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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Dec 05. 2018

회사 신년회에서 한 이상한 게임

나의 프라이버시를 공유하지 않을 권리

회사 신년회에서 한 이상한 게임



지금은 퇴사한 직장의 신년회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그때가 아마 2016년 1월이었을 거다. 아직 회사의 영업이익이 본격적인 하락세를 타기 전이라, 약 200명 정도 되는 경영지원 소속 임직원을 불러 큰 웨딩홀에서 신년회를 했다. 총무, 인사, 교육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바글바글하게 홀 안으로 모였다.


본격적인 신년회와 식사를 하기 전, 총무팀의 말 잘하는 선배들이 경직된 분위기를 깨기 위한 게임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화면에 뜨는 인사 정보의 주인공이 어느 팀의 누구인지 맞추는 것이었다. 경영지원 본부 내 HR를 담당하는 임직원이 있다보니, 본부 내 임직원들의 인사정보를 조회하고 만든 게임이었다. 예를 들어 “아들이 3명이 있는 이 사람은?”, “취미로 서핑을 하는 이 사람은?” 같은 거다.


나는 화면에 뭔가 익숙한 내용이 뜨는 것을 보고 땀을 삐질 흘리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이런 문제가 떴다


“취미 : 수상소감 보기”


나였다. 취준 시절 자기소개서를 쓰며 취미란에 쓸게 없었던 나는, 실제로 그때 내가 가장 빠져 있었던 취미를 적었다. 언젠가 취미나 특기에는 실제로 시킬 수 없는 것(스노우보드, 수영)을 적는게 좋다는 팁을 듣고 썼던거 같기도 하다. 나한테 수상소감 보라고 하지는 않을테니…. 그때 나는 아카데미나 에미상, 토니상, SAG 등 해외 유수 시상식의 수상 소감을 보는 것을 정말로 취미로 갖고 있었다.


당연히 아무도 그게 누군지 맞추지 못했고, 사회를 보는 선배는 나를 가르키며 “주인공은 0000팀 000 사원이었습니다! 왜 저렇게 적었는지 물어보겠습니다.” 하고 나에게 마이크를 건냈다. 그 때 입사한지 6개월도 안됐고, 심지어 팀이 바뀐지도 얼마 안돼 대부분은 처음보는 사람들로 가득찬 회사의 송년회에서 크게 당황한 나는 웅얼웅얼 거리다가 개소리를 했고 (“잘생긴 남자를 보고 싶어서요”라고 했나….) 마이크는 곧 사회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족히 3년이 지난 지금 이 에피소드가 생각난 이유는, 이제서야 그 때 그 신년회의 게임에 의아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사기록카드에 적은 나의 취미는 개인 정보다. 그런데 왜 나의 취미가 2016년 정초부터 회사 사람들 앞에서 까발려졌는가? 이런 식으로 내 인사정보가 신년회 퀴즈의 소재로 쓰여도 괜찮은 건가?




회사가 나의 퇴사 시기를 나보다 먼저 안다면?



대기업의 HR 부문에서 3년 정도 일하면서 느꼈던 점은 변화가 빠른 직무라는 것이다. IoT, 빅데이터, AI 기반 초연결, 초지능 사회의 산업구조 생태계에서 대부분의 일감이 로봇에게로 넘어가고 있으며, 특히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스텝 영역의 변화의 강도와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미 대다수의 선진 기업은 채용과 승진 단계에 ‘인공지능 챗봇’이 개입하며, 임직원들의 관심사를 파악해 맞춤형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기술을 사용해 임직원의 정보를 어떻게 관리하고, 지원할 수 있을지는 모든 기업들의 관심사다.


하지만 회사가 임직원의 정보를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최근 한 스타트업은 신입 사원이 퇴사할 시점을 분 단위로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정보를 모아 신입사원이 적어도 1년 이상 근무할 지 패턴을 매칭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회사가 나의 패턴을 파악해 나의 퇴사 시기를 점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을 이유로 나를 채용하지 않는다면 더더욱이나. 문제는 그런 정보 이용에 대해 우리는 대체로 먼저 공지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회사입장에서 우리는 사유 재산이다. 근로기준법에 사업주가 “사용자”라고 명시되어 있듯, 우리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근로자”의 정보가 홍수처럼 불어나는 시대에, 어디까지 회사의 정보고, 그걸 활용할 권리는 누구한테 있는지 논의는 필요하지 않을까. 인사정보카드에 있는 취미 : 수상소감 보기는 쓸모없는 정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자주 열람하는 게시판과 사내포탈 검색 키워드를 통해 회사가 내 관심사를 알게 된다면? 나의 이직 가능성을 짐작한다면? 퇴사 증후에 대해서 알아차린다면? 그리고 그 정보를 실제로 직원 관리에 활용한다면? 적어도 우리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상상을 해본다. 만약 회사가 나에 대한 정보 알기 위해 벤처 기업과 계약을 맺어 나의 개인 미디어에서 정보를 얻게 된다면 어떨까? 나의 소셜미디어 친구를 통해 인간 관계와 업계 평판을 확인하고, 얼마나 친기업적인지 확인하고 (나는 아마 진작에 짤렸을 것…), 이직이나 퇴사에 대한 나도 모르는 무의식을 빅데이터를 통해 알아낸다면? 그리고 나의 보상과 처벌에 이 정보를 활용한다면? 단지 회사 안에서 나의 소스를 활용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리고 이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일이며, 확실하게 잘못된 일이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새로운 규범이 필요할 때



