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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깊은 보통날
by 사월 Jun 01. 2018

잠시, 지금 이 순간을 좋아해도 되는 걸까

일단, 계속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일단, 좋아하기로.

 나는 대체적으로 평이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감정 기복이 엄청 심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미건조하지도 않은 그저 평이한 감정을 가진 사람. 그러나 이 평이한 감정을 또 여러 갈래로 나눈다면 나는 아마, '블랙 평이'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블랙 평이'라 함은 평이한 감정을 대체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미세한 우울의 기운이 감도는, 그런 감정이라고 풀어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긴 설명으로 표현하였듯, 나는 대체적으로 평이한 감정을 가졌지만, 가끔은 모든 것을 조금 슬픈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가끔 나의 이러한 감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면 이상하게 불안해하곤 한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라고 할지라도.






 불행에 익숙한 사람이라고까지 말할 순 없다. 그렇게 인생에 엄청난 쓴맛을 볼 나이도 아니고, 그러한 경험 역시 한 적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약간의 불행이, 아니다 약간의 어긋남, 삐끗거림엔 익숙한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 인생 역시 그리 좋은 방향으로 쉽게 풀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가끔 불행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곤 했다. '그럼 그렇지'라던가, '어쩐지 잘 되어가나 싶었다'라던가 같은, 약간의 탄식을 내뱉으며 나에게 찾아온 어긋남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곤 했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가끔씩 찾아오는 행운에 불안해지곤 했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 때. 이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는데, 왜 이렇게 빠르고 단순하게 풀리지, 라는 의아함을 가지고 있을 때. 그럴 때면 나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곤 했다. 왠지 이렇게 쉽게 풀리는 걸 보니 분명 뒤에 약간의 삐끗거림이 찾아오겠군, 하며 혹시나 찾아올 수 있는 불행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곤 했다.


