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ly have the stars Mar 07. 2023

무엇도 바라거나 두려워 않는 자유를 갈망한 질다

거울상, 자유, 그리고 폭풍우를 담은 오페라 리골레토

유동직 바리톤님의 리골레토, 홍혜란 소프라노님의 질다 캐스팅으로

장대비가 휘몰아치던 2022년 어느 가을, 세종문화회관에서 리골레토를 관람했다.


[거울상]

거울을 양측에 배치해 배우분들이 뒤돌아 있을 때에도 표정연기를 볼 수 있게 하여,

특히 리골레토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왔던 연출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기사 몇 개를 읽어보니, 연출가 선생님께서

"'거울' 콘셉트로 등장인물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윤리'라는 이데올로기의 복잡성"을 표현하고자 하셨다고 한다.


아래 기사에 연출가 선생님께서 거울을 통해 말하고자 하셨던 메시지가 잘 담겨있는 듯하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4772378?sid=103



[자유]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만큼, 딸 역시 아버지를 사랑했으나

무대 장치로도 나타난 '새장'에 갇혀있었을 수밖에 없었던 딸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자유'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유가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라기보다는,

질다가 새장 밖으로 발을 내딛고,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 수 있는 자유를 바란 것이 아니었을까.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나는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Nikos Kazantzakis의 묘

그리스인 조르바 작가로 유명한 Nikos Kazantzakis의 묘에 기록된 구절이다.


죽음을 대면한 질다가 어쩌면 이러한 생각으로 '자유'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지 않았을까.



[폭풍우]

극의 긴장감이 고조될 때, 중창이 절정에 다다를 때마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신 현악기 연주자분들 덕분에 몰입감이 배가되었다.


마치 비발디 사계 중 여름 3악장에서 현악기들이 표현하는,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폭풍우 같았다.


https://youtu.be/nJTfG1MmMwQ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4747837&memberNo=46318578&vType=VERTICAL

위 인터뷰 기사에서는, 질다 역을 맡으신 소프라노 분들께서 본 작품의 준비 과정과 극 중 역할에 대한 생각을 가감 없이 나누어주신다.


개인적으로, 홍혜란 소프라노님의 질다에 대한 해석이 흥미로웠다.


질다가 곧 리골레토이며,
사랑에 대한 진실된 믿음에서 기인한 강인함이
극 중 어떤 캐릭터보다도 뛰어나다

고 해석하신 것이 인상 깊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9/0002763873?sid=103

유동직, 양준모 바리톤님 인터뷰 기사도 있다.


양준모 바리톤님께서 인상 깊은 프로덕션으로 꼽으신,

'리골레토'를 아버지와 딸의 사랑이 아닌, 나치와 반(反) 나치로 나눠서 재해석한 프로덕션의 실황이 어떨지 궁금했고 흥미로웠다.


리골레토와 질다의 중창에서 여실히 엿볼 수 있었던 부녀간의 사랑(agape)과,

그와 대비되는, 4 중창에서 막달레나와 공작의 입을 빌린 유희적인 사랑(ludus).


언뜻 '광대'가 벗어날 수 없었던 저주의 숙명을 보여주는 듯하는 실패로 돌아간 복수는,

오히려 복수와 증오의 악순환을 끊어냈기에 역설적으로 저주가 해소되는 실마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중창의 아름다움은 물론,

성악과 기악으로 풍성하게 표현되었던 사랑과 복수에 대한 통찰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리골레토>였다.

극이 끝나고 나서야 누구보다도 환한 미소를 짓는 리골레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