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없이 충분한, 그래서 고마운

충분히 좋은 것

by 사월

조만간 목돈이 들어갈 일이 있어 남편과 함께 현재 재정 상태를 점검해 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숫자나 돈 계산에 영 소질이 없다. 어려서부터 숫자로 된 정보는 유난히 기억을 못 했고, 셈도 느렸다. 아무리 작은 한의원이라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셈에 약한 건 치명적인 단점이 아닐 수 없다.


잘 지내다가도 목돈이 깨질 일이 생기면 계산도 해보기 전에 막연히 두려워하는 편이다. 현찰을 세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계좌에 찍힌 돈을 확인하고 더해보기만 하면 되는 건데 매번 그걸 미루고 당장 깨질 금액만 생각하며 걱정한다.


다행히도 남편은 셈에 밝다. 계산도 척척 잘하고 큰 단위의 숫자도 헷갈려하지 않고 잘 읽는다. 글자는 내가 더 잘 읽지만 숫자는 남편이 잘 읽으니 나름 환상의 짝꿍이라 해야 할까. 아무튼 남편은 또 막연히 걱정만 하고 있는 나를 앉혀 놓고 우리의 재정 상태를 낱낱이 파헤쳤다.


막상 있는 돈 없는 돈 다 끄집어내어 계산을 해보니 당장 들어갈 돈이 부족하진 않았다. 일단은 그것만으로도 안심이다. 그 숫자들이 내 머릿속에서 훌훌 잊히기도 전에 남편은 서둘러 또 하나의 계산을 해줬다. 바로 내가 한의원을 시작하기 전과 후에 모인 돈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매월 말 작성하는 한의원 가계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편이다. 한 달의 성적표를 스스로 확인해 보면서 자꾸만 얼마나 못했나 마주하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감사하게도 함께 사는 짝꿍이 항상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라고, 그 자리에서 이 정도 유지해 나가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고 격려해 주는데도 말이다.


남편은 그 사실을 알았는지 정확히 계산기를 두드려 숫자들을 보여줬다.

"그동안 네가 한의원을 꾸준히 운영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거야. 전에 내가 혼자 벌던 시절엔 상상도 못 했던 속도로 돈을 모았잖아. 내가 그냥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니까. 그러니 지레 겁먹지 않아도 괜찮아."


그간 매번 작고 소소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실제로 작고 소소한 편이긴 하지만), 우리 가족이 먹고사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었고, 심지어 저축도 할 수 있게 해 준 한의원에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나 고마운 곳인데 그간 너무 홀대했나 보다. 나를 입히고 먹이고 살리는 우리 한의원. 크지도, 대단치도 않지만 우리 가족을 지탱해 주는 든든한 자리임에 틀림없다. 모자람 없이, 오늘도 충분한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