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생일 말이다. 나는 생일에 대해 그다지 행복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딱히 가난이 정확히 뭔지 몰랐던 시기의 생일은 누구나 다 그런 거라 생각하며 지나갔고 딱히 누군가의 축하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자라고 나서 뒤늦게 하는 파티에 되려 어색하고 불편했다.
집에서 하는 생일은 별게 없다. 미역국과 가끔씩 특별하게 등장하는 케이크 하나면 끝이 난다. 별도의 선물은 없다. 그것이 우리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 같다. 몇 번은 집에서 나의 생일을 잊어 먹고 지나간 적이 있다. 처음엔 그게 이상하게도 속상했는데 이제는 조용히 지나가는 것이 더 마음에 편하다. 밤늦게 돌아와 피곤한 얼굴로 미역국을 끓여내는 것보다 몇 분을 더 자는 것이 엄마에게 필요하니까.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가끔씩 한다. 별다른 것은 없지만 그 날 만큼은 다른 날들보다 더 많이 혼자임을 느끼기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좋다. 나이가 들수록 가족과는 멀어진다. 그것이 마치 이제 나에게도 나만의 다른 가족이 생겨야 할 시기가 다가오는 것을 알리는 신호 같기도 하다. 미안하지만 나는 나 이외의 가족이라는 구성원을 탄생시킬 생각이 추호도 없다.
생일이라는 날에서 가장 주목받아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부모님일 것이다. 나는 그저 열 달을 기다렸다 때 맞춰 나온 것일 뿐, 그간의 노고와 당일의 고통은 모두 부모님의 업적인 것이다. 그저 나는 그 날에 태어났음으로 인해 주민번호를 부여받고 나이를 말할 수 있는 근거를 획득한 것뿐이다. 탄생에서부터 내가 선택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별이나 혈액형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계속 불리게 될 이름 조차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은 없다. 그래서일까, 때로는 그 부모님이 자식을 하나의 소유물로 밖에 인식 못하는 일이 생긴다. 이 모든 것들이 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지만 밖으로 나와 숨을 쉬고 난 이후부터 행동과 생각과 말은 전부 나를 통해 빠져나오는 것들이고 그것들로 이루어진 시간들이 나이라는 굴레를 쌓아 올리며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한다. 나 스스로가 자신을 위한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살아가는 의미는 없다.
스스로에게도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딱히 축하받을 일도 아닌 것 같다. 좀 더 깊이 파고든다면 왜 축하를 한다는 지도 의문이 든다. 이상한 일이다. 1년에 한 번, 그렇게 이상한 날이 온다.
- 2019. 0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