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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튼애플 Dec 17. 2020

<플로리다 프로젝트> 가난하다면 행복할 수 없는 걸까?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줄거리 및 리뷰

처음 보는 차를 향해 침을 뱉는 아이들. 이를 보고 차 주인 스테이시가 나와 아이들을 말리지만, 지지 않고 욕설을 내뱉는다.


화가 난 스테이시는 아이 중 하나인 무니의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차를 닦게 시키는 데, 오히려 재밌는 놀이라도 하듯 신이 난 무니와 스쿠티.


심지어 스테이시가 돌보는 손녀인 젠시에게 마저 같이 차 닦는 놀이를 시키기도 한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줄거리


이 일을 계기로 친해졌는지, 무니와 스쿠티는 젠시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한다. 공짜 아이스크림을 먹게 해 준다던 무니의 아이디어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사람에게 구걸을 해 얻어먹는 것이었다. 아이스크림집 사장은 손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아이들을 구박했지만 아이들은 자신들도 돈을 냈다며 아이스크림이나 빨리 달라고 재촉할 뿐.


이 3인조 장난꾸러기의 말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계실에 들어가 모텔 전체의 전기가 나가게 만드는 아이들.


한편, 무니의 엄마 핼리는 제대로 된 직장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도매점에서 향수를 구매해 관광객들에게 판매하는 핼리.


그런데 하루는 아이들에게 수상한 남자 하나가 접근한다. 아이들이 노는 걸 가까이서 보고 있던 이 남자. 그런 그를 발견한 관리인 바비가 다가가자 남자는 목이 마르다며 갑자기 자리를 뜨려 한다. 도망가려는 그를 붙잡고 자판기 쪽으로 데려간 바비. 그리고는,


당장 꺼져!

이제는 절친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친해진 이 세 명의 아이들. 오늘은 모텔을 떠나 조금 먼 곳으로 모험을 떠나게 된다. 버려진 집에 가구들을 때려 부수며 신나게 놀던 아이들에게 벽난로 하나가 눈에 띈다. 그렇게 장난으로 시작했던 불장난은 꽤 큰 화재로 이어지며 큰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 일을 계기로 스쿠티의 엄마 애슐리는 아들을 이 친구들에게서 떼어놓기로 한다.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핼리는 애슐리가 일하는 식당으로 쳐들어간다. 그런데 핼리에게도 차갑게 대하는 애슐리.


그런 그녀를 보고 더 화가 났는지 핼리는 음식을 왕창 주문하고 영업 방해라도 할 기세로 시끄럽게 놀기 시작한다. 하지만 변함없이 차가운 애슐리의 태도. 결국 다 먹지도 못할 만큼 시킨 음식은 봉지째 길거리에 던져 버리고 만다.

며칠 뒤, 여느 때처럼 향수를 팔던 핼리는 리조트의 보안 직원에게 제재를 당한다. 이에 핼리도 지지 않고 맞받아치지만 결국은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일하던 직장에서도 잘리고 향수도 마음대로 팔 수 없게 된 상황. 이제 그녀의 선택은 성매매였다. 모텔방에서 무니를 목욕시키는 동안 손님을 받게 된 핼리. 심지어 그녀는 손님의 디즈니랜드 입장권까지 훔쳐 파는 범죄까지 벌이게 된다.


그리고 성매매 사실을 애슐리에게 들킨다. 그러자 애슐리는 핼리를 조롱했고 핼리도 지지 않고 폭력으로 응수하며 두 사람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고 만다.


다음 날, 아동국에서 핼리의 집을 찾는다. 아이가 위험한 환경에 놓여있다는 신고를 받고 아동국 직원들이 출동한 것. 제대로 된 직장 없이 아이를 키우느라 언제나 무니를 위험에 노출시켰던 엄마 핼리. 이제 그녀는 아동국으로부터 무니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과연 핼리와 무니. 이 두 모녀의 동거는 여기까지였던 걸까?


진정한 엄마의 역할에 대해


이 작품은 무니와 스쿠티, 그리고 젠시라는 세 명의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흘러간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무니. 그녀는 매직 캐슬이라 불리는 모텔에서 엄마 핼리와 함께 살아간다.


이 둘은 경제적으로 절대 풍요롭지 못하다. 핼리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으며, 매직 캐슬이라는 이름과 달리 이들이 머무는 모텔은 결코 좋은 주거 시설이라고 볼 수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두 사람 사이는 돈독했다. 비록 대단한 집에 살 수 있게 해주진 못해도, 매번 비싼 뷔페식당에 데려가지는 못해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였다. 아랫집에 사는 애슐리가 식당에서 몰래 주던 음식이 그들에겐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는 것이었고, 향수를 파는 핼리를 따라갔던 일 역시, 무니에겐 즐거운 추억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돈독한 이들 사이와는 달리 이들의 삶은 언제나 위태로웠다. 제대로 된 직업을 찾지 못했던 핼리는 무니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여러 일을 전전한다. 그러나 그녀의 분투에도 이들의 경제적 상황은 더 나빠져만 간다. 그래서 핼리는 성매매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 때문에 아동국 직원이 찾아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다. 제대로 된 직업 없이 아이를 부양한다는 건, 아이에게도 꽤 괴로운 일인 만큼, 아동국의 조치는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양부모가 핼리만큼 무니를 사랑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가능성이 훨씬 낮다고 봐야겠다. 비록 핼리가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녀는 항상 무니를 위해 헌신했다.


