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K트로트의 시대, 2021년을 강타할 플레이리스트를 예측해본다
Edited by 김태현
2020년 방송계를 뜨겁게 달군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트로트’이다. 티비만 틀면 여기저기서 트로트 노래가 흘러나왔다. 최고 시청률 35.7%를 기록한 ‘내일은 미스터트롯’을 필두로 ‘나는 트로트 가수다’, ‘뽕숭아 학당’, ‘트롯신이 떴다’, ‘보이스 트롯’등 트로트를 앞세운 많은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누렸다. 임영웅, 영탁, 장민호, 정동원 등 새로운 트로트 스타들도 발굴되어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한국의 트로트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대 서양의 여러 문물들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폭스트롯(fox-trot)이란 음악도 우리에게 알려졌다. '폭스트롯'은 4/4 박자 혹은 2/2 박자의 빠른 춤이자 춤 곡으로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취향과 정서와 섞이면서 트로트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다. 한 때는 일본의 ‘엔카’와 비교되며 ‘왜색가요’ 논란이 일었지만, 시대가 지날수록 우리만의 고유한 색채가 입혀져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다. 오히려 일본에서는 ‘엔카의 원류는 대한민국이며 민요에 기원을 둔다’라는 주장도 있다.
무려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트로트가 지난 한 해 새롭게 인기몰이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배경에는 코로나 19가 있다. 외부 활동에 제약이 생기자 사람들은 자연스레 TV 앞에 앉게 됐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활용이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에서 TV 시청률이 높았다. 방송사 역시 중장년층을 위한 프로그램 편성에 열을 올리다 보니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트로트’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바이벌’, ‘오디션’이라는 포맷은 중장년층 시청자를 사로잡는 인기 요소가 되었다. 이들에게는 직접 자신의 손으로 스타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다소 신선하게 다가왔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수동적으로 방송을 시청하는 게 아닌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투표권을 행사하는 점이 긍정적인 가치를 형성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위 말하는 ‘아이돌형 트로트 가수’들이 탄생했다.
이러한 한국의 트로트 인기는 해외 언론에도 소개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통신사 중 하나인 로이터 통신은 ‘트로트가 뜨겁다 <Trot is hot : It’s not just K-pop in South Korea>’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의 트로트 열풍을 보도했다. 영국 유명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와 인도의 뉴스 채널 위온(WION)에서도 중년층 팬들이 트로트 가수들에게 보내는 성원을 10대들이 지지하는 K-POP 인기와 비교하여 방송을 했다.
이처럼 해외 언론에서도 소개되는 우리나라의 트로트 열풍. 그러나 정작 국내에선 트로트 열풍에 부정적인 목소리도 많다. 우선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트로트 프로그램은 다양성 부재를 지적받고 있다. 서로 비슷한 경연무대가 반복되면서 시청자들에게 피로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하는 트로트 가수들도 식상하다는 의견이다.
트로트 붐은 일부 세대에서 한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고, 그 인기가 과대 포장됐다는 여론도 있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익숙한 MZ세대는 TV를 통한 트로트 콘텐츠 소비가 많지 않다. 7080 세대는 실질적으로 포크음악과 록음악을 듣고 자랐으며 지금의 40대는 서태지와 아이들, 이승환, 김건모를 듣고 자랐다. 때문에 트로트에 향수가 짙은 세대는 생각보다 더 연령층이 높고 그 수는 적다는 분석이다.
또한 최근 트로트 가사를 지적하는 의견도 눈여겨볼 만하다. 과거의 트로트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한과 흥을 담은 노래가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 접어들면서 너무 노골적이고 의미 없는 가사들의 나열이 많아졌다. 요즘 트로트 가사는 자극적인 것을 넘어 저속한 경우도 있다.
접근성이 쉽다는 이미지도 오히려 트로트의 부작용으로 드러난다. 가창력이 부족한 비 가수들이 가수로 데뷔할 때 트로트라는 장르를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행사를 위해 ‘트로트’ 음원을 만드는 개그맨들의 소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자칫 트로트 음악의 위상을 낮추는 악순환이 된다.
방송국의 입장에서는 TV를 가장 많이 보는 연령층을 위해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이 시청률에 도움이 된다. 그렇기에 주 시청자인 장년층을 타켓팅하는 게 합리적인 셈이다. 또한 중장년층은 10대, 20대에 비해 월등한 구매력을 지녔고, 자신이 응원하는 스타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시간과 돈을 공격적으로 투자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자신이 스스로 뽑은 스타이기에 애착도 크고 몰입도가 뛰어나다. 실제로 ‘미스터트롯’ 우승자인 임영웅을 모델로 한 쌍용차 G4 렉스턴의 판매량이 전월 대비 53% 증가하기도 했다. 쌍용차 관계자는 "임영웅이 출연한 화이트 에디션 출시 광고는 조회수가 264만 회를 넘어섰다"며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거두고 있다”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쌍용차 판매 부진 임영웅도 못 막았다", 2020-05-25>
방송국은 주류 미디어에서 소외받던 중장년층에게 즐거운 볼거리를 황금시간대에 편성한 것을 긍정적인 측면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여러 이해관계를 고려하더라도 트로트를 향한 부정적인 여론을 한 번에 뒤집기 어려워 보인다. 근본적으로 트로트 음악의 예술성 논란에서도 자유롭기 힘들어 보인다. 하나의 앨범이 예술로 인정받고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고, 수록곡들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트로트 앨범은 앨범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히트곡 하나 만들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상업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새로운 앨범을 낼 때에도 기존 히트곡을 재탕하여 수록하는 일이 빈번한 건 덤이다.
트로트가 잠깐의 흥행 거리로 남는 게 아니라 꾸준히 대중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트로트씬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정 가수의 스타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로 대중들에게 매력을 어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해답을 보았다. 바로 ‘테스형’으로부터 말이다.
지난 추석 KBS에서 선보인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 가수 나훈아는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2030 세대까지 사로잡았다. 그는 일찍이 트로트 음악의 다양성을 제시하였고 그만의 개성을 톡톡히 보여줬다. 또한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철학적 가사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어우러져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젊은 세대는 새롭게 나훈아에게 입덕하고, 중장년층은 나훈아와 함께 과거를 추억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트로트는 안 듣는데, ‘테스형'은 듣는다”, “트로트의 재발견”등의 긍정적인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이후 ‘테스형!’ 뮤비는 두 달 만에 무려 700만 뷰를 돌파하며 BTS와 블랙핑크를 제치고 유튜브 한국 인기 뮤직비디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야말로 진정한 세대 대통합이 일어났다.
어린 시절 나는 ‘가요무대’를 시청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트로트가 그 세대의 향수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국노래자랑’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들으며 온 가족이 함께 즐거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트로트’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 상단에 ‘트로트 지겨워’가 뜨는 요즘. 트로트는 대중들의 공감을 얻으며 인기를 이어나갈지, 거품처럼 다시 사그라들지 그 시험대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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