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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EGG 안티에그 Nov 15. 2021

게임도
예술일까

문화예술 범주에 게임을 포함해도 될까 '게임예술론'을 둘러싼 담론


Edited by 주현우


"백날 게임해봐라 동전 한 푼 나오나!"


온라인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부모님, 담임선생님 혹은 게임의 즐거움을 모르는 친구들로부터. 물론 게임에서 엄청난 두각을 나타내며 직장인들 못지않은 수입을 올리는 프로게이머도 있지만, 대다수의 게임 애호가들이 '동전 한 푼' 못 버는 건 사실이다. 이 때문인지 게임은 늘 천대를 받아왔으며, 게임이 수많은 사람이 향유하는 대중문화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오늘날에도 부정적 인식은 이전과 비슷한 수준을 답보하고 있다.


대중의 인식은 정부가 내놓는 법안이나 제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가령 이전 정부에서 게임을 술·도박·마약과 묶어 4대 중독으로 규정하고 셧다운제 등의 규제를 쏟아낸 탓에 게임 산업이 위축된 걸 예로 들 수 있다. 게임에 반친화적인 정책 기조가 오랜 시간 지속되며 게임은 작게는 인생을 망치는 시간 낭비라는 인식이, 크게는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악성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화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때 게임 강국을 자부했던 한국의 세계 게임시장 점유율이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왔다.


이미지 출처: pixabay, @superanton


최근 게임을 하나의 문화로, 더 나아가 예술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5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게임 산업 육성, 규제 완화 등을 골자로 한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해당 종합계획에서 문체부는 '서사구조, 예술적 영상 및 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종합예술'로서 게임의 지위를 격상했다. 이미 미국, 일본 등의 해외 국가에서 게임을 예술로 인정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면서다. 올해는 문화예술진흥법(문진법)에 게임을 포함하자는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지만, 그동안 게임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봐 온 한국 사회에 변화의 신호탄이 울려퍼졌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논의들 이면에는 '게임을 예술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이 존재한다. 물론, 어느 독창적인 예술가가 변기를 전시장 안에 들인 뒤로 전방위적으로 예술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현행 제도권 속에서 정식으로 인정받고 혜택을 누리려면 '만물예술론'에만 기댈 순 없는 노릇이다. 기존에 예술이라고 인정돼 온 장르들로부터, 동시에 예술에 포함되지 않는 장르들로부터 구별되는 게임만의 고유한 특성은 무엇인가. 이 글에서는 선행된 논의들과 관련 논문을 참조해 과연 게임이 예술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가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려보려 한다.



문화예술이 대체 뭔데?


게임을 문화예술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선 문화예술의 범주가 어떻게 나뉘는지를 알아보자. 알다시피 문화예술의 정의는 사람마다 학자마다 모두 다르다. 따라서 차선책은, 이전부터 문화예술로 인정받아온 장르들에서 어떠한 공통점을 뽑아내는 방법이다. 기성 장르들의 공통점과 게임의 특성이 많은 교집합을 갖는다면 게임을 문화예술로 받아들이는 데 큰 무리가 없을 테다. 문진법이 정의하는 문화예술의 범주는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 국악, 사진, 건축, 어문, 출판, 만화 등 13가지다. 사십 년 전 문진법이 처음 제정될 당시에는 5개 항목에 불과했지만, 이후 하나둘 장르가 추가되며 현재의 범주를 갖게 됐다.


나열한 문화예술 장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참여하는 주체가 창작자와 소비자로 구분된다는 점, 소비자의 경험이 창작자에 의해 제한된다는 점, 작품과 감상자 간의 소통이 일방향이라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게임은 이러한 특성을 얼마나 많이 공유하고 있을까? 우선 게임의 참여 주체도 게임을 만든 제작자와 게임을 플레이하는 소비자(유저)로 나뉜다. 또한 유저의 경험 역시 제작자의 설계에 의해 제한된다. 하지만 유저의 경험이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즉각적인 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게임은 다른 문화예술 장르와 구분된다. 이 점을 인지한 듯 문체부는 종합계획에서 게임을 "전통적 예술 장르에 부족한 '상호작용성(게임사용자의 플레이)'의 요소가 가미된 새로운 문화예술 영역"이라 정의했다. 즉 전과는 결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새로운 문화예술 영역으로 받아들이자는 말이다. 그 뒤에는 미국과 일본 등 해외 국가에서 게임이 예술로 인정된 사례들을 나열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Alexas_Fotos


하지만 남들이 한다고 해서 다 옳은 것은 아니며, 새로움을 받아들이자는 구호로 쉽게 받아넘길 문제도 아니다. 탄탄한 논리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문진법에 게임을 포함시키려 한 법안은 이번에도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국회 안팎을 계류하다 사장되고 말 것이다. 앞서 문체부는 종합계획에서 게임을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종합예술'로 정의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제 '종합예술을 독립된 새로운 예술 장르로 인정할 수 있는가'를 물을 차례다.