그리고 올해는 이런 개인정보 유출 및 악용에 대한 분수령같은 사건이 터졌다. 바로 페이스북을 덮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 스캔들이다. 2014년 데이터 기반 정치 컨설팅 기업인 CA에게 페이스북 이용자 5000만명의 정보가 “동의 여부를 묻지 않은 채로” 넘어갔고, CA는 2016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이 데이터를 활용했다. 스캔들 이후 페이스북은 개인 정보 유출 규모가 8700만명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 영국 하원 언론위원회 청문회에서는 CA가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를 브렉시트 투표에도 활용했다는 증언이 나왔으며, 미얀마에서도 페이스북이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 대학살을 이끄는 도구 중 하나로 활용됐다.


마크 저커버그. 이미지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 제공


문제는 기술과 진보를 이끈다는 선진 기업들이 사용자들의 프라이버시를 무시하고 정보를 관리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과거 저커버그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사회적 규범은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했고, 현 시대의 사회적 규범에 맞기 시스템을 업데이트하고 지속적으로 혁신하는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저커버그가 말하는 새로운 프라이버시의 규범은 다른 곳에 우리 정보를 팔아넘겨도 상관없다는 규범일까? 뭔가 익숙한 사고방식이 떠오른다. 기술적 진보라는 큰 선을 위해 우리 개미들의 이용정보 정도는 유출, 악용되도 상관없다는 메세지.


페이스북은 이들은 자신의 프라이버시 정책에 빈틈이 있고 약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은 2015년에 이미 정보가 CA에 넘어간 것을 확인했고 삭제를 요청했지만 CA는 정보를 지우지 않았다. 카라 알라이모 미국 호프스트라대 교수는 블룸버그 기고문에서 “페이스북이 이용자 정보 유출 사실을 확인한 2015년에 관련 내용을 공개했으면 문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1)



내 프라이버시를 공유하지 않을 권리



이런 시대에 발맞춰 세계 각지에서 개인정보 보호에 관련된 새로운 정책과 법률을 발의하는데 힘쓰고 있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고, 법을 제정해서 사용자들이 데이터를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 회사들이 데이터를 공유하고 매출을 얻고 있는 방식을 살펴보고, 그 통제권을 사용자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것.


데이터의 통제권을 사용자에게 돌려주는 것. 이것에 대한 문제를 일찍히 고민한 과학자가 있었다. 컴퓨터 사이언티스트 제니퍼 골백은 2014년 테드 강연에서 정책과 법률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에 대해 소개했다. 사용자에게 어떤 것을 공유하고 비밀로 할지, 아예 오프라인으로만 갖고 있을지 미리 경고해주는 시스템 말이다. “방금 하신 일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누르시고 개인 정보를 공유하심으로써 제가 예측하는 능력을 키워 주시는 거에요. 여러분이 마약을 하시는지 회사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우리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규범이 필요하다. 이미 개인정보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동 규제도 시작됐다. 영국과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 전 세계 9개국 의회가 지난달 27일 개인정보관련 공동 특별 청문회를 열고 페이스북이 대중 신뢰를 잃었다고 비판하며 주요 글로벌 기술 플랫폼을 관리할 의무가 있다는 공동 성명서에 싸인하기도 했다.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이용자 차원에서도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 클리너나 트위터의 트윗 삭제 기능을 활용해 소셜플랫폼에 과거보다 적은 데이터를 보관하려는 시도처럼.


동의하지 않은 프라이버시의 문제는 신년회 게임에 취미가 까발려지는 것 같은 사소한 문제가 될수도 있지만 ,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 미얀마 학살에 관련된 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프라이버시가 어떻게 쓰일지 알고 동의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제가 이런 말을 할때 사람들이 제기하는 문제가 있는데요,
"모두가 데이타를 비밀로 한다면 당신이 예측하려고 개발하는 방법들이 다 실패할 겁니다." 라고 말이에요. 그럼 저는, "맞아요, 그럼 성공한 거에요" 라고요.
저는 과학자로서 사용자들에 대한 정보를 추측하는게 아니라 온라인에서 더 좋은 방법으로 교류하도록 하는게 목표이니까요. 어떤 때는 그들에 대한 정보를 추측하는 일이 생깁니다.
하지만 사용자가 원치 않으면, 제 생각엔 그들에게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개발한 방법들을 사용자들에게 알려주고 동의를 받고 싶습니다. - 제니퍼 골백



1) 8700만 고객정보 악용소지 인식…저커버그가 문제 핵심(이코노미 조선, 180409)

 http://economychosun.com/client/news/view.php?boardName=C24&t_num=13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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