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작명소 : 공감
인생의 한 장면만 가지고 간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원더풀 라이프>다. 막 죽어 저승에 가기 직전의 영혼들이 머무는 림보. 이곳에 도착한 영혼들은 인생의 한 장면만을 골라야 한다. 그 추억을 영화로 만들어 저승에 가져가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다. 물론 나머지 기억은 모두 잊는다. 등장인물은 제각각의 이유로 저마다의 장면을 선택한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가 중학교 2학년인가.. 그랬는데, 하여 나는 극중 중학생의 이야기가 가장 와닿았다. 첫날 소녀는 "디즈니랜드에 친구들과 놀러갔던 것"을 영원히 간직할 기억으로 선택하지만, 마지막날에 가서는 나른한 오후, 마루에서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엄마가 귀지를 파주던 기억으로 바꿔 고른다.
오늘 인터뷰를 마치고, 조금 수다를 떨다가 취재원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원더풀 라이프>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나에게 "딱 하나만 가져갈 기억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며칠 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더랬다. 그에게는 그날과 똑같은 대답을 해줬다.
아마도 고1 여름 어느 토요일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잠시 들렀다가 학원을 가야했다. 거실에 누워 TV 채널을 돌리는데 '아기공룡 둘리' 오프닝이 시작됐다. 전주를 듣자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며 눈물이 났다. 이상하지. 나는 얼른 눈물을 닦고 설거지하는 엄마에게 "엄마 나는 왜 아기공룡 둘리 전주만 들으면 눈물이 나노? 진짜 이상하고 웃긴다"고 말했다. 엄마는 "아기공룡 둘리 보던 때가 행복했어서 그런가보네. 그리고 이 오프닝이 서정적이라서 엄마도 들으면 눈물날 거 같다"고 했다. 별말이 아녔는데, 괜히 찡해져서 부엌으로 가 엄마의 등을 끌어안았다. 토요일 오후였고, 햇살도 좋았고, 아기공룡 둘리의 주제가가 흐르고 있었다. 다시 코끝이 매워져서 '흐흐흐' 웃으며 엄마를 봤다. 엄마도 눈가랑 코끝이 빨갰다.
"역시.. 아기공룡 둘리 노래는 좀 슬프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마자 우리 둘은 서로를 끌어안고 좀 울었다. 이유는, 글쎄 아직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 순간 내가 100% 이해받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아 이 사람도 나랑 같은 걸 느끼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조차도 모르는 감정에 휩쓸려 <아기공룡 둘리>를 들으며 우는 나를 순도 100%로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사람을 지금 내가 끌어안고 있다. 그 순간이 전율이었다. 이 사람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 편이겠구나.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겠구나. 내가 왜 우는 지 왜 웃는 지 알겠구나. 내가 몰라도 이 사람은 알겠구나. 아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해해주겠다, 이해하는 걸로 끝나지 않고 같이 울어주고 웃어주겠구나. 이 사람이라면, 우리 엄마라면 그리 해주겠구나, 싶었다. 울엄마는 이전에도 남들이 이해못하는 나의 미묘한 핀트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안아줬었지, 그리고 안아주겠지. 지금처럼.. 그런 생각이 한꺼번에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동안 주제가는 '외로운 둘리는 귀여운 아기공룡 호잇 호잇'을 향해 달려갔다.
다른 사람은 절대로 모를, 절대로 100% 이해하지 못할 그 순간이 참 잊혀지지 않는다.
아무튼 그 때, 그래
그 순간을 저승에서 영원히 기억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겠지... 아니
오히려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날씨가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