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정서의 맛
흑백요리사1과 2를 비교하자면, 나에겐 1이 더 재미있었다. 흑백요리사 2는 'all or nothing'이라는 노잼 규칙과 7명만 남기는 생존 후보/탈락 후보 규칙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한 팀만 빼고 다시 재대결을 해야 하는 무의미한 반복 대결(생존 후보가 된 의미는 뭐죠?)도 진행했다. 재생속도 1로 보기가 힘들어 1.25나 1.5로 봐야 했는데 나는 내 귀의 성능이 그렇게 뛰어난 줄 몰랐다. 1.5로 들어도 이렇게 잘 들리다니. 그만큼 호흡이 느리고 집중해서 볼만한 매력적인 장면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 본 건 끝까지 봐야 하기에 이미 결승전 진출이 스포가 된 요리괴물 이하성과 최강록의 대결이 기대되긴 했다. 요리괴물 이하성은 한국 사회에서 환영받기 어려운 T자형 일잘러인데, 인간적으로도 매력적인 부분이 있겠지만 이런 유형이 워낙 '일을 잘 하는 게 우선이야.'가 강하다 보니 자기 기준에 부족한 사람을 만났을 때 본인이 반감을 가지는 부분이 높고, 또 그러한 마인드가 태도나 말로 표현이 되니, 1인자인 후덕죽처럼 '허허허, 자네 하고 싶은대로 하게'라며 겸손핑이 되어야만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는(겸손이 미덕인) 한국에서는 밉상으로 찍히기 딱 좋다.
그래서 흑백요리사2를 통해 인기가 상한가를 치솟고 있는 손종원 요리사를 보면 능력과 젠틀함(+비주얼)의 2가지를 모두 갖췄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데, 솔직히 요리괴물 이하성의 얼굴이 좀 부드럽게 생겼어도 그렇게 까지 사람들이 '건방지다'고 배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요리대결이 재미있고 참가자들의 면모를 보는 재미보다 어쨌든 어떤 요리를 선보일까가 굉장한 재미 요소인데 그걸 선사해준 참가자를 단 한 명 꼽으라면 난 요리괴물 이하성을 뽑을 것 같다. 그는 어쨌든 아이디어도 좋고, 그걸 구현하는 능력도 좋다. 다만, T의 성향으로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가 닿지 못할 뿐.
그래서 마지막 우승 주제 '나를 위한 요리'는 어쩌면 한국에서 계속 요리해 온 최강록에게 유리한 주제가 아니었을까 한다. 우승 주제를 참 잘 정한 것이 요즘 한국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코로나 그리고 계엄. 자영업은 회복이 안 되고 특별히 신나는 일도 없다.(국무회의 빼고) 그리고 얼마 전 드라마 '서울 자가, 김부장'을 필두로 열심히 일 해온 4,50대를 위한 찬가의 열기가 아직은 조금 남아 있는 와중에 흑백요리사 2에 이런 주제가 올라온 것이다. 난 이마를 탁 쳤다. 오... 제작진... 인문학적 관점, 나이스! 당연히 요리사들은 남을 위한 요리만 해왔을 뿐, 자신을 위한 요리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고, 흑백요리사2는 드디어?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다.
20대부터 일찍이 외국에 나가 혼자 생활하면서 한국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겠지만, 요리괴물 이하성은 갬성에 빠지는 건 용납하지 못한다. 아직 최고가 되지 못한, 최고를 향해 달리는 요리사가 아니던가. 그래서 생각했을 것이다. 나를 위한 요리? 그렇게 찾아낸 것이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먹던 순대국이고,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찾게 된 음식이라고. 자기 나름대로 순대국을 재해석해서 내놓았고 순대국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엄청 신기하게 봤다. 허나 나를 위한 요리임에도 심사위원과 함께 식사 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만든 순대국을 거의 먹지 않았고, 긴장해서 먹지 않았다고는 했지만 글쎄- 제작진 입장에서 '나를 위한 요리'라는 주제에 부합하는 장면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왜 먹지를 못하냐고!!'
