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ioth의 창업정신을 담은 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2021년 8월 4일부로 주식회사 Naioth가 출범했습니다.
직원은 저 한 명, 자본금은 200만원(그조차 간당간당합니다), 아직 선명한 MVP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품어 왔고 품고 있는 내용들이 있기에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나욧(Naioth)은 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의 양성소를 의미합니다. (삼상 19:18) 시대의 상황을 하늘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선포했던 예언자들을 길러냈던 나욧처럼, 시대의 문제들을 붙들고 씨름하고 대안을 만들어내는 연구자들이 자라날 수 있는 생태계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이름 지었습니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보다 깊게 설명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업의 특성상 스타트업과도 조금은 궤를 달리하고, 그렇다고 소셜벤처라는 범주에만 머무르기에도 규정할 수 없는 그런 길을 걸어가는 사업입니다. 나름대로는 '미션 벤처(Mission Venture)'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민과 방향성을 정립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가운데에서 정립되는 내용들이 비슷한 길을 걷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귀감이든 반면교사든 어떤 모양으로든 쓰일 수 있다면 원이 없겠습니다.
창업일기를 시작하려 하지만 글이 잘 쓰이지 않아, 지난 4월 16일에 지인들에게 공유드렸던 창업정신을 담았던 글 <Digital Federalist : 여러 분들께 드리는 요청과 제안>을 먼저 공유하면서 시작합니다.
앞으로 창업과정에서의 고민과 이슈들, 그리고 여러 생각의 내용들을 틈틈이 적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특성상 글이 매우 길고, 그림 등이 적은 편입니다. 브런치를 운영하면서 내용은 조절해보겠지만 감안하면서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그럼에도 많이 고민한 내용들이 녹아 있으니, 시간을 투자하셔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2021년 4월 16일
안녕하세요. 하윤상입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의 도움을 받아 지금 이 자리까지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여정들을 갈무리하고 새로운 걸음을 내딛기에 앞서, 제가 해왔던 고민들과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면서 함께 나누고 또 도움과 기도를 요청드리고자 이 글을 적습니다. 계속 제 글을 읽어주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길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조금 인내해주셔서 읽어주시고, 또 생각날 때마다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기울어진 배, 다시 세우고야 말겁니다. 우리 아이들은 구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어물쩡거리는 사이 단 한명도 건지지 못하고 수장되고 말았지만, 이 나라는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2015년 12월 개인기도문 중)
#1. 7년 전 오늘이었겠죠. 다른 많은 분들처럼 아이들을 떠나보내고서 많이 앓았습니다. 처음에는 슬퍼하다가, 그리고 분노하다가,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이런저런 모임들을 조직했었습니다.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이들을 잊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3년상을 치르듯 왜 아이들을 구할 수 없었는지 씨름해보자'는 여느 분의 말이 마음에 남아 그렇게 홀로 3년을 끙끙 씨름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3주기였던 2017년 4월 16일.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전할 편지 하나 적을 힘이 없어 좌절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2. 아이들의 죽음을 덧대어 보다 이내 깨달았습니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여전히 배 안에 있다는 것을요. 아이들을 놓친 그 자리가 기울어진 사회의 한 단면임을 알았고, 이후 또 그렇게 놓쳐야 했던 강남역과 구의역의 친구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을 떠나보내고서야 사회 안에서 이 참사가 현재진행형임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깨달았던 것은 결국 많은 프레임과 편견들을 걷어내고서 아이들을 왜 구하지 못했을까에 대한 제 나름의 결론이 '목숨 걸고 아이들을 구하러 들어가는 사람들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구하지 못했지만 이 사회도 기울어져 있음을 감각한 것이 제게 주어진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게으른 학부생활로 인해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고민하던 중 기회를 얻어 행정학과 대학원에서 고민을 지속할 시간과 여건을 얻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입학 당시에 연구소 창업을 꿈꾸면서 저의 기도문에 적었던 이야기는 https://anointer90.tistory.com/2 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3. 공공의 가치가 사회에 실제로 구현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행정학과였기에 지난 5년 간 충분히 연구라는 방법으로 고민을 이어나갔습니다. 배를 보수할만한 '방주'를 지어보자는 나름의 뜻을 품고 여러 대안들을 찾았고, 학부 마지막 학기 즈음에 발견한 스타트업 생태계의 역동성은 제게 방주의 가능성을 더욱 확신하게 해주었습니다. 급변하는 사회의 고객문제를 저렇게 혁신적으로 풀어내고 해결하는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길러질 수 있다면, 사회문제들 또한 그런 역동성과 혁신성을 가지고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역동성의 동력이 '플랫폼'에 있다고 보았고 그렇게 플랫폼을 연구주제로 삼아 연구를 지속해나갔습니다.
