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의 늪지대

by 봄이온다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와 소파에 누우면 그렇게 푸근할 수가 없다.

씻지도 않고 가만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면 금방 한 시간이니, 이런 요상한 물건이 없었을 땐 어찌 살았을까?

그 속에는 유재석도 있고 제니도 있다. 처음 들어보는 살림 꿀팁도 나오고 유명하다는 성수동 맛집도 나온다.

한두 개를 보기 시작하면서 늪지대에 빠지듯 천천히 그 속에 갇혀버린다. 아득하게 나오지 못하는 그곳


그 순간, 아들이 자기 방에서 나와 거실을 휙 지나간다. 얼른 핸드폰을 머리 밑으로 숨기며 눈을 꾹 감아보지만 오히려 그 동작이 핸드폰을 들고 있었던걸 말해준다. 아는데도 이 자동반사는 어쩔 거냔 말이다. 왜 후회는 항상 뒤따라올까?


"엄마 쇼츠 봐?"

"잠깐 피곤해서.... 뉴스 봐 뉴스"

"다 알아, 보는 거"


얕은 한숨이 나온다. 아이가 당당하게 말하는 저 모습, 내 모습이다.

아침에 갑자기 아이 방에 들어가면 아이는 핸드폰을 휙 숨기는데 역시나 그 행동이 뭘 하고 있었는지 다 말해준다.

그럼 숙제는 했냐는 둥, 아침부터 학교 갈 준비는 안 하고 핸드폰 하고 앉아있냐는 둥 묵혔던 잔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아마 아이가 그냥 누워있었거나 책을 봤었다면 난 이 말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늪지대에 빠져있는 모습은 남들이 잔소리하기 딱 좋은 포인트겠지.

손바닥 속 세상에 빠져 웅크리고 있는 모습. 우리 엄마가 봤다면 등짝을 때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엄마도 지금쯤 소파에 누워 임영웅을 보고 계실 거다.


유튜브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차에서 5분도 가만히 안 있는 아이들을 지방 가는 내내 조용히 시켜버린다.

일하느라 지쳐 잠이 급한 남편을 안경원숭이가 되도록 보게 만든다.

이문열,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을 즐겨 읽던 아버지가 정치 동영상을 돌려보며 식사하게 만든다.


우리는 다 늪에 있다. 난 어디까지 빠져있을까?

멀쩡한 어른이며, 선생이고, 엄마인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마음 붙잡고 책을 펴든다. 한 장 두 장. 재미를 붙이려는데


둘째의 호출이 울린다.

"엄마 이리 와봐요"

첫째의 헬프미도 뒤이어 들린다.

"엄마 이것 좀 봐주세요"

남편의 질문까지 따라온다

"여보, 음식물 쓰레기 카드 어딨어?"


다 들어주고 나면 이상하게 소파도 부른다. 그것도 따듯하게 엣지있는 목소리로


"와서 누워....이것 좀 봐봐. 오늘 무슨 일 있었는 줄 알아? 너만 몰라"


세상에! 나만 모르는 일들이 있으면 안 되잖아

터치 두 번만 하면 난 또 늪지대에 빠진다. 아늑하고, 편안하고 온갖 재밌는 것들로 가득한 곳


그래서 안 만지는 시간을 정했다. 그 시간엔 핸드폰 쳐다도 안보리라.

눈을 부릅뜨는데 갑자기 깨톡, 진동이 울리며 내손이 스륵 가서 핸드폰에 붙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래, 내일부터 안 보고. 오늘은 30분만 딱 보고."


나의 사투는 한번도 장렬한 적이 없다.

그래도 허우적댄게 어디야. 내일은 조금더 휘저어보자고.

유튜브에서 방금 본 긍정의 말을 따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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