 요즘의 내가 특히 그렇다. 무언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잘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내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외쳤던 것들이 조금씩 내 눈앞에 실현이 되어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기쁘고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불안한 이 감정은 뭘까. 왜 불안해하는 걸까. 가슴 한켠에 불안함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묻곤 했다. 그래, 지금 네가 제일 불안해하는 게 도대체 뭔데. 진짜 네가 희망하던 일이 되었는데, 왜 그것을 즐기지 못하고 혼자 상상하며 불안에 떨고 있는 건데. 글쎄, 왜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아직 나 자신에게 듣지 못했다. 다만, 알게 된 사실 한 가지는 있다. 어쩌면 나는 불행에 익숙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 아니, 어쩌면 나는 불행에 익숙해지려고 부단히 애쓰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 찾아온 '좋은 일' 같은 건 지극히 평범한 것들 뿐이다. 내가 정말 원하던 일자리를 운 좋게 다시 들어갈 수 있었던 것. 내가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 티켓을 운 좋게 예매할 수 있었던 날. 약속 시간이 늦은 날, 운이 좋게 버스가 빨리 도착해 지각하지 않았던 그때. 정말 먹고 싶었던 음식을 대기 없이 먹었던 어느 날. 사실 이러한 자잘 자잘한 것들이 나에게 찾아온 '좋은 일'정도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왜 이러한 아주 자잘 자잘한 행운에도 감사함에 허덕이다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참 안타깝게도 말이다. 하루가 너무도 순탄하게 흘러가는 날. 그래서 마음속의 동요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날. 그런 날엔 기분 좋다, 느끼면서도 한 편으론 이러한 마음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유지할 수 있기는 할까. 어쩌면 바로 내일, 내가 감당할 수조자 없는 삐끗거림이, 혹은 대단한 불행이 찾아온다면 어떡하지. 혼자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미리 걱정하곤 한다. 차라리 그럴 거면, 이러한 자잘한 좋은 일도 찾아오지 않았으면. 그저 그렇게 평이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니, 마음의 동요가 날 수 있는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것이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아니면, 조금은 몰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정말 몹시 아주 많이, 희망하는 그 어떠한 것에 행운이 몰빵으로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조금은 못된 마음을 갖기도 한다. 그 어떠한 것 하나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감당할 수조차 없는 불행을 많이 경험했다고는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어렸을 때, 몸이 갑자기 아팠던 것. 입시에 실패한 것. 그래서 조금은 단절된 삶을 살아왔던 것. 그러한 것을 제외하고 나면, 그렇게까지 나에게 큰 불행 혹은 큰 삐끗거림 같은 것이 많이 찾아왔다 말할 순 없을 테니까. 그저 남들처럼 사소한 삐끗거림이 많았고 또, 남들처럼 자잘 자잘한 좋은 일들 역시 내가 살아왔던 나날에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내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 그렇다는 건, 요즘 나의 마음가짐 때문에 이 모든 기준이 조금씩 달라졌다,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즘 나의 마음가짐. 그러니까, 조금은 될 대로 돼라, 라는 약간의 자포자기와 조금 숨고르기를 하며 살자, 라는 느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요즘의 심리상태가, 내가 여태까지 조금은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세상의 시선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달라지게 만들었을 수도 있으리라 짐작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조금은 즐겁게 바라보려고 노력한다고 해야 할까. 나에게 찾아온 아주 자잘한 행운과, 기회라고 느껴지는 그 모든 것들에 감사하려고 한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러한 마음을 먹었으면서도 가끔은 아니, 사실은 자주 화를 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우연히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들에, 순간에 예전보다 훨씬 더 기뻐하려는 노력을,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지기 시작해서일까. 이상하게도 그리 나쁜 일과 대면하지 않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 이런 말 하면 또 삐끗거림이 찾아올 수도 있는데, 또다시 조금 불안해하면서도 우선은 그렇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려 하니 마음에 몽글몽글한 감정들이 더 많이 피어오르고 있다 생각이 드는 순간이, 그 횟수가 점점 많아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예전의 나였으면, 대단한 삐끗거림이라 느꼈던 것들도 조금은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전 같았으면 유난스럽게 펄쩍 뛰면서 내 이럴 줄 알았지, 어쩐지 잘 가고 있다고 했다,라고 말했던 일들도 요즘엔 그냥 조금은 담담하게 그래, 맘대로 하거라아,라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야 할까. 너무 자포자기 같으려나. 그런데 진짜 그렇다. 그런데 웃기게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내 마음을 조금 덜 다치게 하는 것 같다. 예전에 한 번 겪어본 일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예전보다 조금은 나이를 먹어 덤덤해져서 그런가. 누군가의 행동에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 기술 같은 것이 생겨난 것 같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이런 장점이 있구나, 새삼 느끼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 깊숙이 불안한 감정들이 존재하고 있긴 하다. 나, 지금을 좋아해도 될까요. 나, 지금에 조금 안도해도 될까요. 나, 지금을 시작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나아질 거라도 믿어도 될까요. 대답을 들을 수 없는 공허한 질문들이 늘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질문의 답은 끝내 내가 찾아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삶은 누가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끝내 내가 살아가야 하는 것일 테니까. 그래서 일단, 계속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일단, 좋아하기로. 이것이 현재에 조금은 안주하고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 한심스러운 눈초리를 받게 되더라도 일단 지금의 나는 좋다고 하니까, 그리고 정말 어쩌면 진짜로 이것을 시작으로 더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러한 긍정적인 기운을 벗 삼아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조금은 나 자신을 다독거릴 수 있는 이 시간을 즐겨보기로 했다.




 


 아직까진 나이가 든다는 것에 장점보단 단점이 더 많다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장점 한 가지가 있다. 아주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오늘과 내일이 크게 바뀌지 않으니까 안도감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 어차피 그렇게 평이하게 흘러가는 삶의 반복일 테니, 가능하면 내가 기뻐하는 쪽으로, 즐거워하는 쪽으로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물론, 모든 것을 기뻐하는 쪽으로만 살 순 없겠지만, 여러 선택사항 중 그나마도 내 마음에 끌리는 것, 내가 계속해서 하고 싶었던 것, 내가 조금이라도 호기심을 갖고 있는 것을 선택하려 노력한다고 해야 할까. 그러한 선택들이 쌓이다 보면, 요즘 내가 느끼고 있는 '좋은 일' 같은 것이 늘어나고 있다 느끼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요즘 많이들 말하는 소확행 같은 거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큰 행복이 없어서 소소한 것이라고 찾는 것이다, 자조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끝내 돌아보면, 그러한 소소하고 사소한 행복들이 쌓여 큰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던 것 같다. 웃기게도 내가 요즘 느끼고 있는 그러한 행복처럼. 그러한 좋은 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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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낡고, 오래된 것들을 좋아합니다. yead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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