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안테바신 Oct 14. 2021

전원주택에 살기 전엔 미처 몰랐던 것들



낯설기만 한 시골에서의 생활을 부드럽게 시작할 수 있었던 데는 시부모님의 도움이 컸다. 이사 온 첫 주에 아버님은 나와 아이를 데리고 동네 구경을 시켜 주셨다. 동네 구경이라는 명목 하에 간 곳은 우체국, 읍사무소(앞에서 말했듯이 동사무소가 아니고 읍사무소다), 그리고 근처에서 열리는 5일장이었다. 사실 5일장은 동네 구경이 아니라 나들이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었으니 동네 구경은 우체국과 읍사무소가 끝이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두 건물을 오가며 동네 구경은 10분 만에 싱겁게 끝났다. 나는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지 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혹시 재래시장 같은 건 없는지 물었다. 아버님은 있다고 하셨다.



날짜에 맞춰서 찾은 5일장은 예전 전라도 여행길들렀던 5일장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장보다 인상 깊었던 건 시장 초입에 있던 다방이었다. 콩나물과 파, 고추와 호박만 보다가 지겨워진 아이가 목이 마르다고 해서 주변을 찾다가 발견한 곳이었다. 물을 사고 싶었지만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었다. 마치 시간이 70년대에 멈춘 듯한 그곳에서 다행히 'OO다방'이라는 간판을 발견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계단을 밟고 지하로 내려갔다. 문을 여는 순간 뿜어져 나온 어둡고 음습한 기운에 당장 돌아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가 목이 너무 마르다고 해서 용기를 내어 들어갔다.



50년은 된 듯한 구식 소파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다 헤져서 원래 무늬와 색깔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놀랍게도 손님이 몇 테이블 있었다. 손님들은 젊은 엄마와 어린 아이가 들어오자 무슨 구경이라도 난 듯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언제라도 튈 수 있게 입구 바로 옆 자리에 엉거주춤 자리를 잡고 아무 음료수를 하나 시켰다. 아이는 설탕맛과 별로 구별이 되지 않는 정체 모를 물을 꿀떡꿀떡 마셨다. 나도 목이 탔지만 빨리 나가고 싶어서 아이만 먹이고 얼른 일어났다.




범죄의 소굴에서 빠져나오듯 한 다방의 기억과는 달리 나는 시골에 살면서 그 5일장을 무척 자주 찾았다. 갈 때마다 흥미진진했다. 서울에 즐비한 대형 마트나 백화점과는 다른 찐한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거기 가면 숨이 쉬어졌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에겐 그런 게 필요했던 것 같다. 사람 사는 냄새. 차가운 병원의 하얀 벽 안에 갇혀서 약병에 둘러싸인 채 질식할 것만 같았던 내게 5일장은 산소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장 볼 일이 생기면 굳이 버스로 다섯 정거장 이상 가야만 하는 그곳으로 종종 갔다.




갈 때는 꼭 아이를 데리고 갔다. 병원에 갇혀 지내느라 세상 구경할 기회가 별로 없던 아이에게 그곳의 활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면역력이 떨어진 아이의 옷을 단단히 입히고 마스크를 씌우고 데려갔다.(지금은 코로나로 마스크가 당연해졌지만 그때는 마스크 쓴 사람은 내 아이뿐이었다) 5일장에서 아이와 나는 천 원에 두 개인 큼지막한 찹쌀 도너츠를 냠냠 먹으면서 채소, 과일, 닭 부속품, 생선, 바가지, 속옷, 유행 지난 캐릭터 옷 등을 구경했다. 집으로 돌아올 땐 인심 좋은 아주머니들이 기운 내라고 - 아이의 외모는 누가 봐도 환자였다 - 챙겨준 김, 고추, 가지, 콩나물, 떡들로 가방이 늘 두둑했다. 고마우면서도 슬픈 선물들을 이고 돌아오는 길이 쓸쓸했지만 그래도 시장 나들이는 새로울 것 없는 시골살이의 몇 안 되는 낙이었다.


 

이렇게 집 밖에서 가뭄에 콩 나듯 얼마간의 즐길 거리를 찾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냈기 때문에 시골살이의 성패는 집에 정을 붙이는 데 달려 있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끝까지 그 집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것은 전원주택에 대한 나의 무지에서 비롯됐다.



아버님이 공들여 가꾸신 전원주택은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짐 옮기는 몇 시간 내내 감탄해 마지 않았을 정도로 한 폭의 그림 같다. 가곡 '향수'에 나오는 푸근한 고향집처럼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비주얼이다. 어디 하나 아버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극도로 정성스러운 집이다. 그래서 가끔 드나들기만 했을 땐 그 아름다운 집 안에서 매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상조차 못했다.