#4. 연구과정에서 동시에 발견한 자리는 '시대전환'의 자리였습니다. 석사논문 주제로 포착했던 서울시의 택시산업과 모빌리티 스타트업의 충돌은 제게 시대와 시대가 충돌하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마치 구한말 조선의 조정 내에서 노론과 소론이 으르렁대던 사이 강화도에 나타난 거대한 이양선의 모습과 같이 말이죠. 공격 당하는 조선도 공격하는 이양선 자신도 알지 못하는 거대한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라의 향방을 걱정하던 유길준의 모습이 마음에 깊게 남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무르익으면서 점차 확신하게 되었던 듯 합니다. 그저 방주의 구조물 정도로 생각했던 스타트업 생태계와 디지털 전환이, 어쩌면 구한말에 마주했던 시대전환에 준하는 거대한 전환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만일 그런 것이라면, 선조들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세대는 빠르게 전환의 실체를 파악해야 했고 전환 한가운데에서 문명과 사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예상보다 기울어진 사회의 침몰속도는 훨씬 빨랐고, 이에 대한 대안의 필요성은 훨씬 절박한 것이었습니다.
#5. 대안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참 많은 도움과 가능성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 고향과 같던 교회 공동체에서 치열하게 씨름하던 가치와 정체성, 공동체와 전통의 계승에 대한 고민은 이 작업을 수행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반이 되어주었습니다.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을 통해 저널리즘 영역에서 비슷한 결의 고민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미래를 만들어내고자 씨름하는 분들을 많이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를 연구하면서 앞서 시민참여플랫폼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미래를 만들어내고자 분투하는 많은 활동가분들을 알 수 있었고, 서울청년학회의 기획에 함께 참여하게 되면서 새로운 사회를 풀어내고 관점과 대안을 만들어내고자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고 계시는 연구자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12년간 몸담았던 연세대학교와 3년 반동안 몸담았던 공공문제연구소가 품고 있던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열망은 제게 방향타와 같았습니다. 이 외에도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 속에서 그저 어떤 분노와 열정 밖에 없던 저의 손에 어떤 가능성과 방법들이 나열된 헐거운 기획안 하나가 쥐어진 듯 합니다. 이 내용을 서울청년학회 참여자분들과 간략하게나마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6. 반면 기획안이 구체화되어 가는 동안 제 안의 진정성과 열망은 저도 모르게 점점 사그라들기도 했습니다. 없는 것을 만들어가야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 쉽지만은 않아서 꽤 자주 주저앉고 좌절하고 도망쳤습니다. 장학사업의 도움을 얻어 생활비를 지원받게 되자 그 안락함에 안주해 이 길을 가고자 했던 마음이 말라붙었다 느끼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저 말로만 그럴듯한 꿈을 꾸는 것과, 실제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의 무게가 다름을 알아가면서 함부로 대안을 부르짖던 시기의 치기어림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7. 마음 속에 여전히 뜻을 품고 있었지만 일상에 파묻혀 조금은 단념을 고민하고 있던 시기에, 모교 교양학부에서 플랫폼 사회에 대해 강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만나게 된 20학번 신입생들과의 만남과 3월에 공론화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사회를 덮친 코로나19와 맞물려 제게 행동의 긴급성을 알려주었습니다. 플랫폼 교양강의가 갓 성인이 된 직후 코로나19가 뒤바꿔놓은 사회 앞에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던 신입생들과 함께 사회의 미래와 대안을 함께 논의하면서 제가 준비해오던 것이 무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면,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여전히 사회가 기울어져 있고 사회문제들은 방치되는 것을 넘어 변이, 진화되어 더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나름의 기획안까지 손에 쥐게 된 상황에서 또 다른 피해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무어라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결국 지금까지 준비해오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긴급하게 사람들을 모아 '함트(XAMT)'라는 이름으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해 헐겁게 준비한 기획안을 실현해보고자 모임을 가졌습니다. 비록 수개월이 되지 않아 프로젝트는 해산했지만 그동안 함께 할 사람들, 여러 시도를 통해 축적된 콘텐츠들, 그리고 경험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다시 누군가를 놓친다는 것은 너무도 끔찍한 경험이지만 저로서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최선은 더 이상 이론의 뒤에 숨지 말고 계속해서 실패하고 계속해서 학습하면서 지금까지 그려온 기획안을 현실에 구현할 준비를 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8. 박사논문 프로포절이 끝난 직후 기회가 열려 10월에 수원에 집을 구할 수 있었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실제 기획안을 현실로 풀어내는 시도를 해볼 수 있었습니다. KT&G 상상스타트업캠프 5기에 선정되어 '연구협업플랫폼'이라는 아이템으로 소셜벤처 창업을 준비할 수 있었고 현재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어 신도림에 사무실을 얻고 실제 법인 설립을 앞두고 있습니다.
