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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Feb 16. 2022

그럼에도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드라이브 마이 카>_아주 작고 작은 깊고 깊은 마음에 대해.

드라이브 마이 카

'오늘 바빴어요?' 일하는 동료에게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유난히 바쁜 날에 일을 하게 되거나 그저 안부처럼 묻는 질문에 나는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하곤 한다. 오늘 바빴나. 일하면서 힘이 들었었나. 기억을 가만히 되짚어보다 톡을 보낸다. 생각보다 그렇게 바쁘지 않았어. 견딜만했던 것 같아. 그렇게 보낸 톡에 다행이라는 답장을 받으면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맞아 다행이야. 그렇게 힘들진 않았으니까. 어느 날은 함께 일을 하다 질문을 받기도 한다. '오늘 조금 바쁘지 않아요?' 그 질문에 또다시 곰곰이 생각을 하다 대답한다. 평소보다 바쁘긴 했지만 이 정도면 견딜만한 것 같아. 내 대답에 약간의 의구심을 갖던 동료는 나와 함께 일한 다른 이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는지 다시 찾아와 말을 덧붙였다. '꽤 힘들었다고 하던데요. 아무래도 언니는 고통에 대한 역치가 높은 편인가 봐요.' 고통에 대한 역치,에 대해 깊게 고민하며 생각했다. 다들 이 정도는 감당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누가 봐도 아름다운 부부 가후쿠와 오토.
우연히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가후쿠는 이유를 묻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2년 후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되어 작품의 연출을 하게 된 가후쿠.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를 만나게 된다.
말없이 묵묵히 가후쿠의 차를 운전하는 미사키와
오래된 습관인 아내가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며 대사를 연습하는 가후쿠.

조용한 차 안에서 두 사람은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서로가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눈 덮인 홋카이도에서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서로의 슬픔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영화는 어렴풋한 새벽하늘을 등지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오토와 가후쿠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마치 꿈결에 있는 듯 몽롱한 얼굴로 오토는 한 여자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동급생 남자아이를 짝사랑하는 여자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수업을 빠져나온 여자 아이는 남자아이 집에 몰래 찾아가 자신의 물건을 징표처럼 하나씩 숨겨두고 나오기 시작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절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은 크기의 물건을. 그리고 역시나 절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물건을 하나씩 훔쳐 나온다. 여러 개 사다 놓은 연필 같은 아주 사소한 물건을. 사소하게 시작됐던 여자 아이의 일탈은 밝은 대낮에 운전을 하고 있는 가후쿠의 입을 통해 다시 이어진다. 그들의 오래된 습관인 듯 가후쿠는 오토가 밤새 지어낸 여자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그대로 기억했다 읊어준다. 오토는 마치 낯선 이야기를 듣는 듯 자신이 지어냈던 이야기를 메모하며 드라마 소재로 쓰일 것에 골몰한다.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이어가던 두 사람은 우연히 오토의 외도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서 아주 작은 균열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출장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섰던 가후쿠는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결항되며 다시 집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외도를 하고 있는 오토를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가후쿠는 화를 내는 대신 외도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남겨둔 채 조용히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오토와 다정히 대화를 나누며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낸다. 모른 척하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는 듯이. 오토의 외도 사실을 조용히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가던 가후쿠는 어느 날 대화를 나누자는 자뭇 심각한 오토의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애써 외면해왔던 사실과 마주하게 될까 가후쿠는 몹시 두렵다. 초조함과 두려움에 쉽사리 집에 들어가지 못한 가후쿠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오토를 발견하며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 채 오토와 허탈한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오토와의 이별도, 그의 외도 사실도 혼자 가슴속에 묻은 채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가후쿠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배우들과 함께 연극을 올리기 위해 소중히 관리해온 차를 타고 길을 나선다. 그곳에서 마치 없는 사람처럼 말없이 운전을 하는 마사키를 만나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있는 그를 통해 그토록 외면해왔던 상처와 고통을 조금씩 마주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가후쿠는 함께 연극을 준비하고 있는 다카츠키에게 오토가 죽게 되어 끝내 듣지 못했던 여자 아이에 대한 결말을 듣게 된다. 짝사랑하는 남자아이 집에 몰래 자신의 징표를 남겨두던 여자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사소한 징표만을 남기던 여자 아이는 더욱 큰 징표를 남기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며 대담한 행동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대담히 행동을 이어가던 여자 아이는 우연히 집을 찾아온 도둑을 만나게 되고 자신을 해하려는 도둑에 맞서다 그를 죽이고 만다. 남자아이 방에 피와 시체를 그대로 남겨두고 도망치게 된 여자 아이는 분명 자신이 한 행동 때문에 정체가 들통날 거라 예상하며 등교를 한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달리 남자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자 아이에게 인사를 하며 학교 생활을 보낸다. 평온한 남자아이의 모습을 보며 여자 아이는 다시 집을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 전에는 없던 시시티브이를 발견하게 된다. 사건 이후에 유일하게 변화된 것은 오직 시시티브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여자 아이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사람이 죽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면 정말 없던 일이 될 수 있는 걸까, 여자 아이는 자신 죽였다는 말을 읊조리며 시시티브이를 공허하게 바라볼 뿐이다.


다카츠키가 차에서 내리고 그의 말을 함께 들었던 마사키는 거짓을 말한 것 같지 않다고 말한다. 평생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며 살아와야 했기에 분명히 알 수 있다면서.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가후쿠는 생각한다. 어째서 자신에게는 하지 않았던 말을 다카츠키는 알고 있는지. 왜 자신에게는 말해주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야기 속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의 모습이 어째서 오토와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는지.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만 한가득 늘어나고 있었다.


하얀 눈이 덮여있는 무너진 집을 바라보며 마사키는 자신의 죽은 엄마에 대해 말한다. 어쩌면 자신이 죽였을지도 모르는 엄마에 대해. 그 엄마에게 깊게 상처받았던 어린 자신에 대해. 마사키의 말을 듣던 가후쿠는 죽은 오토를 떠올리며 말한다. 상처받았다고 말해야 했다고.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물었어야 했다고. 그날 집에 빨리 들어갔어야 했다고. 그리고 오토가 너무 보고 싶다고. 흐느껴 우는 가후쿠를 가만히 보던 마사키는 그 상처의 크기를 자신도 알고 있다는 듯 안아주며 위로한다. 살아 있었다면 자신의 딸과 같은 나이였을 마사키를 껴안으며 가후쿠는 말한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이렇게 상처를 받았지만 우리는 다시 살아내야 한다고. 영화는 이어서 연극 속 바냐 아저씨를 위로하는 소냐의 모습을 겸허히 담아낸다.


'우린 살아야 해요. 길고도 긴 낮과 밤들을 끝까지 살아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시련을 꾹 참아나가는 거예요. 우리 일하기로 해요.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이 오면 우리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리고 말하기로 해요. 우리는 상처받았다고. 우리는 고통스러웠다고. 그러면 하느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실 테죠. 그러니까 우리 다시 살아가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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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3살 두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을 담아낸 시나리오집입니다. 빨리 어른이 되기를 꿈꾸면서도 변화하는 자신의 몸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평생 함께 할 거라 자신했던 친구와의 관계는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합니다. 언젠가 헤어질 거라 생각했던, 서로를 몹시도 싫어하는 줄만 알았던 부모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과 믿음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보여주기도 합니다. 너무도 가까워서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낸 시나리오입니다. 독립출판으로 만들어낸 책이기에 독립 책방과 제가 직접 보내드리는 구매 신청 폼에서만 책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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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꾹꾹 눌러 담아냈습니다.

부디 독자님들께 마음이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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