전원주택은 벌레의 온상이었다. '포비아'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벌레만 보면 발작을 하는 나는 이사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부터 지옥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시댁엔 다락방이 있었는데 다락방에서 풍뎅이처럼 생긴 벌레가 매일 출몰했다. 아버님은 소나무 안에 기생하고 있던 벌레라서 인체에 전혀 해롭지 않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인체에 해롭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인체에 해롭지 않은 환경을 찾아서 갔으니 인체에 해롭지 않은 벌레여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고, 인체에 해롭지 않아도 외모가 징그러운 건 어떻게 해결이 안 됐다. 집 안 전체를 둘러싼 소나무는 무려 캐나다에서 들여온 나무라서 그 벌레도 외국산인 셈이었다. 아무도 이름을 몰랐다. 그래서 내가 '다락방 벌레'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다락방 벌레는 떼거지로 몰려 나왔다. 하필이면 다락방이 우리 방 위에 위치한 관계로 내가 직격탄을 맞았다. 방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으면 툭, 툭, 소리와 함께 위에서 '벌레비'가 내렸다. 천만다행히 그 벌레의 생김새는 봐줄만했다. 심지어 내가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어떤 날은 하루에 백 마리가 넘게 나왔다. 어머니가 대야를 가져오셔서 벌레를 거기 쓸어 담을 정도였다. 대대적인 부화기인지 한동안은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 집안을 점령했다. 이 집의 주인이 사람인지 다락방 벌레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용케도 뛰쳐 나오지 않고 버틴 내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약을 좀 치자고 말씀드렸지만 건강에 안 좋은 화학 물질을 혐오하시는 아버님 때문에 약도 뿌릴 수 없었다. 우리가 쓴 방법은 오직 하나, 나오는 족족 잡는다 였다.



그래도 모습이 평범한 편인 다락방 벌레는 양반이었다. 진짜 강적은 내가 그집에 산 지 한 달 정도 후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돈벌레였다.



돈벌레라는 단어를 키보드로 두드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소름이 쫙 끼친다. 돈벌레는 극혐 오브 극혐이었다. 돈벌레는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운 어느 날 밤 처음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아이를 재우고 불을 끄고 누워서 오랫만에 TV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뒤쪽 벽지에서 슥슥 소리가 나는 기분이었다. 또 다락방 벌레가 내려왔나 싶어서 아무 생각 없이 돌아본 순간,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지네처럼 생긴 시커멓고 긴 벌레가 내 뒤통수 바로 뒤쪽에 붙어 있었다.



얼른 불을 켰다. 대충 세어도 다리가 족히 백 개는 달린 것 같았다. 그런데 불을 켜자 눈 깜짝할 사이에 돈벌레가 튀었다. 발이 많아서인지 속도가 LTE급이었다. 벌레는 눈에 보일 때가 그나마 낫다. 보였던 벌레가 자취를 감추면 그때부터는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돈벌레는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하면서 내 몸의 신경을 전부 곤두세워 놓더니 갑자기 방바닥에 풀로 붙여 놓은 것처럼 멈췄다. 우리 집에서 나 빼고 나머지는(심지어 아이까지) 벌레를 잘 잡는데 아이는 잠들었고 시부모님은 일찌감치 옆방으로 건너가셨고 남편은 그날따라 약속이 있어서 귀가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롯이 내가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벌레를 가두기로 결심했다. 마침 손이 닿는 곳에 있었던 스텐 그릇을 전광석화처럼 돈벌레 위에 덮었다. 그 상태로 남편을 기다렸다. 돈벌레 잡아야 하니까 빨리 들어오라고 5분에 한 번씩 카톡을 보낸 끝에 돈벌레를 가둔 지 2시간 만에 남편이 들어왔다. 술이 꽤 취한 상태였는데도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돈벌레를 잡는 남편이 연애할 때 이후 처음으로 멋있어 보였다.





한 마리로 끝났으면 좋았을 걸. 돈벌레는 그날 이후 '우리 오늘부터 1일'이라고 약속이나 한 듯 매일 날 만나러 왔다. 낮에 안 보여서 이제 없나 보다 하고 안심하면 밤에 꼭 어디선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일부러 날 놀리는 것 같았다. 길이도 점점 다양해졌다. 검색조차 해보기 싫어서 버티다가 박멸 방법이 없을까 네이버를 뒤져보던 나는 누군가 올린 글을 읽고 절망했다. 돈벌레가 크기별로 나오기 시작하면 새끼를 깠다는 뜻이니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거라는 것이었다.