한데 버무린다고 새로운 게 나오나


흔히 게임을 예술이라고 자신 있게 단언하는 사람들은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 이를테면 뛰어난 영상미와 웅장한 음악이 모두 예술에 속하므로 게임 역시 예술일 수밖에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펼친다. 즉 게임이 각종 예술 장르를 한데 모은 종합예술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종합예술이 구성물로부터 독립된 새로운 장르로 인정받을 수 있냐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이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만약 종합예술이 문진법에 포함될 경우 진흥자금의 중복지원이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우려를 배제하더라도, 게임이 종합예술이라는 전제 자체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종합예술은 음악, 회화,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예술을 혼합해 창조하는 하나의 통일적인 예술을 뜻한다. 통일적이라는 말은 구성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말이다. 가령 무용, 음악을 결합한 연극과 영상, 음악을 결합한 영화 등을 종합예술로 간주한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영상도 있고, 음악도 있고, 서사도 있지만, 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새로운 예술 장르를 형성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거의 모든 상업 게임은 각자의 세계관과 서사를 갖고 있으며, 이를 문학(게임 판타지)이나 영화(시네마틱)의 형태로 유저들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이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게임 외적인 요소다. 다시 말해 게임과는 별개인 '콘텐츠 속 콘텐츠'라는 것이다. 필자는 요즘도 '오버워치'라는 게임을 즐긴다. 오버워치 세계관에서 '아나'는 '파라'의 어머니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 이러한 사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파라의 로켓포로 아나를 쏴 죽이는 데 일말의 가책도 들지 않는다. 이는 필자가 사이코패스여서가 아니라, 둘이 게임을 구성하는 별개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게임이 종합예술이 아니라는 사실은 게임업계 내부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지난 7일 리그오브레전드(롤)의 제작사인 라이엇게임즈는 넷플릭스와 협업해 롤 세계관 기반 애니메이션을 출시하기도 했다. 라이엇게임즈 관계자는 "게임 속 내용을 또 다른 영역으로 내놓는 IP(Intellectual Property; 지적재산권)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이 다른 장르의 소재가 될 순 있지만, 다른 장르를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장르는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 @AndrzejRembowski


영상미와 서사에 큰 비중을 두는 독립(인디)게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게임학 용어 중에 '루도내러티브 부조화'라는 단어가 있다. 루도내러티브 부조화는 게임 내 스토리를 통해 전달되는 내러티브와 게임 플레이를 통해 전달되는 내러티브가 충돌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플레이의 자유도가 높은 게임일수록 제작자가 의도한 서사와 실제 플레이가 엇나갈 확률이 커진다. 그렇게 됐을 때 과연 게임 속 영화나 서사가 플레이 자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한데 버무린다고 반드시 새로운 게 나오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한 장르에 다른 예술 장르를 첨가한다 해서 종합예술이 되는 건 아니다.



놀이로서의 게임, 놀이로서의 예술


한층 더 깊은 차원에서, 이론적인 논의들도 이어지는 중이다. 어떤 이들은 '놀이'라는 중간매개를 이용해 게임과 예술의 융합을 시도한다. 이때 반드시 등장하는 개념이 네덜란드 역사가 요한 하위장아가 정리한 '놀이' 개념이다.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①놀이는 자유로운 행위이며 자유 그 자체다. ②놀이는 '일상' 생활과는 뚜렷하게 구분된 행위다. ③놀이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④놀이는 질서를 창조하고 그다음에는 스스로 하나의 질서가 된다. ⑤놀이는 그 자체로 만족감을 얻는 일시적 행위다. 하위징아는 위와 같은 속성을 토대로 시, 음악 등의 시간예술이 일종의 놀이임을 논증했다. 게임도 문제없이 위 기준에 부합하는 듯하다. 게임도 제작자가 정한 규칙 안에서 자유로우며, 일상과는 단절된 공간에서 벌어지며, 자체로 만족을 얻는 일시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론적 층위에서 게임은 예술에 포함될 만한 '자격' 갖춘 걸까?


