 느낄 때가 있다. 강박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많았다. 매 순간 순간을 행복이라는 관점으로 평가하면 한 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은 달리기에 빠졌다. 달리는 행동 자체는 사실상 고통이다. 습한 날씨에 등 뒤에 흐르는 땀은 찝찝하고 불편하고 불쾌한 경험이지만 그걸 마치고 나서 샤워하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재밌는 책을 읽는건 또 꽤 보람차고 행복하다고 느껴진다.
<홍학의 자리>를 읽다가 저녁 밤 길거리가 무섭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그 책이 너무 재밌어서 손에 놓지를 못하고 반나절만에 다 읽어버렸다.
2.
우리는 몽상에 빠질 때도, 생각의 초점을 통제할 수 있을 때도 종종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고한다.
내가 내 생각을 통제할 수 있을 때도, 불편했던 경험들을 상상하고 이불을 발로 찰 때가 있다. 극단적으로 안좋아 질 수 있는 경우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굳이 단점들을 상기하기도 한다.
3.
적당한 고통은 이후에 더 나은 쾌락을 얻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즉, 더 큰 미래의 보상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모든 것이 만족되고 충족되어 있는 삶은 사실상 그것이 기본값이 되기에 권태로워 지기 쉬울 것 같다. 내 상황은 꽤나 만족스러운데, 일부로 고난을 만들기도 한다. 되지 않을 사람에게 구애하기도 하고 업무에서도 개선되기 어려운 일에 불만을 가지고 공론화 하기도 한다. 굳이 산에 오르고 장거리를 달린다.
4.
비선택적 고난은 끔찍하다. 가능하다면 피해야 한다.
저자는 다만 비선택적 고난에 대해서까지 동조하지 않는다.
5.
첫째, 특정한 유형의 선택적 고난은 기쁨의 근원이 될 수 있다.
둘째, 잘 살아낸 삶은 쾌락적 삶보다 더 많은 의미를 지닌다.
셋째, 고생과 난관을 거쳐야하는 고난은 고귀한 목적을 이루는 한편 완전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6.
선택적 고통과 고난의 종류 2종
단기적 쾌락을 줄 수 있는 선택적 고통. 매운 음식, 열탕, 공포 영화, 거친 섹스, 격렬한 운동 등
노력을 요구하며 종종 불쾌하나 잘 산 삶의 일부(의미가 있는)가 되는 선택적 고난. 산을 오르고 아이를 갖는 일 등
"희소성 결핍" 우리는 자신을 공경에 빠트리는 일을 선택할 수 있지만 동시에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도 선택할 수 있다.
7.
쾌락인 동시에 고통, 고난에서 얻는 기쁨
양성 피학증 : 비교적 무해한 수준의 피학증 (적당한 자발적 고통/고난)
가끔 멍이 든 곳을 누른다. 입에 난 혓바늘을 건들이기도 한다.
사우나의 쾌감과 고통, 슬픈 영화 감상하며 울기
8.
부정적인 경험과 긍정적인 경험은 상반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반응으로 인해 행복, 슬픔, 분노, 수치, 경이를 느끼도록 만들어졌다. ... 동기가 부여되면 분노를 키우려고 애쓸 가능성이 높으며 그 분노가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분노한 사람들은 협상에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슬픔은 실제로 나쁜 경험에 해당하지 않으며, 또는 최소한 즐거운 슬픔이 될 잠재력을 갖고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스위치 키고 끄는 것 처럼 제어할 수 있나보다. 기분 좋고 싶은 날에는 웃으면서 아이처럼 뛰면 조금은 그런 마음이 든다.
팀장님 앞에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슬픔도 지금은 즐거운 슬픔이 되었으니 맞는 말일수도?
9.
"행복"이라는게 너무 모호하다. 긍정심리학 분야의 많은 연구자들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의 삶의 만족도를 극대화하고 싶어 합니다. 이는 행복의 극대화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행복과 도덕을 구분하는 사람도 있고, 구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얼마나 행복해요? 라는 질문은 지금의 경험을 가리키거나 / 삶의 커다란 부분에 대한 평가를 가리킨다.
행복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정의내리기 어렵다는 것이,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10. 쾌락에도 장르가 있다
쾌락주의자들은 삶이 자발적 고난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 고난은 더 큰 쾌락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다.
쾌락 자체가 우리 행동에 유일한 동기는 아니다. 긍정적인 경험을 촉발하는 모든 것이 가시적인 보상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일상생활에서 나름의 동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간은 자연 선택에 뒤이어 사회와 문화에 노출되며 공동체가 더 나은 곳이 되기를,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도록 만들어졌다. 이는 쾌락주의적 동기와 구분되며, 때로 충돌하ㄴ 심리적 동기가 있음을 뜻한다.
한주님이 중2병이 심해졌을 때, 세계평화가 본인의 꿈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선생님은 세계평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아무리 악독하고 비윤리적인 사람도, 그런 행동을 촉발한 마음에 세계평화가 없을까 싶었다. 히틀러도, 김정은도 자신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세계평화였기에 그렇게 행동해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