그 사람 말이 맞았다. 돈벌레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자주 나왔다. 결국 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 문제를 안건으로 상정했다. 하지만 내가 진짜 절망한 건 바로 이 지점이었다. 나 이외에 아무도 돈벌레의 존재에 예민하지 않았다. 시부모님은 다락방 벌레의 습격 때 '잡으면 되지'라고 하시던 그 말투 그대로 돈벌레도 '잡으면 되지'로 일관하셨다. 내가 돈벌레가 매일 나오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걸 이해 못하듯, 시부모님도 그까짓 벌레 갖고 오두방정인 나를 이해 못 하셨다.



그까짓 벌레 때문에 나는 정신병에 걸릴 상태가 됐다. 불만 끄면 서걱서걱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잠 못 드는 밤들이 이어졌다. 간신히 잠들었다가도 식은땀을 흘리며 깨기를 반복했다. 나의 반응은 절대 오버가 아니었다. 어떤 날은 남편 등 뒤에 눌려서 죽은 돈벌레의 시체가 채찍처럼 붙어 있었고, 어떤 날은 아이의 다리 옆에 아이 종아리 길이만한 돈벌레가 같이 누워 있기도 했다. 그림 같았던 전원주택은 순식간에 벌레 감옥이 됐다.



그 와중에 다행이었던 건 아이가 돈벌레에 나만큼 민감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치료 받느라 고생하는 아이에게 다른 스트레스는 조금도 주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아이가 진저리를 쳤으면 당장 거기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나보다 의연했다. 진짜 싫게 생기긴 했지만 잡으면 되지 않겠냐는 주의였다. 씩씩하게 병마와 싸우는 아이의 마음을 안정시켜줘도 모자랄 판에 벌레 때문에 호들갑 떨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더욱 괴로웠다. 손가락보다 긴 돈벌레가 매일 내 잠자리와 일상의 공간을 침범하는 집에서 나는 도저히 살 수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겨내야 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시골로 내려온 건지를 매 순간 스스로에게 상기하며 버텨냈다. 당시의 내가 얼마나 돈벌레에 학을 뗐는지 하루는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원래도 내 얘기를 잘 안 하는 성격이지만 아이가 아프고 시골로 내려온 후로는 더욱더 내 이야기를 숨겼다. 어떤 평범한 일상을 말해도 부모님이 마음 아파하실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벌레가 눌러놓은 내 감정을 폭발시켰다. 시부모님이 외출하신 어느 오전, 나는 엄마에게 전화해서 돈벌레 때문에 살기 싫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통곡했다. 내가 왜 이런 걸 참으면서 여기서 살아야 하냐고,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거냐고.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성을 잃었었다. 그날 저녁 1년에 한 번도 직접 전화를 하지 않던 아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빠가 어릴 때 살던 한옥집에서도 그 벌레가 자주 나왔었는데 이름이 '그리마'라고. 그리마라는 예쁜 이름이 있는지 몰랐다. 사람들이 그 벌레가 하도 징그러우니까 돈을 갖다 주는 벌레라고 억지로 좋은 의미를 갖다 붙여서 돈벌레라고 부르게 된 거라고. 아빠는 방 안에 빗자루를 놔두고 그리마가 나오면 쓸어서 마당으로 내보냈다면서 나름의 비기까지 전수했다. 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중학교 시절 이야기까지 꺼내면서 돈벌레 퇴치법을 말하는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다.



나는 애당초 나를 그집으로 보낸 몹쓸 병을 저주했다. 돈벌레는 내게 그 병과 같은 존재였다. 나의 노력이나 의지로는 막을 수 없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것들. 그래도 나는 그집에서 나가지 않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돈벌레가 나오면 어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쌍욕을 하면서 잡았, 아니 도망쳤다.(끝까지 잡지는 못했다) . 여기 온 목적만 생각했다. 그렇게 하니 죽을 것 같았지만 죽진 않았다.



우연히 성북동 단독 주택에 사는 지인과 돈벌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고급 주택가로 유명한 그곳에서도 돈벌레가 가끔 나온다고 했다. 땅에 붙어 있는 집은 어쩔 수 없다는 아버님의 설명이 틀린 건 아니었구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럼 한남동 회장님 단독 주택에도 돈벌레가 나온단 말이야? 라는 비뚤어진 의문이 들기도 했다. 거긴 돈벌레만 잡는 전문 집사가 있겠지. 나는 남편을 돈벌레 전문 킬러로 고용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돈벌레와의 공존에 적응해 갔다.










 



이전 03화 '시집살이' 아니고 '시골살이'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강남 엄마 시골에서 아이 키우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