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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포리아 Aporia Nov 14. 2019

수능 봤니?

수능 두 번 본 사람의 수능 썰

나는 수능을 두 번 봤다. 그래서 수능 날만 되면 할 말이 많다.

그렇다고 라떼는 아니다. 수능을 두 번이나 본 것이 자랑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할 말이 많은 이유는 첫 수능도 두 번째 수능도 모두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클라이막스가 두 번이나 있는데 관객들이 모두 환호할 수 있는 연극처럼 있을 수 없던 일들이 그때, 나에게수없이 많았다.


1막. 이게 현실이야?


첫 번째 수능날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한 이유가 있다. 그때 나는 자살을 반쯤 결심했었다. 이유는 수능을 망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이미 수시는 모두 떨어진 상태였다. 나는 높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대학교는 크게 상관없었다.

다만,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문예창작과도 좋았다. 그래서 입학사정관 전형에 지원했다. 내가 19년간 썼던 모든 시와 소설을 제본했다. 빳빳한 캐러멜 색 서류봉투에 곱게 담았다. 그리고 나는 19년간 썼던 나의 모든 창작물을 부정당했다.

나에게 수시 실패는 단순히 정시 시험을 봐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없구나 생각하며 스스로 글쓰기를 내 인생에서 거세한 순간이었다. (거세당했는데도 지금, 이렇게 글을 열심히 쓰는데 그 순간은 얼마나 절망스러웠으랴!)

그런데 그다음 내가 맞이한 사건이 수능 언어영역 5등급이라니. 전반적으로 수능을 못 봤지만 언어영역은 태어나서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점수였다. 아무리 못 봐도 3등급은 받았고 그마저도 2등급에 가까운 3등급이었다. 그런데 5등급이라니. 나는 숨쉬기가 힘들었다. 수리영역과 외국어 영역도 1~2등급씩은 더 낮았고 탐구영역도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다. 진학사 합격예측 프로그램에서는 내가 국어국문학과로 대학을 가겠다고만 하면 극상향 그래프를 띄며 반대했다. 유웨이 합격예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언어 5등급인 학생이 국어국문학과에 가겠다니.


그나마 탐구 영역 점수가 높았던 나는 이과로 전향했을 때 서경대학교 컴퓨터 공학과가 소신 지원이 떴다. 하지만, 이과로의 전향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였기 때문에 나는 망설였다. 그래서 남아있는 수시 기회를 쓰기로 결심했고 수원대학교와 가톨릭 대학교에 적성 시험을 신청했다.

적성고사를 준비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또한 경쟁률이 높았기 때문에 결국 모두 떨어졌다. 그래서 정시 가, 나, 다 군 중에 다군은 서경대학교 컴퓨터 공학과를 썼다. 그리고 나군에는 '실기'시험이 있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집어넣었다. 가군은 기억이 안 난다. 확실한 건 동국대 문창과가 나를 받아줄 리 없었고 나는 서경대 컴퓨터 공학과 예비번호 22번을 받았다. 그리고 컴공과에 합격했다.

하지만 나는 국문과에 가고 싶었다. 이게 진짜 내 현실인가. 나는 수능이 끝난 후로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울었다. 마치 죄인처럼 부모님 눈치를 보며 죄책감에 고통받았다.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가 느꼈던 죄책감만큼 심한 죄책감이었다.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다.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친구들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을 보고 셈이나기도 했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일단 내 인생이 망한 것 같아서 친구를 만나기가 부끄러웠다. 하필이면 수능 때만 되면 왜 이렇게 날씨가 추운지.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해였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내가 왜 이런 큰 벌을 받아야 하나. 많이 울고 또 울었다. 그러나 바뀌는 건 없었다.


그러나 27살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수능을 못 봤다고 그렇게까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수능을 못 봤다면 일단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부모님과 나는 전혀 인정하지 못했다. 그러니 대응도 이상했다. 한 번도 준비한 적 없었던 적성고사를 본다거나 동국대 문창과 실기시험을 본다거나. 1년 동안 그 전형만 준비하는 애들이 있는데 될 리가 없었다. 나는 결국 재수를 했는데, 어차피 그럴 거라면 차라리 푹 쉬고 2월이나 3월부터 본격적으로 재수 준비를 하는 것이 나았다. 일찍 쉬고 일찍 준비할수록 전략적으로 유리하니까. 수능을 못 봤다고 죄책감을 갖는 것은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 대학에 맞춰 갈 건지, 빨리 재수를 할 건지 하루빨리 결정해야 그나마 낫다.

그리고 비록 결과가 좋지 않다고 과정 전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인생에 시험은 많다. 공무원 시험, 전문직 시험(회계사, 세무사 등), 은행권 자격증 시험, 취업시험(인적성 고사) 등 정말 수능을 열심히 준비했다면 다른 시험을 준비할 때 분명 득 될 일이 많다. 그러니 수능을 못 봤다고 내 전체 과정을 부정하진 말자. 결과가 나쁘다면 위로를 받아야 한다. 절대 죄책감을 가질 일이 아니다. 충분히 쉰 후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고생 많았다.


2막. 세어봤니?


그래서 컴퓨터 공학과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재수를 권하셨다. 아무래도 짧은 생이긴 했지만 평생 국어국문과에 가겠다고 한 녀석이 컴퓨터 공학과에 간다고 하니 마음이 불편하셨나 보다. 하지만 수험생활을 1년 더 할 수 있을까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다. 만약 재수를 한다면 서경대학교에 넣어둔 예치금도 환불해야 했으니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동전 주머니를 주시며 동네 떡볶이 가게에서 순대를 사 오라고 하셨다. 사실 순대만 먹는 건 싫고 떡볶이도 같이 먹고 싶었지만 나는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넌 순대를 떡볶이에 묻혀 먹을 자격도 없어!) 그냥 순대만 사 오기로 했다. 아버지는 중국집에 가셔도 군만두나 탕수육은 안 시키시고 짜장면만 드시는 음식의 정통파셨다. 나는 떡볶이 집에 가면 적어도 떡볶이와 순대 또는 떡볶이와 튀김을 시키는데 아버지는 튀김만 사 오시거나 순대만 사 오셨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떡볶이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동전주머니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동전 주머니를 열었더니 온통 10원짜리와 50원짜리 밖에 없었다. [아버지께서 돈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셨구나.] 동전 주머니만 가지고 온 나는 집에 가서 천 원짜리를 다시 가져올 생각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되돌아가자 아버지께서는 "순대는 왜 안 사 왔니?" 하고 물어보셨다. 나는 10원짜리랑 50원짜리 밖에 없어서 순대 값 3000원이 안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세어 봤니?" 하고 물어보셨다. 나는 안 세어봤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아버지께서는 세어보라고 하셨다. 꽤 많은 10원짜리와 50원짜리가 있었고 중간중간 100원짜리 2~3개가 있었는데 세어보니 순대 값 3000원이 넘는 돈이었다.

3000원이 넘는 돈이라고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아버지께서는 "세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야."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재수도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야. 두려워서 꿈을 포기하지는 마라. 아버지는 그렇게 살았지만 내 아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때 재수를 진심으로 결심했다.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야. 세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야.


지금도 기억하는 그날은 2012년 2월 18일 토요일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내 인생의 특이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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