경제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만 참된 부모의 자격을 갖추는 건지,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든 참된 부모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해 영화는 관객들에게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진정한 우정에 대해


영화는 어린아이들, 그리고 핼리와 애슐리. 두 집단의 우정을 그려낸다. 이들은 매직 캐슬에 살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이웃이다. 엄마들의 좋은 사이만큼, 아이들 역시 서로를 친남매처럼 느끼며 지내왔다. 그런데 아이들이 불장난을 하다 건물을 태워버린 사건 이후로 이들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먼저 적극적으로 움직인 건, 스쿠티의 엄마 애슐리. 그녀는 아이들이 붙어 다니면 다시 어떤 사건을 일으키지 않을까 염려하며 스쿠티를 무니와 젠시에게서 떼어놓고자 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따지러 왔던 친구 핼리를 매몰차게 대해 쫓아내 버린다. 친자매처럼 가까웠던 두 사람은 그렇게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고, 결국 주먹다짐을 할 만큼 관계는 틀어져 버린다.


하지만 엄마들과는 대조적으로 아이들은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무니와 젠시는 항상 스쿠티와 놀고 싶어 했고 스쿠티 없이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가장 큰 위기에 몰린 순간, 젠시는 무니의 손을 잡아준다. 이 장면은 엄마들의 대처 방법과 판이하게 달라서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


애슐리는 위기에 처한 핼리를 모른 척하기로 했다. 잘못 도왔다가 자신마저 불똥이 튈까 봐 극도로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젠시에게 그런 복잡한 계산은 없었다. 지금 당장 자신의 소중한 친구가 눈물을 흘리는 데, 이를 모른 척하는 게 더 이상한 행동이라 느꼈던 것이리라.


나이가 들수록, 많은 걸 알아갈수록 더 복잡한 계산에만 열을 올리는 어른들과, 순수한 마음을 공유하는 아이들. 어떤 쪽이 진정한 우정에 가까운지 쉽게 구별할 수 있었던 장면이 아니었을까?


현장감을 느끼게 해주는 카메라 앵글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부분이자, 이야기를 더 슬프게 만든 요소는 바로 카메라 앵글.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시선과 나란히 서는 높이의 시점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이 공간에 함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사람의 시선에 맞게 흘러가는 화면을 통해 현장감을 주고 있던 것이다.


특히나 영화는 등장인물의 뒷모습을 많이 담아두고 있었는데, 이는 관객이 관찰자가 된 것처럼 느끼게 했다. 철부지 어린아이들을 지켜보는 관찰자이자, 슬픈 운명에 놓인 모녀 관계에 좀 더 푹 빠져 볼 수 있게 하는 의도적인 앵글 배치였던 것.


더 이상 외부의 관찰자가 아니라, 작품 안 속으로 들어오게 된 관객들은 그들의 감정에 더 충실히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작품의 백미는 마지막 엔딩 장면이다. 무니의 손을 낚아챈 젠시가 정신없이 달려 디즈니 랜드로 뛰어가는 장면인데 화면은 이때부터 다른 질감으로 이어진다. 거친 핸드헬드 기법은 물론, 화질도 이전 장면들과 달리 낮은 상태로 흘러가기 때문에.


촬영 실수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의도된 연출이다. 감독은 두 소녀의 마지막 질주 장면을 아이폰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한다. 누구나 어떤 도구를 이용해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이다. 냉혹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친구의 손을 꼭 쥔 어린 두 명의 아이의 모습을 정말 뒤에서 따라가며 보는 느낌을 가장 잘 살린 연출이었으니 말이다.


'역설'이 그려내는 행복론


영화는 예쁜 연보라색으로 칠해 그리고 꿈의 공간 디즈니랜드 앞에 사는 가족들의 행복한 이야기를 다룰 것 같았지만 정반대로 가장 슬픈 운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매직 캐슬', '퓨처 랜드'.


디즈니랜드와 잘 어울리는 이름과 달리 허름한 모텔방인 이곳에서 지내는 이들의 처지도 역설적이었다.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가장 사치스러운 향락 시설 바로 뒤편에,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소시민이 있음을 고발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가정을 보며 멋대로 동정하는 걸 이들은 거부하고 있었다. 언뜻 저소득 가정의 불우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들은 그 안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아왔다. 누구에겐 눈물겨운 투쟁으로 보일 수 있어도 이들에겐 그저 행복한 한 때였던 것이다.


물론 이들을 갈라놓은 게 금전적인 문제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돈이 많은 모두가 행복하지는 않은 것처럼, 이들의 삶 역시 가난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모녀간의 유대, 친한 친구와의 관계 등은 아무리 많은 돈이라 할지라도 살 수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역설은 아니지만 이 작품에서 국가가 개입한 시점도 너무나 잔인했다. 아이와 엄마를 떼어놓기 위한 시점이 되어서야 사회보장체계가 작동하는데 조금만 더 이 시점이 빨랐다면 이들은 마법 같았던 이 시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 모든 역설의 시점은 국가의 무관심이었리라 생각한다. 소외된 이웃에게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이들에게 벌어질 모든 역설은 말 그대로 '마법'이나 앞으로의 '미래'로 펼쳐졌을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ntQuhuBEv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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