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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테바신 Oct 11. 2021

시골의 정의



나는 시골에 산다. 얼마 전 문득 이곳으로 이사 온 지 거의 10년이 다 됐다는 걸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세 군데서 살아봤는데 어느덧 이 시골이 내가 가장 오래 산 동네가 됐다. 그 전에 살던 곳은 이제 기억이 희미해진 부분이 더 많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나는 전형적인 아스팔트 키드였다. 사방이 높은 건물과 아파트로 둘러싸인 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학교 다니고 어른이 됐다. 친가와 외가 모두 차로 20분 거리인 서울이라서 달리 찾아갈 시골도 없었다. 자라면서 접했던 자연이라고는 그저 아파트 화단의 꽃이나 가끔 놀이터에 출몰하는 개미떼,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소풍날의 야외 잔디밭이 전부였다.



그런 내가 정작 어른이 된 지금 시골에서 살고 있다. 이곳을 시골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남편은 거부감이 있다. 싫어서가 아니라 공감을 못한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나름 시골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남편이 생각하는 시골은 주변이 다 논밭이어야 하고, 눈 닿는 곳에 아파트 단지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어야 하고, 집 근처 개울가에서 도랑 치고 가재 정도는 잡아줘야 하는 곳이다.



그 논리대로라면 여기를 시골이라고 하는 건 어폐가 있긴 하다. 수도권이기 때문이다. 주변은 전부 아파트고 카페도 곳곳에 있고 없는 거 빼고는 다 있다.



하지만 나는 처음 이사온 날부터 지금까지 사는 내내 이곳이 시골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기인한 것 같다. 나는 소위 말하는 강남 8학군 출신이다. 집 앞은 서울 시내 각 지역으로 가는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였고, 발에 채이는 게 음식점, 편의점, 고층 빌딩, 병원, 은행, 학원 등등 이었으며, 거리에선 꼭두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차량의 흐름이 끊이지 않는 동네였다. 그런 곳에서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았다.



이곳에 처음 이사 온 날, 오래 전 우연히 들렀었던 시골 기차역이 떠올랐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찾아간 어느 시골 간이역이었는데 거기 내렸을 때 느꼈던 기분과 비슷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고, 지나치게 휑하고, 차가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할 것 같은 거리가 눈 앞에 있었다. 기차역 앞 밥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김치찌개를 먹었었는데 그렇게 흔한 음식이 그토록 낯선 맛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곳도 그랬다. 흔한 사람 사는 동네임은 분명한데 내게는 마치 화성에 온 것처럼 낯설었다.



예전에 친한 동생을 집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밖에서 만나서 함께 우리 동네로 왔는데 그녀가 우리 집 앞 사거리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언니! 나 여기 너무 정겨워요. 예전에 우리 학교 정문 앞이 딱 이랬거든요."



그녀는 늘 자기가 주변에 경운기만 다니는 시골 구석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고 말했었다. 그때 거리에 경운기만 한 대 지나가줬으면 그녀는 추억에 빠져 눈물을 흘릴 뻔했다.



언젠가 아이에게 시골이 뭔지 아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무 많고 집 낡은 곳."



천연덕스러운 아이의 대답에 푹 웃었지만 시골의 특징을 꽤나 정확히 담았다는 데는 동의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시골을 검색하면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 주로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고 인공적인 개발이 덜 돼 자연을 접하기가 쉬운 곳'이라고 나와 있다.



이곳은 사전적 정의에 거의 들어맞는다. 서울에서 떨어져 있고, 서울보다 인구수가 적으며, 아파트 뒷편으로 자그마한 뒷동산이 있다. 땅값 비싼 서울에 비해 단지가 널찍해서 녹지가 잘 조성돼 있다. 그러니까 내가 잘못 생각한 건 아니다. 여기는 시골이 맞긴 하다.



내가 여기를 시골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이것 말고도 여러가지가 있다. 나는 살면서 지하철이 안 들어오는 지역에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하철이 없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가려면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을 가야 했다. 내과도 하나, 약국도 하나, 정육점도 하나, 은행도 하나, 분식집도 하나, 편의점도 하나, 반찬가게도 하나......이런 식이었다. 하나씩 있는 건 그나마 축복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없었다. 서점, 백화점, 영화관, 병원들, 은행들, 학원,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들, 유명 빵집들, 높은 건물들, 학교들......



무엇보다 놀란 건 전입 신고를 하러 가서였다. 간판에 '읍사무소'라고 적혀 있었다. 동사무소를 찾던 나는 거기가 내가 찾던 그곳이라는 걸 알고 좀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거기서 처음 확인한 우리집의 전체 주소는 'OO읍 OO리'였다. 그 순간 나는 이 단어가 떠올랐다.


 

"촌"



표준국어대사전 '시골' 옆에 유의어로 적혀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 주소를 받아든 순간, 나는 내가 공식적으로 촌사람이 됐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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