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나’라는 존재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보통 우리는 ‘나’라는 어떤 실체가 있어서 몸을 바꾸어 가며 계속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변하지 않는 영혼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이 삶을 살아간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붓다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붓다에게서 ‘자아’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인과와 상호관계 속에서 순간순간 일어났다 사라지는 사건들의 총체입니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존재는 어떤 영원한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조건이 만나 잠시 형성된 하나의 흐름에 가깝습니다.
붓다는 ‘나’라고 여기는 존재가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오온(五蘊)이라고 합니다. ‘온(蘊)’은 덩어리 또는 집합을 뜻합니다.
오온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색(色) : 형상, 몸
. 수(受) : 느낌
. 상(想) : 인식과 생각
. 행(行) : 의지와 의도
. 식(識) : 분별하는 의식
우리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며 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합니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특정한 인식과 감정, 욕구와 기억이 축적되고, 그 결과 하나의 ‘나’라는 관념이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 ‘이 몸이 나다’라는 인식
. ‘나는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느낌
.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는 사고
. ‘나는 이것을 원한다’는 의지
. ‘이 모든 것을 인식하는 내가 있다’는 의식
이러한 경험의 덩어리들이 모여 외부 세계와 구별되는 하나의 ‘나’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이 관념을 자연스럽게 ‘나’라고 부르며 살아갑니다.
붓다는 오온이 세 가지 근본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삼법인이라고 합니다.
. 무상(無常)
. 무아(無我)
. 고(苦)
먼저 오온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감정도, 생각도, 몸도, 의식도 계속 변화합니다. 이것이 무상입니다.
이렇게 계속 변하는 것에는 고정된 실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무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흐름을 하나의 동일한 ‘나’로 착각합니다.
몸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는데도 그것을 하나의 지속적인 자아로 붙잡으려 합니다. 이 집착 때문에 괴로움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고입니다.
불교 경전 반야심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것을 꿰뚫어 보면 모든 괴로움을 건너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종종 오해됩니다.
“오온은 진짜 내가 아니니 버려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래 의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온이 공하다는 것은 오온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온은 조건에 의해 잠시 형성된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 자연 현상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바람이라는 독립된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압 차이에 의해 공기가 이동할 때 우리는 그것을 바람이라고 부릅니다.
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 ‘비’라는 존재가 있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증기가 응결하여 아래로 내려오는 현상을 우리는 비라고 부릅니다.
즉 바람이나 비는 어떤 실체라기보다 조건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불교에서는 ‘나’ 역시 이와 비슷하게 봅니다.
어떤 고정된 개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흐름이 잠시 특정한 형태로 나타난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업은 있어도 작자는 없다.”
행위와 결과의 흐름은 있지만, 그것을 고정된 주체로서 만들어 내는 영원한 ‘나’는 없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의 고정된 개인일까요?
아니면 삶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잠시 나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일까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듯이 삶이 한 사람의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면, 무엇을 그렇게 붙잡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