#9. 지난 6개월 동안 학교와 가정에 지금까지 준비해왔던 과정들을 공유하면서 독립을 준비하고 또 창업프로그램을 통해 헐거운 기획안을 공정을 시작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설계도로까지 그려가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한달여의 시간동안 제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길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선 이야기를 길게 적은 이유는 제가 어떤 마음에서 이 작업을 하고자 하는지 여러 분들께 공유하고, 마음이 허락되시는 분들과 함께 작업을 해나가기 위해서 입니다.
#10. 저는 이 작업의 이름을 Digital Federalist라 이름 붙입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직후 수백년간 신대륙은 유럽에 있어 '골드러시'가 가능한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신대륙의 황금을 얻고자 수많은 선원들과 자본가들이 신대륙을 향했고 그 덕분에 신대륙의 많은 부분이 개척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실제 신대륙에 도달할 수 있는 선박기술이었겠죠. 하지만 신대륙이 많이 개척되고 골드러시가 잠잠해질 때 즈음 종교의 자유와 시민적 자유를 위해 이주했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국가는 그 자체로 구대륙에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들이 시도했던 민주주의와 대안적 국가는 그 자체로 구대륙에 영향을 미쳐 이후의 여러 시민혁명들과 시대의 전환에 큰 지렛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전환에 있어서 중요했던 것은 기술 이상으로 그들이 가졌던 새로운 사상이었다 생각합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에 따른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은 아직까지 '디지털 골드러시'의 모양을 가집니다. 많은 이들이 미처 개척되지 않은 산업의 디지털화를 주도하면서 그곳에서 나오는 막대한 부를 거머쥐기 위해 싸웁니다. 그렇기에 지금 중요한 것은 실제 그 디지털화를 가능하게 하는 개발자들의 역량과 비즈니스 감각이겠지요. 코로나19는 그러한 사회적 전환을 더욱 가속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 만큼이나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은 사회적으로 폭발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그런 전환은 시민참여플랫폼이나 여러 SNS, 공론장, 미디어 등의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저는 아직 그 폭발적인 전환이 채 시작되지 않았다 생각합니다. 이는 기술적인 여건이 보다 무르익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만큼이나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된 시대전환이 그저 산업혁명과 신대륙의 영향 때문만이 아니라, 구체제의 모순이 극대화되는 과정과 함께 대안체제의 현실성이 무르익는 과정이 맞물리면서 이루어졌던 것과 같은 맥락일 겁니다.
