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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udi Aug 29. 2019

100일 글쓰기 마라톤 -2-

공통주제 : 트위터

  2013년 여름, 사회과학부 사람들이랑 하던 학회 스터디의 주제는 페미니즘이었다. 요즘처럼 페미니즘 서적이 항상 베스트셀러 코너에 올라갈 때도 아니었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여성은 손에 꼽았다. 그러나 나는 냉큼 여름 스터디 주제 후보였던 ‘환경’과 ‘페미니즘’ 중에서 페미니즘에 투표했는데, 당시 팔로잉하던 운동권들이 여성주의와 퀴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수결로 페미니즘을 주제로 정한 후 모임에서 고른(남자 학회원들이 고른) 책은 실라 로보섬의 <아름다운 외출>과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었다. 각각 한 책의 한 꼭지씩을 요약, 발제하기로 했는데 나는 <페미니즘의 도전>의 성노동을 주제로 발제를 했었다. 정확히는 성상품화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나쁜 성상품화로 볼 수 있으며 어디부터 정책적으로 금지해도 좋은가, 성판매에 관한 해외의 법률 사례는 어떤가 등 굉장히 기초적인 수준이었다.

  스터디에 아주 즐겁게 참여했고, 환경 스터디를 하고 싶어 했던 남자 학회원이 대놓고 여성주의 발제에 ‘나. 이거. 하기. 싫었음.’ 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게 아니꼬워한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나는 그때에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지금도 흔한 페미니스트에 관한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예민하고, 남성에게 공격적이고, 어떤 규범에 집착하듯이 구는 까다로운 그런 이미지가 내게도 있었다. (자랑스러운 페미니스트로서 그 고정관념에 현재 내가 얼마나 벗어나는가 떠올려보면 그다지 틀린 짐작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 한해.) 실라 로보섬의 <아름다운 외출>은 차일피일 미루다 나중에 마치 갈증을 해소하듯 페미니즘 도서를 찾아 읽을 때 한 번에 읽게 된다. 지금 평가하자면 <페미니즘의 도전>도 <아름다운 외출>도 페미니즘 입문 도서로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에 내가 이용하던 웹사이트 중 가장 페미니즘에 관한 토론이 활발했던 트위터에서조차, 페미니즘 개론서 목록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아직 <행복한 페미니즘>으로, 절판 도서였던 시절.

  모순된 얘기지만 모두들 공감할 만한 변명(?)을 하자면, 그때 트위터는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접하기 가장 쉬운 매체였으면서 동시에 장벽이 되었다. 2013년은 성재기가 더치페이를 부르짖으며 키배를 뜨던 시절이었고, 고종석과 고은태가 인권에 관심 좀 있던 트위터리안들의 고정 팔로잉이었던 시기다. 그러니까 다들 인권 언저리를 이야기하면서 페미니즘의 관용구들을 주워섬겼지만, 실제로 페미니스트들은 운동권들 조차 프로 불편러라고 기피하고, 쿨한 성 해방론자인 체하던 트위터리안들의 조롱을 사기 딱 좋은 포지션이었던 것이다. 페미니즘 스터디 후에도 나는 한참을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닌 것 같아.’라고 읊조렸고, 그러면 트위터에서 사귄 남자 지인들이 ‘그렇지, 너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야.’ 하고 확인해주던 해괴망측한 절차 같은 게 있었다. ‘연애에 서툰 복학생 오빠’ 따위가 인기 있는 밈이었던 트위터. 너무나 고리고 짝 시절의 이야기다.

  그때의 나에게 너는 나중에 페미니스트 관용구 아카이빙 계정을 운영하게 될 것이란다, 이야기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영영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페미니즘 언저리를 아련하게 맴돌던 나를 분노에 찬 확신을 담아 페미니스트라고 자칭하게 한 것 역시 트위터였다. IS보다 무서운 페미니즘, 나 페미 선언 등이 있었고 <빨래하는 페미니즘>과 같은 페미니즘 고전 다시 읽기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메갈리아가 있었고, 메갈리아의 노선 갈등에서 계속 이어지는 어떤 페미니즘의 흐름이 있었다. 지인 합성이나 성인 광고 따위의 정글이 도사리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빠른 페미니즘 담론이 등장하는 매체는 여전히 트위터이다. 트위터에서 공론화되거나 조롱당한 남자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개념 있는’ 말을 하는 남자들이 한 자리씩 해 먹으며 여자들의 목소리를 대체할 수 없는 매체이기도 하다. 나는 이 마지막 특징이 아주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 오늘 내가 도서관에 가서 ‘지금 당장 당신이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하는 이유’ 같은 책을 낄낄거리면서 들었다 놓고는 여전히 트위터에 방청소를 하다가 찾은 유물 사진들을 게시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프랑스인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동양인 퀴어 페미니스트가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에 토하듯이 쓰는 sns이기도 하다. ‘걔가 그러려고 한 말은 아닐 거야’, ‘네가 아시아인이라 그런 걸 당한 게 아니야’ 같은 말을 하는 프랑스인 사이에서 내가 움츠러들지 않게 해주는 버팀목. 솔직히 말하자. 트위터에서 얻은 게 잃은 것보다 많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를테면 트위터에서 잃은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시간’이 있다. 아마 트위터에서 얻은 위로만큼의 스트레스도 얻었을 것이다(아니, 확실하다.). 그러나 트위터가 아니었더라면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내가 스스로에게 붙인 정체성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정체성 하나에 확신을 갖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 알 수 없다. 지금도 내게는 당장 멋지고 강하고 다양한 여성들을 접할 수 있는 창구이다. 왜 트위터를 주제로 나의 페미니스트 일대기를 요약하는가 하면 나의 페미니스트 일대기는 자주 트위터를 무대로 하기 때문이다. 트위터에서 외치던 구호를 거리에서 외쳐서 현실로 이룬 경험, 낙태죄 폐지 같은 성과들이 삭막한 한녀(한국 여자)의 일상에 한줄기 빛이 되어주니까.

#멘션_온_단어에_관련된_경험 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어제 으쌰 으쌰 했지만 해시태그에서 영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은 기분 탓일까... 내일은 조금 덜 일기 같은 글을 쓸 수 있길 바라며. 트페미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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