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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ee An Jul 11. 2018

2018년의 제주에서

"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고"



 라고 시작하는 노래 듣기를 멈출 수 없는 이 곳은 제주도. 공항에서 차로 10분 거리 시내 한복판의 아파트에 짐을 풀었다. 허공에 한손을 올려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이 꼭 유지태를 닮은 친절한 이는 널찍한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 방도 3개, 침대도 3개. " 저희 제주 내려가면 놀아주시나요" 라며 운을 띄운 내게 "재워는 드릴게" 라는 대답으로 내 속을 빤히 읽은 그는 우리에게 방을 하나씩 내어주었다. 재워는 드린다더니 놀아주고 먹여주기까지 하다니. 아아 다정한 사람이어라.



 시를 쓰는 나의 친구들은 맥주를 마시더니 번갈아가며 서로의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조개스테이크" "귤" "빛" 등의 시어들이 맥주와 와인의 강에 나뭇잎처럼 둥둥 떠다녔다. 오래된 유행가에 맞춰 춤을 추었고, 도통 취하는 법이 없는 나는 몸을 흔들다 말고 또 흔들다 말았다. 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다. 창밖에 현무암 돌담과 귤 밭이 보이는 곳이 아니어도 괜찮아. 나와 함께 있는 시인들이 이 아파트를 시적으로 만들어줄 거야.


 

 오름에만 오르면 비가 내렸다. 우리는 안개에 폭 안겨 도화지 같은 허공을 바라보았다. 저 너머에는 어떤 풍경이 있을지 결코 확인해 볼 수 없었다. 바다에만 가면 태양이 정수리를 내리 찍었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하는 물놀이인 것 같았다. 홀린 듯 물 안에 들어튜브 사이에 끼어 미취학아동 수준의 물장구를 치다가 나와 미문으로 가득한 대학 시절 교수의 책을 읽기를 반복했다. 택시 기사님들은 수다스러웠으나, 밉지는 않았다.



 한참 잠을 자고 일어나니 또 다시 여름 밤. 오늘 밤은 얼마나 길는지.



 육지에서 마주한 어떤 순간에 내 생에 균열이 일어났다. 섬에서의 나는 3일 내내 이 미세한 균열에 대해 생각했다. 돌이킬 수 있는 균열인가, 내 앞으로의 생은 또 전과 같지 않을 것인가. 생각을 해 보아도 답은 없어서 나는 종일 "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다" 라는 노래를 듣고 또 듣는다.



 아이고야, 젊구나 나는. 혼자 나와 산책을 하며 모기에 뜯겨도 일단 걷고 보는 나는, 이야 참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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