(전환시대로서의 논리에 대한 플랫폼의 논의는 아래 글에서 자세히 기술한 바 있습니다. https://naioth.notion.site/8e22f7cf32144923a877956d81ba087b)
#11. 이러한 시대전환에 있어 필요한 감각은 디지털화를 주도하는 개발자로서의 역량 만큼이나 새로운 사회와 시대에 걸맞는 사상과 체제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촉발되는 사회의 전환은 지금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산업에 일으키고 있는 혁신과 질적으로 다른 차원일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그 사회의 전환을 일으킬만한 사회적 폭발력으로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가느냐에 따라 우리는 문명의 도약과 디스토피아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디스토피아로 추락하고 있는 문명에 허락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연구자들은 더욱 새롭고 더욱 어려운 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정치적 기획을 공동으로 고안하기 위한 조직의 기틀을 만들고 이러한 정치적 기획의 성공을 담보할 조직적 조건을 갖추는 데 공헌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1789년 프랑스대혁명 당시의 제헌의회와 미국혁명 당시의 필라델피아의회는 여러분과 저와 같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들이 법학 지식을 갖추고 몽테스키외를 읽고 민주적 구조를 고안해내었다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고안해내야 합니다."
(피에르 부르디외, <지식인이여 분노하라!> 중)
피에르 부르디외가 타계 직전 르몽드에 기고한 이 글의 내용처럼 우리는 18세기 프랑스의 제헌의회와 필라델피아 의회를 비롯한 여러 시도들을 통해 선조들이 혁명의 에너지를 근대 국가와 민주주의라는 틀을 통해 담아내었던 것처럼 곧 붕괴될 조짐이 보이는 구시대에서 쏟아져 나올 에너지를 담아낼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업적 기회를 노리고자 하는 골드러시의 면과 다르면서도 기존의 체제를 수호하고자 하는 방식과도 결이 다를 것입니다.
그 작업을 수행했던 미국의 대표적인 이들이 연방주의자(Federalist)라는 이름을 얻었던 것처럼, 지금은 디지털 전환을 통한 시대전환을 모색하는 Digital Federalist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12. 저는 이 작업이 크게 언론, 대학, 공론장, 정치, 정부의 영역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는 언론 영역에서의 혁신이 시도되어야 합니다. 물론 유튜브와 SNS 등을 통해서 콘텐츠와 미디어 분야에서 이미 거대한 혁신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지만, 특별히 저널리즘과 언론이라는 측면에서 정보와 지식의 연결과 유통에서 보다 근본적인 혁신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사회문제의 측면에서 문제가 발발했을 때에 이에 대한 분석과 진단, 그리고 다른 문제 및 앞선 문제들과의 연관관계 등을 전달하는 말 그대로 '매체(media)'의 역할에 있어 지금의 방식은 여전히 전문가와 사람에 의존한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이 영역에 있어 정말로 언론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혁신과 전환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그 경우 공공성과 사회적 공론의 형성에 변혁을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지식을 생산하는 대학 영역에서의 혁신, 정확히 말하면 연구 영역에서의 혁신입니다. 언론의 영역이 기존의 지식 및 정보들과 발발하는 문제들 간의 '연결'방식에 대한 혁신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연구와 대학의 영역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방식에 대한 혁신입니다. MOOC와 에듀테크 등 사회구성원을 교육시키는 방면에서 교육방법과 콘텐츠에 대한 혁신들은 발빠르게 일어나고 있지만, 지식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지식이 생산되고 가공 및 유통되는 방식에 있어서는 여전히 도제식 훈련과 개인단위의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연구에 있어 장벽의 완화와 협업의 증진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보다 낮은 비용으로 보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보다 편리하게 연구를 수행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사회문제들에 대한 지식생태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지식의 생산과 유통에 있어서 혁신이 가능해진다면 비로소 지식을 토대로 대안을 마련하는 공론장에서의 논의가 가능할 것이고 제대로 된 지식과 전문가, 현장과 연결되어서 생산되는 대안은 비로소 올바른 문제해결로 우리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정책정당, 솔루션 정당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집니다. 정치의 구조와 동학에 대해서 제가 기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지만 보다 튼튼한 문제해결지식과 보다 다양하게 연결되고 또 접근가능한 자원의 마련은 정치에 있어서도 그 구조 자체의 변화를 일으킬 여건을 조성하리라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다시 학문과 대안, 정치 사이의 연결고리를 복원하고 오롯이 문제해결에 복무하는 정치적 여건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후 정부의 정책생산 자체에 대한 혁신 또한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존의 세금수취제도에 대한 부분과 공무원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정책기획과 집행, 예산 편성 등이 일어나는 정부구조 자체가 전면적으로 재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지식의 측면에서 언론과 대학의 지식생태계가 그 역할을 담당해주고, 이를 실제 집행하고 현장에 맞는 솔루션을 찾아내는 역할을 사회혁신생태계가 담당해줄 수 있다면 우리는 유연하면서도 시민과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적재적소의 자원결합과 피드백을 통해 문제를 관리하는 새로운 차원의 정부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지금까지 헤아려볼 수 있는 새로운 ‘방주’의 모습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에 대한 개략적인 논의는 서울청년학회에서 발표한 ‘청년연구자플랫폼 제안(https://anointer90.tistory.com/7) 에서 논의한 바 있습니다.)
