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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나무 Mar 25. 2020

엄마 손을 닮고 싶지 않아서

엄마는 환갑 선물로 금반지 3돈을 해달라고 했다. 금반지는 아무래도 종로에서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아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향했다. 출구마다 늘어선 금은방들을 보면서 어디부터 들어가야 좋을지 몰라 일단 발길 닿는 대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노오랗게 빛나는 순금 반지들을 보자 엄마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유리창 안에 죽 진열된 금반지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기분이랄까. 그래서 엄마들이 나이가 들면 몸에 금붙이 하나 정도는 두르고 있어야 마음이 두둑하다고 하는가 보다.

 

반지 여러 개를 샘플로 보여주는 사장님 앞에서 엄마는 쭈뼛쭈뼛 손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한번 껴보세요" 하는 사장님 말에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을 연신 만지면 "반지를 끼기에는 손이 예쁘지 않아서요" 한다. 엄마 손은 투박하고 못생겼다. 손가락 마디는 울퉁불퉁하고 손톱은 뭉툭하다. 세월의 흔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처절한 손. 누군가 내게 엄마에 대해 묘사해보라고 했을 때 ‘평생 일만 하며 산 엄마, 남은 평생 일만 하고 살아야 할 여자’라고 말했었다. 엄마는 자식들을 키우고 먹이느라 고왔던 손을 잃었다.

 

나는 스무 살이 되었을 때부터 매주 빠짐없이 손톱을 다듬는다. 정갈하게 손톱을 깎고 그 위에 투명색 매니큐어를 바른다. 그렇게 손이 고운 사람이 되기 위해 매주 반복된 의식을 치른다. 손은 그 사람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는다. 나는 엄마 얼굴을 닮았지만 엄마 손은 절대 닮고 싶지 않다. 그리고 엄마의 삶 또한 닮고 싶지 않다. 손이 고우면 내 삶도 고와질까.

 

엄마는 네 번째 손가락에 두툼한 금반지를 끼고 소녀처럼 웃는다. "이거로 하자." 금반지를 낀 엄마의 손이 황금색으로 빛난다. 아마 엄마는 반지를 끼지 않고 집 안 가장 안전하고 깊숙한 곳에 반지를 모셔 놓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만 두둑하게 손은 여전히 허전한 채 일하겠지. 그런 엄마의 손에 채 끼지 못한 반지라도 선물해준 것이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손이 그리고 마음이 3돈 반지에 조금이라도 두둑해졌으면 좋겠다.

개미나무 소속 직업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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