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노케 히메를 찾아서①
야쿠시마는 일본 남규슈 가고시마현에 속한 섬이다. 섬 전체가 사실상 거대한 산이고 주변 해안가를 빙 둘러 촌락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산이 많은 이곳에서도 가장 유명한 산은 규슈에서 가장 높은 미야노우라산(宮之浦岳)으로 그 높이보다는 세계자연유산으로 이름이 높다. 물론, 사실 이런 건 다 상관없고 이 섬과 이 산은 <모노노케 히메>의 배경이라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굳이굳이 생고생을 하며 이 섬마을까지 찾아간 것은 다 미야자키 하야오 할아범 때문이란 소리다.
시라타니운스이(白谷雲水峽) 협곡은 <모노노케 히메>의 배경이 된 곳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한참 전에 야쿠시마에 묵으며 아이디어 구상과 배경 스케치를 했다고 한다. <모노노케 히메>에서도 잘 드러나듯, 이곳의 특징은 이끼다. 산 전체는 화강암으로 이뤄져서 흙이라곤 찾아보기 힘든데, 그 화장암 위로 거대한 이끼가 뒤덮혀 있고 다시 그 이끼 위에서 나무며 풀이 자라기 시작했다. 내력이 내력이다보니 일본 왕가의 근원 신화(!)와도 관렴이 깊다. 야쿠시마 신의 아들이 바로 진무천황이라는 얘기다. 시라타니운스이 협곡 안내를 맡은 가이드 할아버지는 산을 오르는 내내 일본 신화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이 가이드 할아버지는 나에게 "여긴 요정 정령 코다마(모노노케히메에 나오는 요정)가 심심찮게 나온다" 는 뻥을 치셨다. 내가 피식, 코웃음치며 "아마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겠죠" 라고 답했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모노노케 히메의 숲에 도착하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셨다. 뭐 어쩌려고 저러시는걸까, 싶은 사이에 모노노케 히메의 숲에 도착했다. 한참을 사진찍고 놀다가 "여기 봐! 여기 코다마가 있다!"는 외침에 뒤를 돌아봤더니 가이드 할아버지는 직접 준비해오신 코다마 인형이 예쁘게 늘어서 있는 게 아닌가. 하, 젊은이였다면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를 수준의 센스. 이 코다마 인형은 엄청난 인기를 끌며 지나가던 모든 등반객들이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줄서서 사진을 찍어갔다.
비가 많이 와서 아쉽긴 했지만, 그리고 간만에 산행으로 다리가 무지 땡기고 아팠지만 상쾌하게 하산하고 숙소에서 온천하고 빈둥대던 첫날이었다.
물론 이땐 몰랐다. 다음날 내가 어떻게 생사의 갈림길을 오갈 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