#13. 그 첫 걸음으로 저는 ‘대한민국 사회문제지도(Knowledge Github)’를 준비하려 합니다. 지속적으로 재발, 변이, 진화하는 사회문제들에 있어 각 문제들과 연관된 정보, 기사, 지식, 논문, 보고서 등을 주제별로 아카이빙해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현재 이미 다량으로 생산되고 확보되고 있지만 파편화되어 있는 정보와 지식들, 그리고 그것들을 구축하고 있는 전문가들에 대한 자료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문제 및 주제별로 큐레이팅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기존에 연구되고 고안되어 있지만 접근되지 못하는 자료들의 접근성을 극대화하여 문제해결에 최대한 사용하도록 하고, 동시에 같은 영역에서 사회문제가 재발되었을 때에 최대한 빠르게 관련문제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통해 보다 종합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결국 실리콘밸리와 스타트업 생태계의 가장 근본적인 인프라이자 플랫폼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 서로를 시공간의 제약 없이 연결시켜주던 인터넷과 이를 통해 구축한 지식 인프라였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개발자들이 Github를 통해 자유롭게 서로의 코드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학습공동체를 구축하여 서로 간의 개발환경의 개선에 이바지하였던 것처럼, 사회문제에 대한 연구와 활동에 있어 이를 지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인프라가 조성된다면 기존 사회문제의 대응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문제들에 대한 대응, 무엇보다 이러한 공통된 인프라를 바탕으로 보다 역동적인 협업과 문제해결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실리콘밸리와 다른 결을 가지는 새로운 문화와 역동성을 가진 생태계를 구축할 토양이 되어 줄 것입니다.
동시에 저널리즘 영역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솔루션 저널리즘(Solution Journalism)’의 맥락에서 그들이 취재하고 전달하는 정보에 대한 맥락과 정황들을 보다 풍부하고 적실하게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이후 주제별로 문제관심자들과 전문가, 연구자들이 이합집산하여 지식과 대안을 생산하는 문제해결 연구플랫폼을 런칭하는 방식으로 사업과 활동들을 확장해나가고자 합니다.
(연구플랫폼과 관련된 제안에 있어서는 KT&G 상상스타트업캠프 5기에서 진행한 사업 피칭 영상(https://youtu.be/dOF_asxZpBI?t=3070)에서 더 자세히 제안하였습니다.)
(51분 21초부터 시작됩니다)
#14. 매우 거시적이고 전면적인 논의들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 이유는 이 이야기들의 초입부가 무르익은 지금 이 시기에, 이 기획들을 실현하는 데에 나아가는 걸음은 단순히 스타트업 생태계나 사회혁신 생태계의 그것과는 다른 걸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걸음들은 그저 한 두가지 사업모델의 기획을 넘어 생태계와 사회전환의 흐름까지를 아우르는 기획입니다. 어쩌면 저희 세대에 마치지 못할 기획일지 모르지만 동시에 급변하는 사회속도를 염두해 두었을 때에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시도되고 실현될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동시에 이 기획들은 그저 실현가능한 현실성을 넘어서 무엇이 옳고 가치 있는가와 같은 방향성에 대한 고민까지 함꼐 아우르게 되는 다차원적인 기획들입니다. 그렇기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기획에 뛰어들어야 하고, 더 많은 모델들이 함께 경합해야 하고 서로 간의 경쟁을 통해 보다 깊게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발전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포스트 민주주의’에 대한 기획일지도 모르니깐요.