하지만, 최강록은 달랐다. 조림핑, 연쇄 조림마 등으로 불리우며 마쉐코2(2013년 - 12년이나 지났음에도)에서 우승한 뒤로도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그는 '나를 위한 요리'로 조림을 택하지 않았다. (이미 거기에서 스토리의 무게가 기울기 시작) 여러가지 재료와 함께 깨두부 국물요리를 선보였는데 20분 넘게 치대서 만들어야 하는 깨두부에 '게을러지지 말자'라는 소신과 철학을 담고, 대한민국 일하는 사람들에게 술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소주를 화룡점정으로 곁들이면서 '나를 위한 요리'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요리'를 선보였다. 그게 특히 더 빛났던 것은 심사위원의 소주잔에 소주를 따라 함께 짠을 하고 마신 것이다. (아마 요리괴물 이하성은 이 장면에서 '졌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한다)
요리를 잘한다는 건 요리사에게 기본이다. 하지만 경쟁 리얼리티 쇼에서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건 뛰어난 누군가의 우승이기도 하지만, 그 우승자가 가진 심성과 철학, 정서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자영업자로, 요리사로, 조림핑으로 일하며 가졌던 고뇌를 하나의 음식으로 설명했고, 그 설명에 심사위원 뿐 아니라 흑백 요리사2를 보는 시청자까지도 감명을 받았다. 요리사가 아니어도 누구나 몰입했던 일에 대한 경험이 있고, 실패가 있고,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척의 과정도 있다. 그러한 솔직함이 '잘났음을 시전한' 요리괴물 이하성에겐 없었다. (솔직히 잘난 사람들은 자신의 약함을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게 마이너스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짜 '약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그래서 최강록을 보면서 인기많은 아싸의 공통점을 떠올렸다. 기안84가 대표적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인다. 재능있지, 돈 있지, 프로그램 많이 하지.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이나, 관계 맺음을 보면 정서적으로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된다. 사람들이 원하는 지점이다. 최강록도 마찬가지다. 진짜 잘났을 지언정, 어수룩함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어수룩함은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웃음을 준다. 요리괴물 이하성의 음식을 먹으면서 심사위원은 맛있다고 했지만, 웃음은 적었다. 최강록의 음식에서는 물론 안성재의 '연쇄 살인마'가 하드 캐리하긴 했지만, 셋 다 즐거워 보였다. 즐거움과 함께 할 때 요리는 더 맛있어진다. (어떤 진수성찬도 싫어하는 사람과 먹기는 어렵다)
요리괴물 이하성은 20대부터 쭈욱 외국 생활을 한 듯 보이고, 88년생이다. 최강록은 한국에서 음식점을 해왔고, 78년생이다. 이미 그 둘의 나이차는 10년이나 된다. 요리 실력으로 나이차를 따지는 것은 무색하지만, 정서의 밀도를 따지는 것에는 환경과 경험을 무시하지 못한다. 아마 그래서 최강록의 소주에 많은 요리사들이 공감하고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요리사들과 자영업자들의 고생을 표현한 한 마디. '노동주'! 난 요리 솜씨에서 둘의 격차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음식의 맛은 둘 다 베스트였겠지만, 여기서의 관점은 '인문학'에 있다. 요리에 담은 인생. 여기에서 78년생인 최강록을 88년생인 이하성이 이기긴 어렵지 않았을까.(게다 그는 T가 강한 인간이 아니던가) 참 신기하게도 그처럼 요리 잘하는데 화제성이 떨어지는 인물도 없다.(한국인들 참, 정나미 떨어지는 인간을 싫어해요. 물론 나도 그렇지만)
그럼에도 곧 오픈 예정인 이하성의 가게는 꽤 잘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그는 정말 더 높은 점수를 위해 최고의 자리를 위해 계속 도전할 것이다. 최강록같은 사람이 정서적으로 사람들에게 휴머니즘을 선사한다면, 이하성같은 사람은 실력으로 한국의 위상(이런 것도 좀 촌스러운 생각인가? ㅋㅋ)을 전세계에 알릴 것이다. 잘난 사람이 외로운 이유는 그 사람이 잘나서라기보다는 '나 잘났어'라고 드러냄으로 인해 상대방이 (못남에 대한) 격차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리괴물 이하성은 요리를 꽤 잘 한 것이 맞고, 그 정도의 자부심은 아직 최고가 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채찍질로 인정해주면 좋겠다.(사자는 울부지지 않듯이, 후덕죽이 포효하지 않듯이) 그래서 최강록이 우승한 것은 굳이 심사위원이지 않아도 예측가능한 결과였으며, 요리괴물 이하성의 탈락도 음식 탓(어떤 음식도 소주를 이기긴 어려웠을 듯)은 아님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