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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r 31. 2018

갑자기 찾아온 축복 같았어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르다는 게 이런 것일까

 아주 가끔 감자가 우리 집에 없었을 때를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니까 아직 우리와 연이 닿지 않아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던 그때를. 참 어색하다. 없었을 때 우리 집 분위기가 어땠는지, 내가 어땠는지 정확히 생각나진 않지만 기억을 꺼내보자면, 나는 웃을 일이 별로 없었고, 힘들다는 감정을 자주 느꼈으며, 마음 한 곳이 항상 허하다는 느낌을 갖고 살아갔다는 그 정도가 떠오른다. 그랬던 나에게 선물같이 찾아왔던 존재, 감자. 이제는 없었던 때를, 없어질 거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하고 싶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린 우리 집의 최고의 애교쟁이 감자, 그리고 지금은 우리 곁에 없는 표현이 서툴렀던 우리 단지. 가끔씩 오래전에 찍어놓은 두 녀석의 사진을 하나 둘 둘러보곤 한다. 지금 내 옆에 있다는 감사함과 함께, 떠난 아이의 그리움을 품은 채.






처음 집으로 왔던 날, 어리둥절한 표정의 단지와 감자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감자가 우리 집에 찾아온 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감자오빠 단지와 함께 찾아오던 날을 말이다. 그 날의 나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친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왔음에도 답답한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았던 그 날의 나. 어두운 거리를 혼자 걸으며 헛헛한 마음을 한없이 담아두며 한숨짓고 있었던 그 날. 바로, 그 날 두 아이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손 한 뼘쯤 됐으려나, 아직 소리조차 낼 줄도 몰랐던 단지와 감자는 집 안의 냄새를 맡으려 여기저기 활보하고 다녔었다. 항상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던 나는 그전에 내가 마음에 품고 있었던 감정을 모두 잃어버릴 만큼 너무 기쁘고 행복했었다.



갑자기 나에게 찾아온 축복 같았어



 지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던 나에게 엄마가 말했었다. '빨리 이리와 봐'. 나는 무슨 일이지 생각하며 신발을 벗고 있는 데 그때 두 아이가 내 앞으로 뒤뚱거리며 걸어왔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생각을 하며 두 아이를 바라보고만 있던 나는 가방을 현관에 버려둔 채 두 아이를 양손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빠 회사 사람들에게 쌀밥을 얻어먹어 배가 빵빵한 상태였던 감자와 단지. 이제 막 두 달 정도 되었던 두 아이는 걸음이 아주 느리고 뛰둥거렸으며, 자주 균형 감각을 잃기도 했지만 그 모습마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솜방망이처럼 부들부들한 털을 한없이 만지고 있노라면 온 세상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활발하고 애교가 많던 감자와 조용하고 듬직했던 단지


 침대에서 재우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엄마의 말 때문에 자기 전까지 한참을 바라보다 잤던 기억이 있다. 학교 갈 때도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던 내가, 이른 시간에 일어나 두 아이들을 바라보기 바빴다. 혹시나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쁜 거라도 삼킬까 봐 두려운 마음에 한동안 청소를 도맡아 하기도 했었다. 청소기에 대걸레질까지 하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너무 행복했던 그때, 그리고 지금. 존재만으로도 행복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두 아이를 만나고 난 뒤 알게 되었다.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르다는 게 이런 것일까



 서로 우애가 좋았던 감자와 단지는 항상 둘이 붙어서 놀곤 했다. 싸우는 것인지, 장난을 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온 집을 뛰어다니며 놀았던 두 아이. 두 아이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담아두려고 시도 때도 없이 휴대폰을 들이밀었던 나.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함에도 풍경이나, 음식, 거리 사진이 전부였던 나의 사진첩 속에 감자와 단지의 사진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서서히 점령되어가기 시작했다.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행동을 했던 감자와 단지


 항상 붙어있으면 닮는다고 하던데 같은 배에서 태어나 항상 붙어 지냈던 두 아이는 행동이 무척 닮았었다. 감자가 먼저 창문을 보면 단지도 따라 창문을 보고, 단지가 간식을 먼저 먹으면 감자도 따라먹고, 감자가 한참을 놀다가 화장실을 가면 단지도 따라 화장실에 가곤 했다. 텔레파시가 통하는지 항상 행동이 같았던 두 아이가 나는 참으로 신기했었다.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말했던 적이 있다. 감자와 단지가 온 이유에 말도 많아지고 눈에 띄게 밝아졌다고. 나는 '그런가'하며 짧은 대답을 했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예전보다 더 행복해하고 있다는 걸. 본의 아니게 부지런하게 일어나 청소를 해야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대소변을 치워야 하고, 시간 때마다 밥을 잘 챙겨줘야 하고, 가끔 사고 치는 일을 수습해야 하는 일상이 시작되었지만, 그래서 집에서 해야 할 일이 훨씬 많아지고, 가끔은 귀찮다 느껴질 만한 일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들을 충분히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던 건 선물같이 갑자기 찾아온 두 아이의 존재가 너무도 좋아서. 행복해서. 사랑스러워서. 나를 따뜻하게 해줘서. 그것쯤은 별거 아니다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단지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그런 일쯤 천만번도 더 아니, 무한대로 할 수 있다 말할 정도로 두 아이가 나에게 주었던 힘은, 따스함은, 생동감은 굉장했으니까.


 지금 내 옆에 조용히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감자의 체온이 참 따뜻하다. 체온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를 넘어서 마음과 정신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아이, 감자. 만약 지금까지 단지가 살아있었다면 두 아이는 여전히 아침마다 나를 밞으며 놀고 있을까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사이가 좋았던 두 아이의 어릴 적 모습이 아른거리는 오늘, 두 아이가 눈빛이 참 많이 닮았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행복'이라는 걸 다시 알게 해준 감자와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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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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