그렇기에 더 많은 분들을 이 영역에서 함께 미래를 구축하는 논의들을 이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더 많은 자원들이 투입되어야 하고 더 많은 지식이 축적되어야 하고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15.
"우주 탐사를 갈망하는 젊은 항공 귀재들은 정말 오랜만에 로켓 설계를 사업 목표로 설정하고 정진하는 기업을 보았고, 항공학을 전공하고 나서 관료주의에 물든 정부 하청 업체에 취직하지 않아도 되는 흥미진진한 기업을 만났던 것이다." (<일론 머스크 : 미래의 설계자> 중)
항공우주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던 일론 머스크가 어떻게 SpaceX를 창업하고 나사(NASA)도 해내지 못하던 우주탐사에서의 혁신을 이루어냈냐는 질문 앞에 평전을 쓴 저자는 그것이 ‘최고의 인재들이 가진 갈망과 그 갈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여건, 그리고 그것들이 만나는 자리의 비전’으로 인함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주 탐사에 대한 꿈을 품은 채 항공공학과에 진학했던 인재들과 진짜 우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업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의 만남이었을겁니다.
일론 머스크만큼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라는 꿈을 가지고 있는 연구자들과 활동가, 미디어 종사자들이 이러한 목표를 위해 정진하는 사업과 생태계를 만날 수 있다면, 동시에 이러한 기획과 기획을 실현할만한 인재들이 모여있는 곳에 사회문제의 해결과 사회의 진보를 위해 기꺼이 자원을 투입할 시민들이 만날 수 있다면 저는 SpaceX가 만들어내었던 민간우주비행선 이상의 혁신과 진보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6. 여전히 연구자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 아직 글과 생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 내용들을 향후 10년에서 20년 이상 삶을 걸어서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그러기에 앞서 첫 걸음으로 내딛는 사회문제지도와 연구협업플랫폼에 대한 준비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함께 할 동료와 뜻이 맞는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더 많이 배워야 하고 더 많이 학습해야 합니다. 또한 더 많이 협업해야 하고 더 많이 시도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긴 글을 읽어주셨다면 아래 주소로 연락 한번 주시면 식사라도 하면서 함께 하시는 일들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분들을 뵈면서 이야기를 꾸려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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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우리나라 주류 지식인들이 그런 짓 안하죠. 구한말에도 그랬어요. 서양 문명이 물밀 듯이 밀려와 나라가 절체절명의 혼란과 위기에 처했는데, 누구도 치열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사람은 없었어요. 도무지 책을 쓰지 않아요. 구한말에 서양에 대해 스스로 연구하고 분석한 책이 있습니까? 그리고 조선의 현재를 비판하고 미래를 이론적으로 전망한 책이 있습니까? 일본에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있었고, 중국에는 캉유웨이 량치차오를 비롯해 기라성 같은 지식인들이 책을 썼지요. 그런데 우리는 없어요. 19세기 말에도 꽤 많이들 유학 갔어요. 윤치호 같은 사람 미국 유학 가서 감상적인 일기나 썼지 서양을 분석하고 조선의 미래를 제시한 글 같은 건 쓸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고작해야 유길준의 <서유견문> 정도인데, 아무런 절박함도 감동도, 아니 재미조차 없는 한가한 구경꾼의 정말 진부한 기행문이에요. 그러니 나라가 망하지 않고 배기겠어요? 그런 나라에서 예나 지금이나 민중들은 목숨을 걸고 봉기하는데, 지식인들은 나라를 새롭게 형성할 이론적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아요. 모든 문제가 거기서 생깁니다. 나라를 어떻게 하자는 걸 두고 토론과 논쟁이 없으니까 혼란한 세상에 권력투쟁만 남는 거예요. 권력을 잡아도 무얼 어떻게 고치겠다는 전망도 없는 자들이."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썩었더라도 진리의 씨앗은 어딘가에는 숨어 자라고 있는 법이에요. 지금도 자기의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때가 되면 그들이 세상을 바꿀 거예요. 그것이 전태일부터 윤상원 그리고 백남기 선생님까지 이 절망적인 나라에 태어나 불의와 싸우면서 약자의 고통에 자기의 전 존재를 걸고 응답했던 모든 분들로부터 제가 얻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에요.” (김상봉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