이미지 출처: pixabay, @cp17


문제는 놀이 개념이 너무 느슨하다는 데 있다. 『호모루덴스』의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다. 언어, 법률, 경기, 전쟁 등 놀이가 아닌 영역을 찾는 게 더 빠르다. 이들이 모두 '놀이'에 속한다 해서 각각의 항목들이 서로 같아지는 건 아니다. 게임과 예술도 마찬가지다. 놀이라는 속성을 공유할 뿐, 둘을 같다고 보는 건 커다란 비약이다. 게임은 승리, 임무 완수 등 분명한 목적을 갖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스포츠에 가깝다. 'E-sports'라는 단어도 게임이 일종의 스포츠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게임, 스로츠와 같은 놀이의 즐거움은 긴장에서 오며, 긴장은 경쟁 또는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온다. 반면 예술을 심미적 쾌감이라는 다른 목적을 갖는다. 두 장르의 목적은 분명하게 구분된다. 게임학을 전공한 노르웨이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라라 크로프트(툼 레이더 시리즈의 여주인공)의 몸매는 플레이어인 내게는 관계가 없는 요소다. 왜냐하면 몸이 다르게 보인다 해서 내가 다르게 플레이하게 되진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게임은 유희적 차원을, 예술은 심미적 차원을 중시한다.



아무도 예술로 여기지 않는데?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게임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인 인식이 '게임의 예술화'를 방해하는 주된 원인인 건 맞지만 문제는 게임계 내부에도 있다. 우선 게임이 예술에 포함되려면 게임에 예술적 요소들을 추가하려는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 하지만 수익구조상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웰메이드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완결성 높은 그래픽, 사운드, 스토리를 갖춰야 하며 코딩 등 기술적인 베이스도 탄탄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하다. 투입된 자금을 보전하려면 게임은 상업성을 띨 수밖에 없다. 상업성과 예술성이 꼭 대치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현존하는 상업 게임 중 모두가 예술이라 인정할 만한 작품이 없는 건 사실이다. 사행성이 짙은 확률 아이템을 비롯해 온갖 과금 유도로 점철된 한국의 게임들은 게임과 예술을 둘러싼 담론을 뿌리부터 제거해왔다.


한편 게임을 이용하는 유저들도 게임을 예술로 여기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상업 영화가 판을 치는 와중에도 영화가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영화를 예술로써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2014년 국회에서 열린 '게임 중독인가, 예술인가?'에서 한 방청객이 전문가들을 향해 던진 질문이다. "저는 애니팡(모바일 퍼즐 게임)을 하며 예술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게임을 예술로 바라보고 소비하는 유저들이 적은 상황에서 이뤄지는 이론적인, 정책적인 논의들은 공허한 울림이 될 수밖에 없다. 위 질문에 모 교수는 '다른 이가 달성한 범상치 않은 결과물을 보고 감탄하는 무언가도 예술이라고 칭한다'고 답하며 다시 만물예술론으로 회귀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다.


이미지 출처: pixabay, @StartupStockPhotos


이러한 한계를 인지한 듯 게임계 내부에서도 굳이 게임을 예술로 인정받아야 하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게임을 문화예술로 편입시키려 한 목적은 게임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정부 지원과 규제 완화 등을 이끌기 위해서인데, 너무 수단에만 경도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들은 게임을 예술로 인정하니 마니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게임 그 자체에 독자적인 지위를 부여해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러한 주장이 한국 게임업계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적절한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틀에 맞지 않는 걸 억지로 끼워맞출 필요는 없다. 한국의 게임시장이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만큼, 한국의 게임업계가 담론을 선도할 자격은 충분하다. 현실에 안주하며 정부가 나서 일을 해결해주기만을 바란다면 게임을 둘러싼 인식과 규제는 앞으로도 제자리걸음을 걸을 것이다.



게임도 예술일까. 최근 게임을 문화예술의 범주에 포함시키자는 논의가 계속되는 중이지만 아직 토대가 빈약하다는 게 필자의 의견이다. 하지만 사진도 영화도 처음부터 예술로 인정받았던 건 아니다. 독자적인 장르로 편입되기까지 수많은 담론이 선행됐고 관련 업계의 지난한 노력도 병행됐다. 어쩌면 게임 역시 혼란스러운 과도기를 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독자 여러분의 차례다. 당신은 게임이 예술에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이 내리는 결론 역시 담론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다. 필자는 그런 선순환이 게임 산업 발전의 자양분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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